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중세 마녀사냥 반면교사 삼아야 / 김효철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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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굶주리고 앓아 죽은 사람이 팔도에서 1만3420여명이다.’ 조선 현종 12년(1671) 6월 기록이다. 경신대기근(1670~1671)이라 불리는 이때는 소빙하기를 맞아 여름에도 우박이 내리고 가뭄과 홍수가 잇따라 발생해 심각한 기근에 시달렸다. 여기에다 전염병이 끊이지 않아 조선인구 10%가량이 사망했다.

이때만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온통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어나간 백성들 통곡소리로 가득 차다. 우리 제주도민들은 섬이란 환경에 갇혀 더욱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인류는 오랜 세월 전염병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원인도 모른 채 가족과 이웃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이자 두려움이다. 멀리 피하는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방법이나 고통속에 죽어가는 가족을 두고 떠날 수도 없다.

상대를 모르는 싸움이 가장 두렵다. 미생물이란 실체를 몰랐을 때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경외나 이웃에 대한 집단 혐오와 공격으로 나타났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천연두도 마마신이 불러온 병이라 생각하고 제사를 지내며 무사하기를 바랐다. 또 정월대보름 부럼을 먹거나 붉은 부적을 붙이며 건강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전염병이 돌 때 악마가 저지른 일이라 생각했다. 

15~18세기에 걸쳐 수 십만명을 마녀란 이유로 참혹하게 살해한 이른바 마녀사냥도 중세시대 혼돈과 무지가 낳은 결과다. 종교 전쟁과 기근, 그리고 흑사병이 휩쓸면서 암울했던 사회는 분노와 공포를 해소할 심리적 돌파구가 필요했고 마침내 악마가 깃든 마녀를 만들어내고 처단했다.

이때 희생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남편을 잃은 여성이거나 아이들, 또는 소외받는 계급신분이었다. 지배군중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안전하며 깨끗하고 선택받은 존재임을 확인받고자 했다.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야만스런 일이다. 이제 누구도 전염병을 나쁜 마녀가 저지른 일이라 생각지도 않으며 아프면 신에게 빌지 않고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 전염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 때문임을 알게 된 후에도 인류는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공포와 불안은 여전히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자 박쥐를 먹는 중국인 풍습 때문이라며 중국인을 비하하고 전면 입국 금지하라는 요구가 나온다. 유럽에서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집단 발병 원인이 된 종교단체 신천지에 대한 비난에 이어 특정 지역에 대한 비난 목소리도 나온다.

발원지인 중국으로부터 입국자에 대한 검사를 철저히 할 필요성은 누구나 동의한다. 예방수칙을 지키지 않아 국내 집단 감염 발원지가 된 신천지도 책임을 느끼고 방역에 적극 협조해야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을 막는데 특정 나라나 집단에 대한 혐오나 비난이 해결책은 아니다. 여기에다 정치적 목적이나 종교적 이해관계까지 맞물린 주장은 갈등만 더 크게 할 뿐이다. 전염병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만 혐오와 비난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전염병처럼 오래 남아 신뢰와 연대를 무너뜨리고 공동체를 갉아먹는다. 

전염병으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가 위기상황이다. 위기상황에서 드러나는 우리 모습은 공동체 의식 수준과 존재 의미를 보여준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먼저 뛰쳐나가기도 하고 이웃과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지지속에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기도 한다.

이웃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과 사투를 벌일 때 공감과 연대를 보이는 대신 혐오하고 배타한 것도 우리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품인 마스크 411만장을 사재기해 품귀현상을 빚게 한 업체도 적발됐다. 공포심을 부추기는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도 나오고 자가 격리 수칙을 어기고 바깥활동을 한 확진자들도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까지 내놓으며 가족과 이웃을 위해 바이러스와 싸우는 시민들이 있다.

중국에서 코로나19 발생을 먼저 알리고 환자를 돌보다 끝내 자신도 감염돼 사망한 우한병원의사 리원량과 수많은 의료진들이 있다. 지금도 전국 선별진료소와 병원에서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환자 치료에 헌신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대구를 향해 비난이 아닌 마스크와 생필품을 보내는 손길부터 일상을 유지하면서 감염예방 수칙을 꼼꼼히 실천하는 시민 모두가 공동체를 지키는 영웅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지는 그 공동체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 그리고 얼마나 지속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전쟁이나 기근, 전염병은 강자보다 약자에게 더 치명적이다. 같은 바이러스라 해도 영양상태가 나쁘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더 잘 발병하고 위험하다. 나이가 많거나 몸이 아픈 사람들이 대부분 바이러스로 희생되고 있다. 공공의료나 사회적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는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민들도 위험에 취약하다. 위기상항에서 힘 있고 강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 시장경쟁 논리가 공동체를 지배한다면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기위해 이참에 공공의료체계에 대한 점검과 대비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은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이 막대한 군사비를 들이면서도 정작 국민 생명을 지켜야할 의료체계는 시장에 맡기고 공공의료 확충에 소홀한 탓도 있다.

의료민영화와 영리병원이 대안일 수 없다. 이번에 문제를 드러낸 공공의료시설과 체계를 인식하고 공공의료 확충에 힘써야한다. 제주지역도 음압병상을 포함한 공공병원시설이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예산을 들여서라도 감염병전문병원과 공공의료 병상, 음압병상과 같은 전염병에 대비한 공공의료 시설과 인력이 충분한지 살피고 준비해야 한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인류는 진화하는 과정에 동거하듯 살아온 바이러스를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

더욱이 환경 오염과 지구 온난화로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70억 인구가 지구 공동체에 모여 살고 있고 국경없는 자본주의 산업체계는 더 큰 전염병 위험을 부른다.

전염병은 서로를 혐오하고 멀리함으로 공동체를 위협하나 전염병과 싸우는 힘은 서로 연대하고 배려하는 공동체에 있다. /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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