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결정 투명성 위협-감사위가 조사해야

며칠동안 해군기지 관련해서 복잡하게 벌어진 논의를 보면서 도민의 한사람으로서 마음이 착잡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누구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업무와 관련해서 명확하게 사실규명이 되지 않고 진실게임이 벌어지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어제 도의회 군사기지 특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양해각서(안) 원본이 사라졌다는 진술이 나왔다. 그것도 환경부지사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가볍게 할 수는 없다. 만약 양해각서(안) 원본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라면,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록물 관리시스템과 행정의 투명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조선시대에 사초와 실록 등 국정에 관한 기록을 충실하게 남겨왔던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선조들의 지혜를 이어받지 못하고 기록을 남기지 않는 행정으로 일관해 왔다. 그리고 그런 불투명한 행정으로 인해 큰 문제들을 겪어 왔다.

IMF 외환위기 등 국가적 문제가 발생해도 정책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사후 진상규명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면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며 공적으로 만들어진 문서들을 자기 집으로 들고가 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만든 법률이 있다. 그 법률은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후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로 명칭변경)’이라는 이름의 법률이다. 이 법률은 1999년 1월 29일 제정되어 200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법률이다.

이 법률에 의하면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 또는 접수한 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자료를 “기록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호). 그리고 모든 공무원은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록물을 보호ㆍ관리할 의무가 있다(동법 제4조 제1항). 그리고 공공기관은 공식적으로 결재 또는 접수한 기록물을 포함하여 결재과정에서 발생한 수정내용 및 이력 정보, 업무수행과정의 보고사항, 검토사항 등을 기록물로 남겨 관리하여야 한다(동법 시행령 제16조). 또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기록물의 무단 폐기를 막기 위하여 공공기관이 기록물을 폐기하고자 하는 때에는 미리 소관 기록물관리기관의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시ㆍ도단위에서도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설치ㆍ운영하여 기록물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기록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이유는 기록물이 보존되어야만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물이 남아 있지 않으면 사후에라도 조사를 하거나 공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기록물을 보존하지 않는 것은 행정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반(反)공익적 행위이다. 또한 기록물이 보존되어 있지 않으면, 사후에 책임을 규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 책임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권한있는 자리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한 사람에게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사결정과정에 관한 기록물이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양해각서(안)은 중요한 기록물로 볼 수 있고, 그것이 사라진 것은 중요한 문제

그런데 제주특별자치도가 국방부로부터 팩스로 받았다는 양해각서(안)은 해군기지와 관련해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어떤 결정을 하든 간에 보존되어 있어야 할 중요한 문서이다. 개인적 견해로는 이 양해각서(안) 원본이 기록물관리법에 의한 기록물에 해당한다고 본다.

하지만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에 대한 법원의 판례가 축적되지 못한 상황에서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기록물 관리법의 적용대상인지를 떠나서 중요한 문서의 원본이 사라졌다는 것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리시스템과 행정의 투명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공공기관에서 중요한 문서의 원본이 사라졌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더구나 지금 도민사회에서 갈등의 초점이 되어 있는 문제에 대한 문서가 사라졌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서도 나중에 역사적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문제는 역사적 평가라도 내려지기 위해서는 자료가 남아 있어야 한다. 정책결정과정과 관련된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으면 역사적 평가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미 국방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주고 받은 중요한 문서가 사라졌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식으로 기록물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제주특별자치도는 투명성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될 지경에 이르게 된다.

▲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공공기관의 문서는 그냥 “없어졌다”고 말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이루어져 온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노력들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들이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상황인데,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국방부로부터 팩스로 받았다는 양해각서(안) 원본이 어떤 경위로 사라졌는지에 대해 감사위원회와 같은 기관이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이런 일은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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