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학 전교조제주지부 4.3통일위원장

2018년 4월 제주4.3항쟁 70주년을 맞아 세계 환경과 섬 연구소 주관으로 4.3화해 콘퍼런스 참석차 미국 시카고대학과 연방의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때 4.3 수형인으로 고초를 받았던 80대의 부원휴, 박동수 할아버지가 동행하여 미국 학자와 학생들 앞에서 4.3 당시의 상황과 재판의 부당성을 증언하였다. 이 증언을 들은 호주의 학자는 큰 감동을 받고 케이크를 선물하며 수형인 할아버지의 고통을 위로하였다. 다음 해 두 분의 할아버지는 한국 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공고 기각 판결과 형사보상을 받았다. 

워싱턴 D.C. 미국 연방의회 방문에서는 캘리포니아 출신 마크 다카노 하원 의원과 4.3치유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 내 일본인 강제 구금 사건의 후손으로 4.3방문단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제주 4.3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미 태평양전쟁 당시 진주만 공습으로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된 미국은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 내 일본인 11만 명을 네바다주 사막 등에 강제 구금하였다. 대상자 중 3분의 2에 달하는 7만 여명이 미국에서 출생한 미국시민이었다. 당시 미국의 정치인과 국민들은 당연한 조치라고 여겼다. 이 조치에 불합리성을 주장한 코레마츠와 미국시민자유연합(ACLU)는 일본인들을 공정한 법정 다툼 없이 강제수용한 것은 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당시 수많은 미국인들뿐 아니라 일본인 단체들도 코레마츠를 비난했다. 강제수용에 협조하는 것이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취급을 받아 ‘왕따’를 당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법에 근거하지 않은 인권탄압적 조치였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코레마츠법이 제정되었다.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집단 수용을 당했던 일본인들에게 사과를 한다. 그리고 미국정부는 1980년 조사를 통해 집단 수용은 “인종 편견, 전쟁 히스테리 그리고 정치 지도력의 실패”라는 결론을 내렸다. 1988년에는 수용소 생활을 했던 일본인들에게 2만 달러씩 총 12억 달러의 보상도 이뤄졌다. 레이건 대통령의 서명으로 1인당 2만 불의 보상과 재단을 설치하여 인권과 역사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2019년도에는 4.3체험자인 두 분의 생존 할머니가 미국을 방문하여 펜실베니아대 4.3컨퍼런스에서 동광리와 북촌리 마을의 피해와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였다. 그리고 고완순 할머니는 UN 본부에서 진행된 4.3심포지엄에서 북촌리 학살 현장의 생존자로 4.3의 참혹함과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4.3문제는 과거의 문제로 덮어두어야 하고, 100년 후에 역사가 평가할 일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4.3문제는 엄연히 현재의 문제이다. 4.3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로 살아오고 있는 유족들이 있고, 군경의 탄압 등으로 인한 후유 장애를 안고 살아오고 있는 분들도 많다. 2018년 4.3 70주년을 맞아 추가 신고를 받은 결과 2만1839명(희생자 326명, 유족 2만1513명)이 접수되었다.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명예회복 실무위원회는 지속적으로 4.3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신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정부에 4.3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추가신고기간 연장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제 제주4.3은 미국의 코레마츠법 사례에 비춰보거나 한국 내 4.3수형인의 무죄판결, 4.3특별법 개정 요구 등을 살펴볼 때 제주사회의 절실한 문제이다. 4.3문제해결은 이미 국제화가 된 한국의 민주화와 국격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4.3특별법개정과 4.3트라우마센터 설치 등 법적이고 행정적조치가 조속히 실행되어야 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각성하고 백성들의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 / 오승학 전교조제주지부 4.3통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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