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아름다운 나눔 현장을 가다](2) 제주청소년봉사단-쿡찬초, 9년째 이어온 인연

나눔은 늘 아름답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매년 개최하는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를 통해 조성된 ‘아름다운 기부금’은 제주도내는 물론 지구촌 곳곳의 소외된 이웃들과 소중히 나누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는 제주청소년봉사단을 통해 기부금의 일부를 캄보디아 시골 초등학교 두 곳에도 보내고 있다.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한 이들 학교의 도서관 설립과 운영, 도서구입, 학용품 마련, 학교시설 보수 등에 쓰이고 있다.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문맹을 퇴치하고 이들이 당당한 지구촌 동반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제주청소년봉사단의 9일간 교육봉사활동에 제주의소리가 동행했다. 설 명절을 맞아 아름다운 나눔의 현장을 세 차례에 걸쳐 글과 영상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글] 

 

캄보디아의 한 작은 학교에는 온통 눈을 마주치면 빙긋 웃어주거나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로 넘쳤다. 헤어지는 날 일주일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서럽게 울며 교문 앞까지 배웅하던 캄보디아 아이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제주청소년봉사단은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4일 동안 쿡찬초등학교(Kok Chan Primary School)에서 교육봉사활동을 펼쳤다. 쿡찬초는 수도 프놈펜에서 300km 떨어진 씨엠립에 위치해 있다. 

쿡찬초는 씨엠립 중심부에서 다시 약 10km를 이동한 곳에 위치한 작은 공립 초등학교로,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 1~6학년까지 총 339명의 학생과 8명의 교사가 있다. 쿡찬초등학교의 열악한 교육환경에 관심을 가져온 제주청소년봉사단은 지난 2011년부터 교육봉사 및 도서지원과 교육 후원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청소년봉사단원이 캄보디아 쿡찬초등학교에서 영어로 이름 쓰기를 도와주는 모습. ⓒ제주의소리

이 사업의 일환으로 영어 교사인 삼 봉(Xam bong)의 임금도 지원하고 있다. 그는 3년 전부터 쿡찬초 약 20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새벽 6시부터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집에서 학교가 멀거나 가정 형편 상 생계유지를 위해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위해 삼 봉은 개인 시간을 쪼개 평일 오후와 주말에도 7학년 수업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지만 교육 인프라와 마을내 지식인의 부재로 홀로 수업을 이끌어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쿡찬초등학교는 그동안 제주청소년봉사단의 꾸준한 봉사와 후원으로 많은 모습이 달라졌다.

참혹했던 내전이 끝난 후 황량했던 빈 터 옆 학교는 좀 더 학교다운 곳으로 변해갔다. 처음 봉사단은 학생들의 영양 상태와 시설을 가꾸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맨발로 운동장에 글을 쓰며 글자를 익혔던 아이들은 이제 유니폼을 입고 학용품과 책가방을 챙긴 뒤 학교에 온다. 안전과 보완을 위한 울타리도 생기고 영어와 크메르어로 캄보디아 이야기를 담은 책들도 책장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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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청소년봉사단원들이 쉬는 시간 동안 쿡찬초등학교의 아이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려 놀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매년 해줄 수 있는 후원금에 비해 항상 지원해주고 싶은 것들은 끝이 없다. 올해는 정기적인 영어수업 진행 지원과 더불어 심하게 낡아 아이들의 피부에 상처를 주는 책걸상 보수에 후원금을 집중했다.

본격적으로 쿡찬초등학교에서의 수업을 진행하며 봉사단원인 제주청소년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냈다. 처음 써 본 영어 원고는 서툴고 수업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웠다. 준비된 내용이 끝나면 새로운 활동을 짜내기 전까지 허둥대며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4일 동안 수업 진행을 반복하며 매일 밤 수업평가를 진행한 뒤 수업은 점차 나아졌다. 나름의 요령을 터득하고 수준이 안 맞거나 수업시간이 남을 것을 대비해 대안을 세우는 정도로 빠르게 적응했다.

고정숙 제주청소년봉사단장이 애초에 제주청소년봉사단에 강조한 부분도 캄보디아 아이들의 영어실력 향상은 아니었다.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눈에 띄게 늘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거니와, 보다 중요한 건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학교를 ‘재밌는 곳, 가고 싶은 곳’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 마음을 따라 제주청소년봉사단원은 영어는 물론, 캄보디아 언어인 크메르어조차 떼지 못한 아이들과 스스럼없는 스킨십을 통해 진한 마음을 나눴다.

쉬는 시간이면 단원들은 자신의 몸을 캄보디아 아이들을 위해 어느 부위든 내줬다. 미소를 띤 아이들은 파란조끼를 입은 봉사단원의 어깨와 다리에 붙어 다니거나 손을 잡고 이곳 저곳으로 이끌었다. 단원들은 때가 끼고 코 묻은 캄보디아 아이들의 손을 거리낌 없이 잡았다. 말은 안 통하지만 함께 손을 잡고 달리기만 해도 아이들은 해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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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청소년봉사단원이 쉬는 시간 동안 쿡찬초등학교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청소년봉사단의 아들이 된 캄보디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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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찬초등학교에서 만난 캄보디아 남자 아이 파넷(Phanat, 왼쪽)이 기자의 손을 붙잡고 학교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녔다. ⓒ제주의소리

수업 시간인데도 교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유니폼도 입지 않은 채로 외딴 섬처럼 운동장을 배회하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파넷(Phanat). 예닐곱은 족히 넘어 보였지만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도 없고, 본인도 자신의 나이를 알지도 못하는 작은 남자 아이는 처음엔 자신의 이름을 ‘헤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려왔던 모양이다. 기자를 졸졸 따라 다니며 손을 잡고, 업히라며 등을 내밀고, 뜨문뜨문 배운 듯한 영어로 사랑을 표현했다.

파넷은 놀이터 옆 벤치, 그네 등 학교 시설에 같이 앉으려 하면 자신은 앉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으로 제스처를 만들어보였다. 옆에 있던 캄보디아 대학생 봉사단원 중 한 명이 파넷의 크메르어를 통역해줬다.

파넷은 자신이 쿡찬초등학교 쓰레기통 옆에서 부모없이 버려졌고 근처 절의 승려가 데려다 키웠다고 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니 교실 주위는 물론 나무 그늘 아래 벤치 근처로 오는 데도 주저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한창 놀고 싶을 나이지만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은 놀이 시간에 파넷을 약간 멀리하는 게 눈에 띄었다. 6학년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고정숙 단장은 그의 딱한 사정에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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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찬초등학교를 배회하는 파넷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제주청소년봉사단과 쿡찬초등학교장이 쿡찬 왓 템플에 찾아가 얘기를 듣고 있다. ⓒ제주의소리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 위해 코안 킨 쿡찬초등학교장과 케네스 제주청소년봉사단 원어민 단장은 아이를 맡아준 승려가 있다는 학교 옆 쿡찬 왓 템플로 찾아갔다.

승려가 들려준 얘기는 아이는 근처 어딘가 본인의 집이 있고 일주일에 2~3번을 절에 와 마당이나 절 안에서 잠을 자고 가곤 했다는 것.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지금은 정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훨씬 불안정한 상태이고 본가를 기억할지도 미지수라고 전했다.

또 그의 가족 중에선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고, 형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다른 한 승려를 통해 그의 삼촌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봉사단은 삼촌과 연락이 닿는 대로 가족의 허락을 받으면 그를 학교로 다시 이끌기 위해 노력을 쏟을 예정이다. 

활짝 웃고 있는 파넷.

일단 교사 삼 봉의 새벽 영어 수업을 통해 낯선 사람들과 학교에 대한 거부감을 덜고 난 뒤 원만하게 적응을 마치고 나면 정규 수업에 투입하기로 학교 측과 협의했다.

봉사단도 파넷이 앞으로 학교에 정기적으로 다닐 수 있도록 유니폼과 자전거 등 학교 수업을 듣기 위한 물품 지원을 약속했다.

파넷은 봉사단원의 머리칼에 꽃 핀을 달아주고 개구리알이 담긴 물을 나눠주는 등 자기 방식대로 맘껏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또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에 “학교에 열심히 다니겠다”는 약속까지 하며 활짝 웃었다.

 

캄보디아의 미래를 새롭게 그린 제주청소년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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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찬초등학교에서 4일을 보낸 후, 제주청소년봉사단원들이 타판초등학교로 떠나기 전, 쿡찬초 아이들을 일일이 안아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제주의소리

쿡찬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봉사단원들은 산골학교인 타판초등학교로 떠나기 위한 채비를 했다. 봉사단원들의 출발에 앞서 몸과 맘으로 온기를 한껏 나눴던 캄보디아 아이들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단원들은 무릎을 꿇고 아이들과 일일이 시선을 맞추며 쿡찬의 전교생 한 명씩을 안아주고 인사했다. 단원들도 북받치는 맘을 억누르지 못하고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코안 킨 쿡찬초등학교 교장.

코안 킨(Koan Kin) 쿡찬초등학교 교장은 “캄보디아의 경제 성장과 함께 제주청소년봉사단은 물론 [제주의소리]의 후원에 힘입어 아이들의 부모도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며 “일찍 결혼한 학생을 제외하고 정규 과정을 수료하고 진학하는 학생의 비율이 100%에 달했다. 제주청소년 봉사단의 후원이 없었다면 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아이들 또한 봉사단의 활동을 통해 영감을 받아 더 밝아지고 용기를 가지게 됐다. 제주청소년봉사단의 슬로건처럼 ‘Be The Change’된 것이다. 또 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봉사활동 중에는 쿡찬초등학교 후원에 더불어 시각, 청각, 언어 장애아동들을 위한 생존 수영 프로그램 진행에도 아름다운 후원금이 사용됐다.

2012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는 15세 미만 청소년이 매년 700여명 이상 익사한다고 한다. 익사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피치 못해 생업에 뛰어들었지만 수영을 하지 못해 위험에 노출된 경우다. 장애아동들이라면 익사의 위험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배경으로 제주청소년봉사단은 캄보디아 머메이드 스위밍 클럽과 함께 장애 아동 60명을 대상으로 위급 상황 시 자기 구제를 위한 생존 수영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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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청소년봉사단은 캄보디아 머메이드 스위밍 클럽과 함께 장애 아동 60명을 대상으로 위급 상황 시 자기 구제를 위한 생존 수영 수업을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쿡찬초 수업에 들어가기 전 새벽 시간을 일찍 활용한 봉사단은 장애 학생들에게 미리 익힌 수화로 환영 인사를 전하고 물안경 착용과 길 안내를 도왔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던 봉사단원들은 게임을 통해 더 가까워지고 난 뒤 부쩍 친해진 모습이었다.

시각, 청각, 언어 장애 아동들이 다니는 스페셜 에듀케이션 하이스쿨의 교장 레(Leak, 30)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기쁘다. 아이들의 생존과 직결된 소중한 교육에 후원해주셔서 감사하다. 제주청소년봉사단이 기회가 된다면 우리 학교에도 찾아와 교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 캄보디아=최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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