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주민들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는 겸허한 도정이 아쉽다 / 김헌범

탐욕의 막장

제주 제2공항 건설이 결국 강행되는 것인가. 억겁의 세월을 지켜오며 언제나 우리들의 영원한 모태였던 제주 산하이건만, 개발의 칼날이 그 심장부까지 서슴없이 위협하는 모습을 보면 이제 절망감마저 느낄 정도다. 지역발전과 경제효과로 포장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은 결국 막장까지 온 것인가. 제2공항 건설 추진과정을 보면 정말로 자본주의 인간의 욕망은 물질적 이익이라면 지옥까지 쫓아간다는 말을 실감한다.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이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근 오름에 올라서서 갓 떠오른 아침 해와, 어스름한 장막 속에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저 성산포 바다와 우도를 바라보는 고요한 감동의 시간이 하늘을 오르내리는 비행기들의 귀를 째는 굉음에 영원히 빼앗길 날이 머지않았다. 

혹자는 제2공항 부지가 성산포 지역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왠 호들갑이냐고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생태학자들은 자연은 모든 부분들이 함께 촘촘한 그물망처럼 연결돼 하나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다. 하잘 것 없는 잡초마저 사라지면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존권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게 생태학 먹이사슬의 원리이다. 자연에는 쓸모없는 게 없다. 모든 것이 서로 도움을 주고 의지한다.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곧 부분인 게 자연이다. 일부가 파괴되면 전체가 파괴되는 것이다. 이착륙을 위한 시계 확보의 필요상 공항 주변의 오름들 중 일부가 잘려나가고 천연동굴들과 인근 철새도래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제주도와 관련 당국은 애써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견지하며 실태조사를 위한 민관합동조사마저 거부하고 있다. 

엘리트의 립서비스

제2공항 건설과정과 운영이 제주의 자연과 생존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만은 분명하다. 백번 양보해서 그럼에도 새로운 공항이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번 파괴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게 자연이기에 더욱 차분하게 신중을 기하며 모든 문제들을 철저하게 점검하는 것은 아무리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제2공항 계획이 발표된 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제2공항 건설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더욱 커져만 가는 상황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공항 건설 계획이 거의 확정단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도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국토부마저 제주도의 여론수렴에 맡기겠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물론 복지부동(伏地不動)이 기본적 타성인 관료 조직의 교묘한 ‘자신의 책임 떠넘기기’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민사회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제주발전과 도민 이익, 상생발전 방안을 도모해나가겠다’ 고 화답한 원 지사의 발언에서는 과연 갈등해결을 위한 의지를 읽을 수 있을까. 완전히 “낫싱(nothing)"이다. 처음부터 제2공항 추진에 마음이 기울대로 기울어진 원 지사가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에게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재검토하기 위한 의견수렴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시종일관 그의 태도다. 그의 의견수렴 발언은 엘리트 정치인들이 ‘가여삐’ 여기는 힘없는 ‘백성’들에 대한 ‘립서비스’처럼 들리는 게 당연하다.  

궁색한 토론회

도민들이 원하는 의견수렴은 윗사람의 오만한 설득이 아니다. 진정한 의견수렴은 도민들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고 스스로의 판단에 맡겨 주체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원 지사는 자신이 도민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지난 몇 차례에 걸친 원 지사와 제2공항 반대 측과의 토론을 관심 있게 지켜본 소감은 그의 소신과 논리적 타당성 간 현격한 불균형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원 지사의 현 공항과 제2공항에 대한 지식은 매우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고, 반면에 반대측 토론자는 매우 해박하고 논리정연했으며 구체적 자료들에 의해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했다. 원 지사는 국토부의 주장만 반복할 뿐 반대 측의 반론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궁색한 답변만 늘어놓는 원 지사에게 반대 측 토론자의 말을 끊는 토론회 사회자가 구세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원 지사는 여론 수렴을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진정한 여론 조사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추진 여부나 입지를 결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법적으로도 근거가 없다”고 반대한다. 그러면서도 세계적 공항연구전문연구기관인 파리항공공단 엔지니어링사(ADPi)가 현 공항 확장을 대안으로 제시한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특유의 기묘한 논리로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에게는 국토부 관료들과 찬성 전문가만 전문가이고, 반대 전문가는 전문가가 아닌가. 그의 확증편향에서 나오는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놀랍다. 제2공항이 백년대계라면서 의견도 제대로 듣지 않고 왜 그리 서두르는가. 숨겼던 진실이 하나, 둘씩 계속 새롭게 드러나는 게 두려운 것인가. 제2공항이 백년대계라면, 제주의 환경과 생존권은 천년, 만년, 억만년 대계일 것이다.

뒤바뀐 ‘남자 박근혜’

최근 원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남자 박근혜 같다”라고 빈정대 큰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아마도 문 대통령 자신과 몇몇 측근들만의 생각에 갇힌 소통 부재를 지적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제2공항에 관한한 반대여론에 귀를 꽁꽁 틀어막고 공사를 강행하려는 그가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한 마디로 ‘누워서 침 뱉기’ 격이다. 문 정부는 신 원전 건설 중단 결정에 있어서 역대 ‘삽질’ 독재 정권들과는 달리 공론화 여론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에 겸허히 따랐고 자신의 의사를 과감히 취소하는 겸허한 자세를 보였다. 반면에 원 지사는 도민들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론화 여론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원 지사의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대통령과 지사를 선출하는 모든 선거에도 오직 정치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법. 엘리트임을 자부하는 원 지사가 옳다고 해서 도민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민들에게 맡겨야 한다. 도민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것은 철 지난 개발독재주의에서나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제2공항은 원 지사가 즐겨 활용하는 ‘에어시티’와 같은 경제논리로 ‘사탕발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 해당 주민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단식농성까지 불사하겠는가. 한 많은 민초의 삶 속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며 수십대를 지켜온 유서 깊은 마을들과 선대들의 혼과 뼈가 묻힌 터전을 송두리째 활주로 아스팔트에 내줘야 하는 주민들의 입장이 돼서 다시 생각해보라. 좌고우면하지 말고 도민들을 위한, 도민들의 지사로 돌아가야 한다. 그 길은 오직 공론화 과정에 의한 여론조사뿐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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