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가 간다] 새해 설 명절, 고향가지 못한 외국인 유학생 청춘들의 이야기

기자들이 쓴 기사가 그대로 신문에 실리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데스크의 검토와 수정 과정인 소위 '데스킹' 과정을 거쳐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데스킹이 좋은 기사의 절대적 충분 조건은 아니다. 가장 좋은 기사는 현장 취재에 임한 기자들의 펜에서 시작된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수습기자의 '좋은 기자 인큐베이터' 과정의 일환으로 '수습기자가 간다' 코너를 마련했다. 책상 앞 보도자료가 아닌 현장에서 취재수첩과 쉴새없이 싸우도록 해 수습기자가 혁신적이고 창의적이고 보다 저널리즘 정신이 충만한 ‘신인류’ 기자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독자께 관심과 성원을 당부 드린다.   [편집자 글] 

“제주 생활이 좋지만, 지금처럼 한국 명절이 되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음식이 생각나요”

겨울방학을 맞은 제주대학교 교정은 조용하다. 그중에서도 기숙사는 적막하기까지 하다. 설 명절을 사흘 앞두고 찾아간 기숙사의 저녁 풍경은 방학을 맞아 많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라 매우 한산했다. 

그러나 설 명절에도 기숙사에 남아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몇몇 학생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여 얼른 걸음을 옮겼다. 어깨 넘어 들려오는 그들의 언어는 달랐다. 저 이역만리에서 넘어온 외국인 유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명절에도 자신들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리운 고국, 아른거리는 고향을 마음에 품고 꿈을 그려내는 그 소리를 들어봤다.

페루 출신 플로르(Flor)는 2012년, 여행을 통해 제주를 경험했다. 그녀는 페루에서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와 여행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나며 한국을 알았다. “그때 만난 제주 친구가 초대해서 (한국을)여행 했었다. 제주도가 너무 좋아 2015년, 본격적인 공부를 하러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설 명절에 기숙사에 머문다. 작년에는 친구의 초대로 경남 사천에서 친구 가족들과 함께 명절 차례를 경험했다. “친척들이 모여 밥을 먹고 인사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이 좋아보였다”고 말하는 얼굴엔 즐거웠던 표정과 그리움이 묻어났다. “새해를 맞아 고향에 다녀오고 싶지만, 직항이 없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갈 수 없지만, 그래도 또다른 고향 제주에서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녀는 한때 긴 유학 생활에 찾아온 향수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병원을 가니 ‘페루의 생활과 달라서’가 이유였다. “그날 병원 진료가 끝나고 제주대 기숙사 부엌에서 페루 음식을 해 먹었다. 고향 생각이 많이 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문득 고단함이 묻어났다.

생활 환경과 문화가 다른 제주에서의 유학생활 중 가장 그리운 것이 뭐냐 물었다. 그녀는 페루 대표 음식인 세비체(ceviche)를 가족들과 함께 먹고 싶다고 했다. 평생 살아온 고국의 음식은 그녀에게 가장 그리운 ‘고향’이었다.

페루에서 온 플로르(Flor)씨는 자신의 고향 ‘아레키바’가 부산과 비슷하다 했다. ⓒ제주의소리
페루에서 온 플로르(Flor)씨는 자신의 고향 ‘아레키바’가 부산과 비슷하다고 했다.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늦깎이 유학 중인 그녀는 제주인들의 따뜻한 마음에 제주에서 오랫동안 살고 싶다고 했다.   ⓒ제주의소리

지구 반대편에서 온 그녀에게 한국 문화는 생소했다. “한국은 나이를 많이 말한다. 나이를 신경 쓰지 않지만, 내 나이를 안 사람들이 나이 많단 말을 하니 심리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받아 말하는 것을 꺼린다. 적응 못한 한국 문화라 생각한다”며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제주 생활은 언어 때문에 힘들었다며 “일반적인 회화는 가능하지만, 대학원에서 쓰는 단어는 한자가 많아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친구 중에는 자신의 서툰 발음을 흉내 내 상처를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가볍게 생각할 수 있지만, 외국인 친구들은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고 조언했다.  

“제주는 국제도시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외국인을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육지 사람들은 가끔 제주도가 섬이라서 자기끼리의 폐쇄적인 문화를 만든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제주 사람들의 마음이 더 따뜻하다고 느꼈다. 그런 점이 좋아 제주에 계속 살고 싶다. 고향에 가더라도 다시 (제주로) 올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한국-페루 FTA를 계기로 무역에 관심이 생겨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앞으로 “제주와 페루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취업하거나 관련분야의 사업을 하고 싶다”는 당찬 목표를 밝혔다. 

제주대학교 한국어과에 재학 중인 아프가니스탄 출신, 자흐러(Zahra olyatoo) 씨도 만났다. 약학을 전공한 그녀는 2018년 가을, 제주에 왔다. 스스로를 아프간 유일의 제주인이라 밝혔다. “서울, 부산에선 고향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지만, 그만큼 못 배웠을 것 같다. 제주에서 직접 부딪치며 배우니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말하는 표정에는 도전 정신이 깃든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의 말에 고됨도 느껴졌다. 도움받을 곳 하나 없었던 제주는 처음엔 전쟁터였다. “처음 제주에 왔을때에는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아프간 사람이 없어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 덕에 지금은 한국 친구도 많다”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녀 역시 이번 설 명절엔 기숙사에서 보낸다. “방학이고 새해를 맞았지만 고향엔 여건상 갈 수 없다. 가는데도 24시간이 걸린다. 비용도 많이 들고 직항 노선이 없어서 가기 힘들다.”며 “그리고 내가 살았던 곳이 전쟁 피해를 많이 본 지역이라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아프간에도 설과 비슷한 명절 ‘이드(Eid)’가 있단다. 한 달 동안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단식하는 ‘라마단(Ramadan)’이 끝남을 축하하는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의 준말이다. 올해는 5월 24일이 시작이다. “설과 같이 3일간 축제를 한다. 아침에 기도하고 가족과 밥을 먹는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 집에서 즐겁게 보낸다”고 말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버스 타는 일이 힘들었다”며 “이슬람에서는 남녀가 같이 앉는 것을 금기해서 남자가 옆에 앉으면 불편했다. 지금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웃으며 말하는 그녀는 벌써 한국사람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한국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세종대왕이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만드는 모습이 대단했다”며 “아프간 속담에 ‘역사를 모르면 다시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역사를 좋아하면서도, 한자 쓰임이 많아 어렵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해맑은 모습의 그녀.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그늘도 읽혀졌다. 그녀는 고향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로 아픔을 느낀다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아프간에 가면 결혼해야 하는데, 대가족으로 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며 대학원에서 공중보건을 전공해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를 말했다. 

제주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아프간에서는 뭐든지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는 다들 제게 꿈과 계획이 뭐냐고 물어봐서 좋았다”며 꿈꾸고 있는 미래를 떠올렸는지 행복한 표정이 저절로 지어졌다.

그녀는 인터뷰가 끝난 뒤 역으로 기자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제주 현안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중국인이 소유하는 토지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몇 차례 질문이 오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진 찍는 것은 사양했다. 그녀는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좋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기숙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명절을 맞아 기숙사 곳곳의 불이 꺼져있는 모습.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제주의소리
명절을 맞아 기숙사 곳곳의 불이 꺼져있는 모습.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제주의소리

한국 제주에서 새해와 설 명절을 맞았지만 여러 이유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그들은 제주의 다양한 현안에 관심을 가질 만큼 같은 우리의 일상을 공유하는 제주인이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주를 담아내고 있다. 이국만리에서의 유학생활은 녹록치 않다.

그런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 서로의 소리를 들어보라. 그들과 우리 사이가, 그들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성큼 가까이에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설 명절을 맞아 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를 건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랬다면 얼른 "친구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기사에서라도 설 인사를 남기련다. "제주에서 유학중인 모든 외국인분들. 나라마다 명절과 문화는 다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찬우 수습기자 ⓒ제주의소리
김찬우 수습기자 ⓒ제주의소리

김찬우 수습기자는?

2020년 1월 벽두 입사한 새내기. 제주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언론홍보학을 복수전공 했다. 태어난 곳은 제주가 아니지만 제주에서 공부했고 제주사람으로 뿌리내리고 싶은 청년이다. ‘같이의 가치’를 좌우명으로 삼고, ‘시대의 소리, 진실의 소리’를 내기 위해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배워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