[리뷰] 극단 세이레 연극 ‘우연히, 눈’

ⓒ제주의소리
19일 극단 세이레의 연극 '우연히, 눈'의 무대 인사 장면. ⓒ제주의소리

극단 세이레가 6개월 만에 새 연극 ‘우연히, 눈’을 무대 위에 올렸다. ‘밥’, ‘소풍’ 등으로 알려진 김나영 작가의 미발표 작품을 다룬 초연으로, 남녀 한 쌍의 감정 교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70분이 넘는 공연 시간을 지나 배우의 무대 인사까지 지켜보면서, 포근하고 감성적인 ‘눈(雪)’이 가져다주는 느낌과는 별개로 복잡 다양한 마음이 가득했다. 크게 내세우진 않았으나 작품 내적·외적으로 중견 극단 세이레의 현실과 노력이 느껴져서다.

극단을 오랫동안 지킨 설승혜, 양순덕, 이영원은 각각 배우와 조연출, 진행을 맡았고 나머지는 신입·객원 배우들로 채워졌다. 두 가지 에피소드 모두에 출연한 배우 신진우는 지난 여름 세이레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조각’을 계기로 맺은 인연이다. 강서하, 김마유는 신입 단원으로 알려진다.

제작진 역시 마찬가지. 포스터 디자인을 담당한 임소정, 음향오퍼 박현수, 조명오퍼 이윤정은 지난 세이레 작품에서는 만나지 못한 낯선 얼굴들인데 모두 풋풋함을 숨길 수 없는 나이다. 지난 7월 선보인 ‘무슨 약을 드릴까요’와 비교할 때 과도기적인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이런 점들이 영향을 줬는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눈’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기 어려웠다. 폭설에 고립된 남녀의 애틋함, 소시민에 대한 위로 등 작품이 품고 있는 감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고 보기에는 살짝 아쉬움이 느껴졌다. 감정선을 깨는 중간 중간 음악과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조명도 마찬가지. 자연산 우럭만도 못한 처지에서 성당 ‘훈남’ 오빠를 넘나드는 신진우의 분전은 윤활유 역할을 담당한다.

1992년에 출범한 극단 세이레는 본인들이 제주 밖으로 나가고 또 유명 극단을 초청하는 등 한 동안 광범위하게 활약했다. 기자가 알지 못하는 지난 시기라서 기록으로 접했지만, 그정도로 활동하는 제주 극단이 현재 손에 꼽을 정도임을 감안하면 세이레의 명성을 미뤄 짐작케 한다. 그러던 중 극단 운영에 심대한 영향을 준 여러 일들이 겹쳤고, 그 여파는 지난 한 해를 돌이켜봐도 여실히 느껴졌다. 

눈이 쏟아지는 날씨에서 유일한 해결 방법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만큼 쌓이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만큼 쓸고 밀어내야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극단 세이레에게 내리는 눈이 조속히 그치기를 바란다. 팔이 저리겠지만 더 좋은 작품을 위한 빗자루질은 계속 돼야 한다. 세이레의 도약을 기다린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