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 제주외고 전환 갈등](3) '이전-존치' 모델 구체화, 공론화위 참여폭 확대 과제

정부의 고교 서열화 해소 방침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제주외국어고등학교를 두고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공립학교라는 특성 상 자연스런 전환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제주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제주외고 학부모·동문·학생 등은 급기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실력 행사까지 불사하고 나섰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외고 전환과 관련한 갈등의 요인이 무엇인지,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 갈등의 접점은 없는 지 등 현재 불거진 논란과 해법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글]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전경.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전경.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됐다. 국제화 시대를 이끌어 갈 글로벌 인재 양성을 기치로 내걸며 2004년 야심차게 문을 열었지만, 정부 방침에 따라 5년 후면 약 20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전국의 자사고·국제고·외고 등은 여전히 일반고 전환을 반대하고 있지만, 공립학교인 제주외고와는 동떨어진 얘기다. 만에 하나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에 반발하는 교내 학부모·동문 등의 구성원들이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지만, 이들 역시 무조건적인 반대를 외치는 것은 아니다.

학부모·동문 등의 주된 반발은 도교육청이 대안을 미리 정해놓고 여론을 몰아간다는 데 있다. 당장 학교살리기를 위한 방법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벌써부터 학교의 이전을 언급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 상황은 2015년 제주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 할 당시의 반발과 유사하다. 특히 교육당국이 학내 구성원과 아무런 사전 교감을 갖지 않으면서 갈등을 유발했다는 점은 5년 전과 묘하게 겹친다. 또 다시 불신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제주외고를 현 위치에 존치하든, 이전시키든 기존 학내 구성원과의 갈등 조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도교육청의 입장은 일관됐다. 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당장 준비하지 않다가 2025년이 다다를 경우 선택권이 더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대화를 갖지 못했는 변명은 다소 궁색하다. 학내 구성원의 반발은 일찍이 예상돼 왔다.

이석문 교육감이 제주도의회 교육행정질문에서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 해법을 언급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지만 두 달이 지나는 동안 교육당국은 아무런 제스쳐도 보이지 않았다.

교육당국은 내심 제주외고를 동지역으로 이전 편입시킬 경우 도시계획으로 인해 급격하게 팽창해 온 연동·노형동 일대, 이른바 '신제주권' 입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간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음에도 수요를 충족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곳이다.

부지 선정 등의 절차를 따지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상 부지는 한정적이다. 시기가 촉박한 만큼 사유지 매입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일 물리적 여유가 없어 신제주권의 국공유지를 후보군에 올려둘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국공유지 후보지는 많지 않다. 노형동 미리내공원 인근 또는 제주고등학교(옛 제주농고) 부지 등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제주고의 경우 약 300만㎡에 이르는 넓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미 학교 용도 부지로 사용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즉, 이전 결정만 내려지면 여건은 갖춰진 셈이다. 물리적 시간이 촉박한 것도 사실이지만, 과연 화급을 다툴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나올 수 있다.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지니게 된 교육공론화위원회에 제주외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학부모나 동문, 교직원, 학생, 지역주민 등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점도 구조적인 문제다. 

교육공론화위는 부교육감을 당연직 위원장으로 하고 교육감이 위촉한 5명, 도의회가 위촉한 1명, 공모로 위촉된 7명 등 14명으로 구성됐다. 제주교육의 전반적인 사안을 논의하게 되는 공론화위원회 위원들이 제주외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지는 알 길이 없다.

지난 7일 열린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
지난 7일 열린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

공론화위원회에서 다루고 있는 의제가 사실상 '이전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도 되새길 점이다.

공론화위가 제시한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 모형은 △제주시 동(洞)지역 평준화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 △현재의 자리에서 읍면지역 비평준화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 등 두 가지다. 현재의 자리에 남아있는다면 어떤 방법과 형태로 남게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도교육청은 제주외고가 기존 위치에 남을 경우 기숙사 시설을 적극 운용하고 '작은학교'의 이점을 살리는 방안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전 시 이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작은학교의 이점을 살리는 방안이 무엇인지는 드러난 것이 없다.

일각에선 이 교육감이 이번 임기 중 최고 공적으로 치켜세우고 있는 IB교육과정을 도입하면 될 것 아니냐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도교육청의 입장은 뜨뜻미지근하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IB를 도입할지 문제는 공론화위가 모델을 정하고나면, 이후 학교 구성원과 일선 부서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제주의소리] 가 여러경로를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IB예비학교로 표선고등학교가 선정될 당시 제주외고 역시 도입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IB냐 아니냐가 쟁점은 아니다. 다만, 공론화위원회가 제주외고를 현 위치에 유지시킨다는 대안을 제시할 시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제주외고 폐지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처음부터 시나리오는 짜여져 있었다. 일반고 전환은 진작부터 도교육청이 밀어붙이던 사안이었고, 신제주권 이전도 여론조사 등을 통해 다수결로 밀어붙이겠다는 도교육청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무시한 이 같은 행태를 결코 두고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제주외고가 특목고 중에서도 우수 인재를 양성해냈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결국은 일반고로 전환돼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번에 제시된 전환 모형은 미리 준비하자는 차원일 뿐"이라며 "앞으로 공론화위를 중심으로 민주적인 절차와 여론조사를 비롯해 학부모·학생 의견을 수렴하며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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