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빨라진 정치행보 “지사 직무 소홀 않겠다” 했지만…

한층 바빠진 원희룡 제주지사. 현직 지사와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으로서 제주와 서울을 분주히 오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제주의소리

정치인은 원래 말이 많다. 말로써 승부해야 하는 몇 안되는 직업 중 하나가 정치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살아남으려면 좋든 싫든 말을 해야 한다. 정치인이 요즘 가장 애용하는 SNS도 사실은 말을 더 빨리, 더 널리 실어나르기 위한 수레에 지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정치인의 말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때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화(禍)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후자는 말그대로 세치 혀를 잘못 놀려 빚어진 설화(舌禍)다. 그 길이(三寸)에 비해 가혹할 정도로 정치인에겐 치명적이다. 말 한마디 때문에 정치생명이 끝나기도 한다. 최근 총선 정국에서 여의도의 핫뉴스 역시 상당수가 후자에 속한다.  

문득 달변(達辯)과 다변(多辯)의 의미를 되짚게 된다. 엄밀히 말해, 둘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다. 둘 다 일 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달변을 좇다가 그만 다변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달변을 부러워하겠지만, 그렇다고 달변이 능사는 아니다. 말만 번지르르하다고 대중이 느끼는 순간 그 정치인은 더 이상 대중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정작 경계해야 할 것은 다변이다. 곳곳에 제가 판 함정이 도사린다.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담으려다 종종 무리수를 두게 된다. 천재라도 별 수 없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여기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수석 인생’을 살아온 ‘정치인 원희룡’은 달변일까, 다변일까. 그도 아니면? 

호불호의 문제는 아니다. 임의대로 재단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걸 따져봐야 제주도민에게 득될 게 없다. 미래통합당 합류를 넘어 최고위원직에 오른 그를 두고 급기야 지사직 사퇴 요구가 나왔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연원이 궁금했을 따름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일부이긴 하나, 민심을 들끓게 한 것은 도민과의 약속 파기였다. 미심쩍었지만, 그걸 깨리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스스로 “도민만 바라보겠다” “도정에 전념하겠다”는 맹세를 숱하게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엔 정당 입당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고 보니 원 지사의 문제는 다변에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다변의 문제가 아니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지니까. 특히 정치인으로서 ‘절대’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약속을 어기게 되자 원 지사는 곧바로 수습에 나섰으나, 정치행보는 오히려 더 빨라졌다. 수습이라고 해봐야 “무소속 신분을 변경할 때 도민의 의견을 구하겠다고 했지만, 그 과정이 생략됐다”고 한 게 거의 전부였다. 반면 박형준 당시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의 합류 요청을 받은지 몇 시간 만에 참여를 선언했고, 이튿날에는 서울로 가 통합추진회의에 참석하더니 한 시간 뒤에는 황교안 대표와 만났다. 최고위원으로 추천을 받았을 때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현직 지사로서 단순 입당과 최고위원직 수행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나, 어찌보면 둘 다 엄연한 정치행위이다. 그 자체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산적한 현안’을 들먹이고 싶지도 않다. 단지 염려스러운 것은 코로나 사태로 부쩍 힘들어진 제주도민의 안위다. 

본인은 “현직 지사로서 직무를 소홀함 없이 수행하겠다”고 했지만,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투잡 지사’를 신랄히 비판한 시민단체의 논평에도 나왔듯이,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여의도에 머물러야 할 판이니 ‘소’는 누가 키워야할지 걱정이다. 

여야를 떠나 최고위원 한마디 한마디가 언론의 조명을 받는 시대다. 그러잖아도 튀는 행동으로 최근 선관위에 의해 고발을 당한 원 지사가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특유의 다변의 기질을 발휘하게 되면 어쩌나 싶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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