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21) 제주 비오토피아로 가는 길서 사유화된 경관을 생각한다 

투어 사전예약하고 관람료를 낸 뒤에 볼 수 있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비오토피아의 풍경. ⓒ제주의소리
투어 사전예약하고 관람료를 낸 뒤에 볼 수 있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비오토피아의 풍경. ⓒ제주의소리

지난 가을, 대학다닐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오랜만에 제주를 찾았다. 나는 육지에서 친구들이 방문하면 대개 그들이 세운 여행 일정을 따라가는 편인데, 때론 이곳에 살고 있는 나보다 멀리서 온갖 SNS에서 정보를 알아본 친구들이 요즘 가장 따끈따끈한 ‘핫플레이스’는 더 잘 아는 법이기 때문이다.   

언니는 제주에 오기 전부터 서쪽에 있는 ‘비오토피아’에 가고 싶다고 했다. 동쪽 사람이 서쪽 동네로 가는 일은 흔치 않지만, 언니를 위해 오랜만에 한라산을 넘어 서쪽 동네로 놀러갔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비오토피아에 도착했더니, 한 경비원이 이곳은 차로는 진입이 안된다며 조금은 떨어져있는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알고봤더니, 비오토피아는 정해진 장소에서 기다리면 셔틀 버스가 와서 사람들을 태우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비오토피아, 바이오 시놉시스와 유토피아가 합쳐진 합성어로 생태친화적인 이상향을 재현한 공간.

‘방주의 교회’와 ‘포도호텔’을 설계한 재일교포 이타미준이 디자인 한 곳이다. 이곳은 22만평쯤 되는 규모로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지만, 이 안에 수풍석 박물관만큼은 하루의 두번 해설사와 함께 입장이 가능하다. 1회 관람에는 25명만 관람이 가능해 반드시 예약이 필수인 곳이다. 

투어 사전예약하고 관람료를 낸 뒤에 볼 수 있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비오토피아의 풍경. ⓒ제주의소리
투어 사전예약하고 관람료를 낸 뒤에 볼 수 있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비오토피아의 풍경. ⓒ제주의소리

관람료를 내고 하루에 두 번만 외부인들에게 공개하는 곳은 어떤 곳일까. 버스가 입구에 도착하니 바리케이트가 열렸다. 꽤나 멋지게 지어진 집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설사는 그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가까이 가거나 문을 두드리는 일은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버스에 있는 누군가 물었다.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해설사가 늘 듣는 질문이라며 웃으며 답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돈이 아주 아주 많으신 분들인 줄로만 알고 있어요.”

버스가 멈췄다. 한 시간 동안 물과 바람 그리고 돌의 박물관을 걸어서 관람하고 나오는 코스였다. 박물관과 다음 박물관 사이는 걸어서 약 1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우리는 매번 작은 숲을 지났다. 

이타미준이 설계한 건축물 자체도 참 아름답고 뛰어났지만 사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주변을 감싸주고 있는 자연의 모습 그 자체였다. 빨갛고 노란 단풍과 이것들에 어우러진 초록의 나뭇잎과 다시 파란 하늘의 조화는 예술 그 자체였다. 

투어 사전예약하고 관람료를 낸 뒤에 볼 수 있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비오토피아의 풍경. ⓒ제주의소리
투어 사전예약하고 관람료를 낸 뒤에 볼 수 있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비오토피아의 풍경. ⓒ제주의소리

통나무로 만들어진 나무 다리 아래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연꽃의 뿌리가 다 보일만큼 투명하게 빛이나고 있었다. 작은 쉼터 하나도 나무 그늘 아래에 있고, 그 쉼터 또한 돌과 나무 그리고 풀잎으로 만들어졌다.

사람의 손길이라는 것은 하나도 닿지 않은 것 같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계절마다 어떤 옷으로 갈아입을지 궁금해하다 문득 이 아름다운 곳에서 밤 하늘을 바라보고 싶어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 자연 안의 풍경은 누군가가 ‘소유’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투어를 끝내고 나오는 길, 나는 내가 살고있는 곳을 찾아오던 손님들이 떠올랐다. ‘관광객’이라는 이름으로 ‘허’자가 달린 하얀 자동차를 타고 우리 마을을 찾던 사람들.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그들의 방문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들은 무엇을 보러 왔을까. 무엇을 느끼고 가는걸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알고 있는가. 우리의 가치를 알고 있는걸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은 것은 아닐까. 

다시 한라산을 넘으며 동쪽을 바라보았다. 매일 아침 성산일출봉 위로 해가 뜨고,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물새들이 유유히 하늘을 난다. 바다가 보이는 들판 위엔 바다 꽃도 피어나고, 불턱에선 해녀들이 불꽃도 피워낸다. 밤 하늘엔 별이 뜨고 겨울 바람은 밤새 자장가를 부른다. 어쩌면 내가 나고 자란 곳이야 말로 비오토피아가 아니겠는가. 물론 예약은 필요 없지만 말이다.

김현지

김현지는?

만 26세. 성산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 진학으로 육지생활을 하다 우리 마을이 제주 제2공항 예정지가 되면서 신문에 대문짝하게 난 것을 보고는 3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을에서 동네친구들과 주민들과 소식지 제작 등 이것저것을 한다. 환경보호 웹진을 만드는 해양레포츠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강아지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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