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4박5일 제주여행 중국관광객 주요동선 상인들 ‘사태 장기화 될까’ 발 동동

 

이웃나라의 일로 여겨졌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자 제주지역 주요 상권은 마치 초상집처럼 침통한 분위기다. 상인들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예측불허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자칫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까지 나돌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4박5일간의 제주 여행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직후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중국인 관광객 A(52.여)씨의 제주시내 주요 동선을 3일 쫒아가 살펴봤다. 

중국인 A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제주사회에 전해진 것은 지난 1일 밤. 제주를 거쳐 간 중국인 여성이 귀국 직후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제주의소리]의 단독 보도로 알려지자 제주는 물론 전국으로의 파장은 일파만파 번져 나갔다. 

A씨가 잠복기간 중 오간 것으로 파악되는 제주 주요상권과 관광지 등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경제위기 추세로 가뜩이나 위축됐던 상권이 ‘신종 코로나’ 여파로 고사 위기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긴장감이 나도는 실정이다.

제주를 4박5일 여행한 중국인 관광객이 귀국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가운데, 평소 중국인 등 관광객들로 넘쳐 나던 제주시 누웨모루거리가 3일 낮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제주의소리
제주를 4박5일 여행한 중국인 관광객이 귀국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가운데, 평소 중국인 등 관광객들로 넘쳐 나던 제주시 누웨모루거리가 3일 낮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연동 누웨모루 거리.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활발하게 오가던 이곳은 이번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A씨는 이 거리에서 쇼핑과 산책을 즐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인지 이날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돌았다.

멀찍이서 중국어 성조가 들려오자 본능적으로 중국인 무리로부터 몸을 반대편으로 피하는 내국인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인근 옷가게 상인 강모씨는 “상권 특성 상 최근 중국인 방문이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안 그래도 근래 들어 손님이 없었는데, 이제 직원 월급까지 걱정하게 생겼다. 문을 열어 놓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손님이 뚝 끊겼다”고 한탄했다.

그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파동 때도 최악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더 심한 악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이미 주변 상인들도 떠나갈 사람들은 다 떠나갔지만 ‘더 나빠질게 있겠나’ 싶어서 버틴다. 이젠 그마저도 의미도 없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웨모루 거리 중앙에 위치한 관광안내소 관계자는 “중국인, 내국인 할 것 없이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는데, 점심시간임에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이 정도인 것은 아예 찾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봐도 될 정도”라고 우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중국인관광객이 다녀간 제주시 칠성로상점가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를 4박5일 여행한 중국인 관광객이 귀국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가운데, 3일 낮 칠성로 상점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제주의소리
제주를 4박5일 여행한 중국인 관광객이 귀국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가운데,3일 낮 한적한 제주시 도두동 해안도로. ⓒ제주의소리
제주를 4박5일 여행한 중국인 관광객이 귀국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가운데, 이 중국인이 거쳐간 지역상권들에 발길이 뚝 끊겼다. 3일 낮 한적한 제주시 도두동 해안도로 모습. ⓒ제주의소리

A씨가 묵었던 호텔은 찾아오는 손님을 돌려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호텔 측도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플로라제주제이드림 호텔 관계자는 “(신종코로나 확진 환자가)다녀갔다는 것을 저번 주말에 연락을 받아서 알게 됐다. CCTV 자료를 요청해서 즉각 협조했고, 현재 임시휴업을 준비 중에 있다. 오늘도 카운터에 있지만, 들어오는 손님들과 이미 들어와 있던 손님들을 다른 숙박업소로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23일부터 온도계를 비치해 입구에서부터 고객의 발열 상황을 체크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A씨가 호텔을 찾은 것은 21일이었다.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처했고, 피해를 입고 있다”며 “안전상의 이유로 호텔 이름을 오픈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전화로 다짜고짜 욕설을 하거나 하는 일은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끓는 속을 내비쳤다.

A씨가 해열제를 사간 것으로 확인된 누웨모루 거리의 H약국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안내문 한 장도 붙일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현재 해당 약국의 약사는 자가격리 중에 있다.

대기업 면세점들도 속절없이 문을 닫아야 했다. 

4박5일간 제주를 여행한 중국인 관광객이 방문한 관광지 에코랜드가 임시 휴업했다.
4박5일간 제주를 여행한 중국인 관광객이 방문했던 조천읍 에코랜드도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A씨가 제주여행 중 방문한 것으로 확인된 신라면세점 제주점과 롯데면세점 제주점은 2일 오후부터 문을 걸어 잠갔다.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던 면세점 입구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경비원만이 간간히 들르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문을 닫았다’는 의미의 X자 수신호를 보낼 뿐이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고객 안전을 위해 임시 휴업을 결정했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내걸려 있었다. 

구제주 중심 상권인 칠성로상점가도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제주도가 중국인 여성의 이동 동선을 파악한 결과 A씨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지난 23일이었다.

인근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고모씨는 “신종 코로나 확진 중국인의 이동 동선을 동창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을 통해 받아 봤는데, 칠성통이 적혀 있길래 아찔했다.”며 “당장 나부터 '우리 가게에 중국인이 다녀갔었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는데, 어느 누가 마음 놓고 찾아올 수 있겠나. 중국인도 중국인이지만 내국인도 다 도망갈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고씨는 “그 중국인이 어디에 들러서 뭘 만졌는지도 알 수 없고, 그냥 '칠성통에 다녀갔다'고만 하니 불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차라리 자세한 동선을 알려주는 게 서로 피해를 줄이는 길일텐데 제주도의 대처가 아쉽다”고 토로했다.

같은 시간 찾은 제주국제공항 역시 평소보다 매우 한산한 분위기였다. 특히 국제선 게이트를 통과하는 이들은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중국인관광객이 다녀간 제주시 누웨모루거리. ⓒ제주의소리
3일 낮 제주국제공항 국제선 입구 모습. 공항을 오가는 대다수 이용객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3일 낮 제주국제공항 대합실. 공항을 오가는 대다수 이용객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3일 낮 제주국제공항 대합실. 공항을 오가는 대다수 이용객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공항 대합실에 있던 열에 아홉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지난 설 연휴까지만 하더라도 마스크 착용자는 높게 잡아도 20~30%에 불과했지만, 일주일 사이에 풍경이 완전히 변했다.

얼어붙은 지역상권은 한동안 쉽게 회복되지 못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2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조치를 발표하며 18년 만에 제주도 무사증 입국제도를 일시 중단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장 오는 4일 오전 0시부터 중국 후베이성을 14일 이내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 있는 모든 외국인의 한국 입국을 전면 금지한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제주도는 중국인 A씨의 제주여행 일정을 고려해 시급한 방역조치가 필요한 동선을 역순으로 역학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의 잠복기가 최대 14일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로 미뤄 제주의 경우 오는 6일까지가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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