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기획-제주형교육혁신 다혼디] ③ 지역사회 함께하는 교육과정

지역사회 연계 교육이 활성화 된 종달초등학교 학생들. 사진=종달초등학교
지역사회 연계 교육이 활성화 된 종달초등학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 격언은 교육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문구다. 교육은 학교 현장만이 아닌 지역 공동체의 삶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학교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닌, 그 지역의 역사와 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주형 자율학교인 '다혼디배움학교'는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 공동체를 이해하는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학생들은 지역사회로 나아갔고, 마을은 기꺼이 학생들에게 품을 내어줬다.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아이들은 그 자체로 자신감과 책임감을 지니게 됐다.

시작은 학부모와의 협력적 관계 구축이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활동 공개를 정례화하고, 학부모들이 교육정책을 이해하는데 힘을 싣는다. 연수 기회는 교사들의 것만이 아닌 학부모의 몫이기도 하다.

이는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로도 그대로 연결된다. 학교 교육활동에 지역사회 참여를 확대하고, 지역주민에 대한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단계까지 이어지는 모델이다.

종달초등하교 특별교과 교재 '종달이야기'.
종달초등하교 특별교과 교재 '종달이야기'.

2015년 다혼디배움학교의 태동을 함께한 제주시 구좌읍 종달초등학교(교장 김명선)에는 특별한 교과목이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한 제주이해교육 '종달'이 그것이다.

첫 해 학교 구성원들에 의해 마을 나들이, 마을과 함께하는 교육활동, 마을생태교육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돼오다 2017년부터 '종달 이야기'라는 교재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1~3학년은 교재를 중심으로 학교와 마을에 대해 배우고 4학년은 제주의 물, 5학년은 해녀, 6학년은 4.3을 주제로 정해 교육활동이 전개된다.

"아이들과 함께 마을로 나간 교사들은 마을에 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고 해요. 종달리의 해신제도 아이들에겐 어색한 행사였고, 온 마을 햇볕이 좋은 곳과 마당에 우뭇가사리를 말리는 광경도 교실에서는 알 수 없었던 모습이었죠. 그렇지만 관광객들도 다 아는 종달의 가치를 우리 아이들은 배우지 못한 채 지나가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마을의 교육적 소재들을 수업에 갖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김명선 종달초 교장의 설명이다.

마을로 발을 내딛기 시작하자 기대는 곧 확신이 됐다. 처음에는 그저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 속에서 소속감과 일체감을 얻기 시작했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갓 10살을 넘긴 아이들이 누구에게나 자신의 마을을 자신있게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제주를 배우는 과정은 초등학교에서 국한되지 않는다. 종달초 졸업생 대다수가 진학하는 세화중학교(교장 송시태) 역시 마을을 이해하는 교육이 이뤄진다.

세화중 고학년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다. 가령 1학년에 배우는 '우리 고장의 역사·문화 바로 알기' 교육의 경우, 국어 과목에선 '우리 고장의 설화 알기', 도덕은 '제주 해녀항쟁을 통해 살펴보는 삶의 목적', 사회는 '우리 지역의 다양한 문화 알기', 과학은 '우리 고장에서 위협받고 있는 생물 구하기', 미술은 '제주신화와 해녀문화 표현하기' 등 다방면으로 뻗어나간다.

지역사회로 나아가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세화중학교.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이뤄지고 있는 세화중학교. 세화중 학생들이 마을 내에서 현장활동을 벌이는 모습. 

'지역사회와 해녀문화 알기'라는 주제로 2학년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과정 역시 영어는 '지역사회 소개 글쓰기', 과학은 '제주 날씨와 해녀의 삶', 음악은 '제주의 해녀민요', 한문은 '해녀 관련 한자의 뜻과 유래', 기술·가정은 '바다 자원 및 효율적인 활용 방법' 등으로 다양한 측면의 교육이 진행된다.

송시태 세화중 교장은 "교과 간 경계를 넘어 구성원 간의 소통과 협력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로, 주제와 관련지어 다양한 학습을 함으로써 학생들이 통합적 사고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있다"고 설명했다.

송 교장은 "다혼디배움학교가 아니었다면 접목하기 힘들었을 교과 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결국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발휘하고 있더라"며 그간의 성과를 되돌아봤다.

이 같은 사례와 맞물려 구좌지역에는 지난해 '구좌읍교육발전협의회'가 구성됐다. 관내 학교장, 학교운영위원장, 학부모회장 등 교육 주체들을 비롯해 지역구 의원, 읍장, 마을이장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는 협의체가 만들어져 아이들의 교육을 학교만이 아닌 지역공동체가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중학교(교장 김희선)는 2017년부터 3년에 걸쳐 지역내 무릉리, 신도리, 영락리 등의 마을을 탐방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탐방 수업 장소도 학생들이 모둠별로 직접 선정했고, 지역조사도 학생들의 손으로 이뤄졌다. 탐방 장소마다 미리 준비한 학생들이 발표자료를 활용해 안내하고, 지도교사는 이를 피드백하는 방식의 교육이다.

수업을 디자인 한 아이들은 교과서를 직접 만드는 능력까지 갖추게 됐다. △마을지리 △역사와 인물 △유적·유물 △자연 △맛집·멋집 등 주제로 나눠 각 대단원에는 마을별 중단원을 세분화했다. 단순 정보만이 아닌 마을을 둘러보며 느낀 소감문과 지역주민 인터뷰도 포함시켰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한 시간은 '우리 집 소개하기' 시간이었다.

지역사회 연계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무릉중학교.
지역사회 연계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무릉중학교.

최병훈 무릉중 교사는 "처음 계획에는 없던 것이었으나, 이동 중 한 학생이 '저기가 우리 집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즉석에서 동의를 구해 '우리 집 소개하기' 시간을 가졌다. 쑥스러워하면서도 가족과 집의 내력, 추억, 나의 방 등을 소개했고 친구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곧 '우리 집도 가요'라는 요청이 이어졌고, 동의한 학생들의 집을 돌아보며 추억을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아이들 하나 하나의 자라온 공간을 보며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공유하는 시간이 됐다.

제주시 애월읍 납읍초등학교(신금이)도 마을과 함께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개교기념일과 연계해 열리는 '우리마을 알기' 프로그램에는 마을 이장과 지역개발위원장 등이 역사교육 강연자로 참석하며, 학교 선배와의 토크콘서트를 통해 학교·마을에 대해 배워가는 시간을 갖는다.

지역 내 자생단체장이 학교를 돕고, 학생들도 지역 자생단체 주관 행사에 축하공연등으로 참여하며 교류를 이어간다.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탄생시킨 것은 주목할만한 성과다.

다혼디배움학교의 가장 중요한 취지 중 하나는 '지역성'이다. 관이 주도하는 사업이 아닌 마을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교육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다혼디 교육현장 곳곳에서는 마을이 아이들을 살리고, 아이들이 마을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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