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55. '북한미술과 분단미술', 박계리, 아트북스, 2019.

2020년 새해 벽두 대통령 신년사의 북한 관련 언급이 주목받고 있다. 핵심은 매개자에서 당사자로의 역할 전환이다. 그동안 북한과 미국이 관계 개선을 촉진하는 매개자 역할에서 직접 남북 교류를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당사자 역할을 감당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지난 3년간의 남북 정세는 북한과 미국이 관계 정상화에 따라 온도차가 컸다. 북미관계 개선이 예상보다 늘어지자 오랜 시간동안 절제해왔던 문재인 정부가 본격적으로 남북 관계의 당사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할 모양이다. 이에 따라 몇 년 전부터 기대는 컸지만 실제 성사 가능성은 점점 낮아졌던 남북 교류가 본격화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다시 일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남한의 총선 등 복잡한 정치 일정 속에서 남북 관계가 전환점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정치의 결정력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 남북 문제인지라, 남한과 북한의 교류는 쌍방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급상승과 급전직하 사이를 오간다. 그동안 문화 분야에서도 남북 교류를 위한 준비와 물밑 접촉은 많이 있었지만 성과는 거의 없었다. 문화 분야의 교류라는 게 주로 민간의 교류를 통해 출구를 모색해야 하지만 남한과 달리 북한은 민간이라는 이름을 달아도 그것이 곧 정치의 의중을 확실하게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정치의 변화없이 민간의 자율적인 교류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새해에는 이렇듯 막혀있는 남북의 길이 뚫려 남과 북의 문화 분야, 특히 예술을 통한 소통을 기대하며 이 책 '북한미술과 분단미술'을 소개한다.

저자 박계리는 북한 미술 연구자로 정평이 났다. 거의 20년 전에 일간지 미술 비평 공모에 북한 미술 관련 글로 등단한 이래 꾸준히 관련 논문을 발표해왔다. 이 책은 오랜 시간동안 축적한 북한 미술 연구 성과를 묶은 것이다. 미술사적 관점을 유지하되 작품별 분석과 해석을 중심으로 흥미롭게 논지를 이어가고 있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이 책은 두 개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북한을 만든 미술’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이 만든 미술’이다. 전자는 우상화 과정의 미술, 선군정치와 미술, 그리고 풍경과 감성을 담은 미술 등을 소개한다. 후자는 분단의 트라우마와 DMZ, 북한을 다룬 미술 등으로 이뤄진다. 

북한 미술의 핵심은 아무래도 정치 선전 미술에 있다. 그중에서도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와 관련한 작품들이 가장 중요하다. 이 책의 1부 첫 장이 우상화 주제의 회화와 조각임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북한미술의 특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점은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바와 같이 영웅주의이다. 북한에서의 영웅은 두말할 나위 없이 수령이다. 김일성 부자를 중심으로 한 영웅의 형상을 ‘가장 크게, 가장 높게, 가장 진하게, 가장 중앙에’ 표현하는 것이 기본이다. 화면이나 공간 속에서 중심 인물의 주목도를 높이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으로서 인류사가 체득한 보편적인 미술 법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주로 초상화와 기록화 장르에 집중한 이 그림들은 영웅주의 미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기념비는 북한 미술의 핵심이자 심지어 수출까지 가능한 분야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특징이기도 한 이러한 현상은 인물의 묘사에 충실한 리얼리즘 미술의 기법적 완성도에서 출발한다.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의 전형이다. 수령의 기념비를 중심으로 한 혁명적 기념비들은 그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논외로 한다면 부러울 정도로 훌륭한 걸작들이 많다. 나라가 나라답기 위해서 기본을 어떻게 쌓아나가는지를 충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른바 국가주의를 극복해야 한 테제로 상정한다면, 도대체 그 극복의 대상인 국가주의가 어떻게 존재하는지가 보여야 할 텐데, 적어도 공공미술 분야에 있어서 북한의 국가주의가 확연하게 그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 남한의 기념비미술 또는 공공미술의 면면은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북한 미술의 또 다른 특징은 전통을 계승하려는 노력에 있다. 전통적 미술 기법과 미감을 현대 미술에 접목하려는 노력은 이론과 창작의 관점에서 이어졌다. 그 결과 조선화라는 일종의 양식화한 회화 개념과 장르를 개발했는데, 남한으로 치면 동양화 또는 한국화라고 부르는 수묵채색화 계열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그림이 서구화한 남한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고 한번쯤 되돌아봐야할 지점이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사용해온 동양화라는 말이 개념과 제도로 살아있는 남한에 비해, 북한은 조선화라는 개념과 방법, 양식, 제도, 장르를 개척했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우리가 북한 미술을 제대로 들여다봐야할 이유들 가운데 하나이다. 

남한 미술에서 전통은 잘 지켜서 대를 이어주는 것이 중요한 반면, 북한 미술에서는 그것을 현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북한의 전통은 박제화한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체현 가능한 실재 속의 전통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골격을 유지하되 음계와 음역을 혁신적으로 넓힌 북한의 전통악기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듯이 북한은 전통의 계승과 혁신이라는 두 가치를 확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문화적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서의 국가의 모습을 북한은 전통과 현대라는 키워드 속에 확연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한 북한 미술은 풍경화를 통하여 조국산천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한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연 환경에 대한 예찬도 조국애로 이어진다고 하는 저자의 분석은 미술의 정치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 미술의 풍경화는 역사화나 초상화 등 사람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보다는 남한에서의 소통가능성이 높다. 조국산천에 대한 예찬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공통 분모로 존재하는 요소이다. 미술 분야 남북교류의 단골 메뉴로 남북한 산하 전시가 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주제로 남북 미술 교류전을 열자는 생각은 이곳저곳에서 오가기도 한다. 멀어 보이지만 현실 앞으로 바짝 다가오고 있는 주제다. 

남한의 미술가들이 표현한 분단 모티프의 미술은 주로 전쟁과 평화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미술이 영웅주의와 국가주의 중심이라면 남한의 분단미술은 그것에 대한 비판과 풍자, 재해석 등에 천착한다. 이용백의 퍼포먼스, 사진과 영상 작업 '엔젤 솔저'는 꽃무늬를 덮어쓴 군인 모습으로 역설적인 평화 메시지를 전한다. 오형근과 노순택의 사진 연작들은 남한과 북한의 군사 문화 또는 전체주의 문화에 대한 비판적 기록이다. 탈북화가 선무는 북한 미술 스타일을 가지고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작업을 한다. 물론 그는 남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도 가지고 있다. 스스로 경계없는 삶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선무(線無)라는 가명을 지은 예술가다운 태도이다.

이 책은 전통 미술과 현대 미술 논의를 배경으로 북한 미술을 연구해온 전문가의 연구 성과를 담고 있으면서도 이론적인 수사나 미술사적인 사실들의 나열보다는 비평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어 대중 독자들도 읽기 편하다. 특히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 북한 미술의 면면을 실감나게 풀어나가고 있다는 게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 책은 이렇듯 대표 작품들을 통해 북한 미술의 정체성을 성립해나간 과정들을 보여주고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동시대적 가치를 들춰내 친절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의 분단 미술 논의는 분단 직전의 상황, 즉 제주4.3의 한 장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제주4.3평화기념관에도 있는 강요배의 회화 작품에 주목한다. 

"<한라산 자락 백성>은 통일의 염원을 담은 풍경화이다.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한라산 자락에 모인 사람들은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소원을 빌고 있다. 5.10단독선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한라산 자라에 모여든 사람들의 행렬을 통해 분단이 아닌 통일된 한반도를 꿈꾸는 사람들의 바람을 담아낸 작품이다."

남한 단독 선거에 따른 분단의 고착화에 반대하여, 선거 보이코트(boycott)라는 반분단 운동을 펼쳤던 위대한 제주 도민들의 모습을 숭고한 자연 풍광과 함께 담아낸 강요배의 걸작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에 대한 박계리의 비평은 이 책이 말하는 분단 미술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려준다. 분단 미술은 분단에 의한 미술이면서, 동시에 분단을 반대하고 분단을 넘어서려는 미술이다. 북한 미술과 분단 미술. 그것은 분단 체제가 낳은 두 가지 미술이다. 물론 양자의 무게는 확연히 다르다. 국가 체제를 전제로 한 북한 미술의 두께와 남한 사회 일각의 분단 미술은 그 범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두 미술을 함께 다룬 것은 분단 체제로 인한 가치의 차이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차이를 분명하게 아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첫걸음이자 지름길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경기문화재단 '평화예술대장정' 프로젝트 총감독 겸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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