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56. 메밀죽에 목 걸린다

* 모물죽 : 메밀죽
* 야게 : 목
* 건다 : 걸린다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 함이다. 사리(事理)를 좇아 분별(分別)해야 함에도 이것저것 살피지 않았다 낭패 사는 경우가 많은 게 사람의 일이다. 일에는 이치가 있어 그 이치를 따라야 온전하다는 경험칙이다. 닥치는 대로 하는 것처럼 무모한 짓은 없다.

음식 중에 메밀죽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운 게 없다. 입안으로 떠 넣으면 씹을 것 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흔히 쉬운 일을 빗대어 ‘누워서 식은 죽 먹기’라 하지만, 식은 죽보다 더 잘 내려가는 게 메밀죽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매끌매끌 잘 내려간다고 단숨에 먹어 치우려 덤볐다가는 목구멍이 막히는 수가 있다. 한꺼번에 내리려다 걸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곤욕이 없다.

비단 음식을 먹는 일에 그칠 게 아니다. 어떤 일을 함에는 과정이 있고 고비가 있는 법이다. 난도(難度)가 없는 일이라고 얕잡아 봤다 엉망이 될 수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매한가지다. 상대를 지나치게 업신여겨서는 안된다. 누구에게든 나름의 실력과 타고난 능력 혹은 축적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할 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런 신중한 태도나 자세가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이끌고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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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끌매끌 잘 내려간다고 단숨에 먹어 치우려 덤볐다가는 목구멍이 막히는 수가 있다. 한꺼번에 내리려다 걸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곤욕이 없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기지피 백전불패(知己知彼 百戰不敗)라, 하는 병법도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바로 상대를 알아야 한다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나를 알고 남도 알면 백 번 싸워도 결코 패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을 성공적으로 가져가려면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일깨움이니, 참으로 금언이 아닐 수 없다.

비근한 예를 들겠다.

좀 오래된 일이다. 교단에서 위병을 앓아 수업 중에 한때 교탁에 엎디어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한동안 부대끼다 서울에 올라가 세브란스병원에서 확진을 받아 수술을 받았다. 위 3분의 2를 제거한 대수술이었다. 경과가 좋았다. 병상에 누워 끼마다 비스킷 반쪽에 물 한 모금씩 먹고 있는 내게 아침 병실을 순회하던 외과 의사가 불쑥 한마디 하는 게 아닌가.

“선생님, 앞으로는 우유도 두어 번 씹어 먹어야 합니다.”

그 후, 나는 물을 들이켤 때, 우유를 마실 때, 절대 한꺼번에 입안에 넣어 벌름벌름 하지 않는다. 무얼 마시려는 순간, 그 외과의사의 말이 귓전으로 떨어진다.

‘밥만 씹는 게 아니잖아. 물도 우유도 씹어 먹어야지.’

‘모물죽에 야게 건다’, 기막힌 말이다. 유명병원의 외과의사 뺨칠 명언 아닌가. 메물죽이 제아무리 부드럽다 하나 입안에 떠 넣으면 오물오물 몇 번 씹는 시늉이라도 해서 넘겨야 한다. ‘야게기 건다.’ 예전에 많이 쓰던 정겨운 우리 방언이다. ‘목’을 ‘야게’라 했으니, 거친 듯 친근하게 다가오는 제주 특유의 언어다.

비슷한 말들이 있다.

‘가지낭에도 목 걸령 죽곡, 젭싯물에도 빠졍 죽나.’
‘나무렌 낭에 눈 걸린다.’
‘우미지에 발 빈다.’ (우미지 : 깊은 바다에 나는 우뭇가사리. 빈다 : 벤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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