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41) 이슬/ 이윤승

고사리 잎에 앉은 이슬방울. ⓒ김연미
고사리 잎에 앉은 이슬방울. ⓒ김연미

긴 밤을 헤쳐 나오며 글썽이던 눈물이다

풀잎의 구전에 의하면
한때 공기층을 떠도는 바람이었다가
투명한 액체로 진화했단다

그 몸뚱이 같다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겠지만

그냥 뜻 없이 맑은 거라고
그것은 금방 사라질 한 때라고
또 덧없음에 비유하지 마라

여린 풀잎들을 다독거리며
치열하게 살아온
손가락 깨물어 쓴 풀잎 위 하얀 혈서

-이윤승 <이슬> 전문- 

이슬이 새벽 한 때 그 영롱함을 위하여 견디어 온 바람의 시간은 얼마였던가. 구전되던 이야기가 한 곳에 머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신의 유전자를 바꾸어 왔던가.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서도 정작 남들에게 내 보일 수 있는 것은 ‘그냥 뜻 없이 맑은’ 물, ‘금방 사라질 한 때’다. 

생각해보면 사람도 마찬가지. 한 가지 목표를 위하여 공기 중을 떠돌고, 눈물 글썽이며 긴 밤을 헤쳐 나왔지만, 정작 나는 여리디 여린 풀잎 하나에 불과했음을, 언제든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이슬 같은 존재였음을 아프게 깨달아야만 한다. 

그러나 시인이란, 그런 약한 존재들에게 시선을 보내는 사람. 세상의 모든 여린 것들에게 눈길을 주고, 잠깐 동안의 맑음을 ‘덧없음에 비유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 여린 한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그 보다 더 여리게 견디어 왔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삶의 길목 그 곳곳마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아픈 마음이 이 한편의 시로 해서 위안을 받는다. 시인이 존재하는 이유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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