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58. 물이 빠지면 바위가 드러나고, 나무도 켜면 가루가 난다

* 물도 싸민 : 들었던 물이 빠지면, 간조(干潮) 때가 되면
* 여을 :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 (다섯 물은 음력 14일과 29일을 말하는데, 그날은 썰물이 많이 져서 바다 밑에 숨어 있던 바위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냄.)
* 낭도 싸민 : 나무(木)도 (톱으로) 켜면
* 고를이 : 가루가, 톱밥이

“바당에 물 봉봉 허였단, 물 싸난 못 보던 바우더리 다덜 나와시네.” 
(바다에 그득 들었던 물 빠지니까 큰 바위들이 다들 나왔다.)

예전에 어른들 입에 늘 오르내리던 말이다. 특히 여름날 바닷가에 가면 만조 때 물에 가려 있던 바위들이 간조가 되면 모두 그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곤 했다. 없던 바위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바닷물이 감췄다 물이 빠지자 내놓는 현상이다. 어른이 방언으로 하는 말을 자꾸 들으면서 아이들 입에도 오르내렸다.
  
“낭 혼가지여. 톱으로 쌈시민 고를이 난다.”
(나무도 매한가지다, 톱으로 켜다 보면 톱밥이 생긴다.)

정한 이치다.

노상 눈으로 보고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현상에서 귀한 진리를 얻어 냈다. 삶과 현실 속에서 보고 느끼는 바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속에서 교훈을 발견하고 그것을 속담에 담아 금언으로 승화시켰으니 놀라운 일이다. 참 지혜롭다.

어떤 일에는 그 뒤에 필연이 숨어 있음을 일깨우려 한 것이다. 

더러는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하기도 한다. 썰물과 밀물, 즉 조석 간만(干滿)이라는 바닷물의 흐름은 달의 인력이 지구에 미쳐 일어나는 현상이다. 신비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과학적인 안목으로만 차갑게 보고 해석하면 너무 건조하다. 바로, ‘물도 써면 여가 드러난다’는 발견의 목소리가 아닌가.
  
이에 비하면, ‘나무도 켜면 가루가 난다’고 한 것은 일상적으로 늘 보게 되는 현실적인 것이다. 그런 흔한 일에 뜻을 부여함으로써 의미화해 흥미를 불어 넣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별것 아닌 것을 유의미하게 담아냈지 않은가. 빛나는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출처=오마이뉴스.
하는 일이 잘되지 않는다고 속단하거나 쉬이 낙망할 것이 아니다. 일이 잘못되는 원인을 찾아 잘되도록 긴급 처방해 보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성공을 불러들이는 요체다. 출처=오마이뉴스.

물이 써는 것 또는 톱질하는 것, 이런 자연적·인위적인 변화의 요인이 작용하면 그에 따른 반응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과의 필연성이 강조되고 있다. 사물의 관련이나 어떤 일의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성이 아닌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법)에 의한 것이 많지만, 인력에 의한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쇳덩이를 갈고 또 갈다 보면 놀라운 변화가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 가느다란 바늘이 돼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간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놀라운 탄생이다. 쇳덩이를 연마하는 행위의 주체가 사람 아닌가. 애쓰고 노력하면 그 공력을 기울인 만큼 반드시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는 일이 잘되지 않는다고 속단하거나 쉬이 낙망할 것이 아니다. 일이 잘못되는 원인을 찾아 잘되도록 긴급 처방해 보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성공을 불러들이는 요체다. 노력을 기울이면 기대한 성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단언컨대,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 사람의 일에는 애쓴 만큼 이룩되는 필연성이 있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