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39) 설날 아침 / 송인영

설날 성묘 차례상. ⓒ김연미
설날 성묘 차례상. ⓒ김연미

내 스마트폰 여는 길은 새발자국 쫓는 걸까
몽골 건너 조선족, 태국 베트남 필리핀까지
펼쳐든 지도를 따라 새을乙자 그려본다

그렇게 그려보는 설날 아침 우리 이모
지구촌 촌장이라며 너스레 세배를 받네
통역관 없어도 좋을 다섯 나라 며느리들

빙떡을 둘둘 말다 옆구리 툭 터졌네
그것을 테이프로 살짝 붙인 몽골 며느리
차례상 조상님네도 얼핏 한 눈 팔아줄까

날아라 우리 이모 설빔 훌훌 나비처럼
청주 한 잔에도 빙빙 도는 사돈 나라
‘고시레’ 지붕을 향해 흩뿌린다 한 모금 안부

- 송인영, [설날아침] 전문-

이모의 설날 아침은 사돈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로 시작한다. 몽골, 중국, 태국, 베트남, 필리핀... 다섯 나라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한 이모는 ‘지구촌 촌장’이라는 너스레가 괜한 말이 아니다. ‘통역관 없’이도 대화가 다 통하는 언어의 무불통달이신 분이 바로 이모다. 

언어도, 문화도 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오래된 전통문화를 유지시켜 나가는 모습이 유쾌하다. 평소대로라면, 지극히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해야 했던 이모의 목소리가 드높다. 차례상 앞에서 여자는 그림자로만 움직여야 했던 여느 명절과 다르다. 음식을 장만하는데도 경건함이나 조심스러움 보다는 ‘옆구리’가 터진 빙떡에 테이프를 붙여 ‘땜빵’을 해 내 놓는다. 그러면서 슬쩍 눈감아주실 조상님의 아량을 기대한다.  

어차피 설날의 의미가 가족끼리 한 데 모여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데 있는 거 아닌가. 약간의 실수, 약간의 어설픔, 그리고 약간의 생략을 굳이 책잡아 얘기할 필요는 없다. 많이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렇게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앉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더구나 우리나라까지, 여섯 개국이 얼굴을 맞대고 앉은 글로벌 식탁이 아닌가. 그 식탁에서 어느 한쪽의 전통문화만을 고집하다가는 더 이상 그런 자리조차 만들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변화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는 건 늘 어렵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긴 여정 틈틈이 놓여 있는 이런 유쾌한 시간들이 있어 우리를 더 살게 할 것이다. 이모의 목소리는 더 높아질 것이고, 다섯 개국의 며느리들은 또 제각기 저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주방을 시끄럽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의사소통에는 걸림돌이 없을 것이고...설날 아침의 차례상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