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영화가 비평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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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59. 이성철·이치한,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호밀밭, 2011.
이성철·이치한,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호밀밭, 2011. 출처=알라딘.
이성철·이치한,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호밀밭, 2011. 출처=알라딘.

“한수는 그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몽키 스패너를 들고 작업장의 몇몇 기계를 멈춰버린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자조하는 것도 아니며, 주저하는 것도 아니다. 작업장의 노동자들은 하나 둘씩 기계를 세워 버리고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한수 주위로 몰려든다. 그리고 제각기 손에 든 공구를 치켜들고 공장 마당으로 쏟아져 나온다.”

장산곶매의 영화 <파업전야> 마지막 장면이다. 저자는 이 문장을 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그 아래 도표를 하나 붙여 넣었다.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서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이어진 1988년에서 1995년까지의 노동운동 역사를 요약한 도표다. 영화 <파업전야>가 나올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는 전노협 건설의 당위가 첨예한 의제로 부각되었던 시기에 제작한 영화이다. 1990년에 결성하여 민노총이 출범한 1995년에 해체한 전노협은 87년노동자대투쟁 이후 3천여건의 노동쟁의를 통해 나타난 노동조합들의 협의체다. 건국 이래 40여년간 억눌려왔던 정치적 독재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산업화의 그늘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노동자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기적과 같은 일이다. 영화 <파업전야>에는 이렇듯 절절한 노동운동의 시대정신이 담겨있다.

30년 전 이 영화를 처음 본 나는 몽키 스패너를 높이 치켜들고 분노의 투쟁 의지를 불태우던 이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감정의 절제를 통한 공감대 형성보다는 분노를 표출하며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영웅주의 서사에 대한 은밀한 저항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크게 밀려왔던 것은 저 영웅의 결단이 예고할 파국에 대한 불안이었다.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 절망의 시대를 맞이하던 당시의 정황에 비해 이 영화에 담긴 혁명적 낭만주의는 비극의 종말을 지켜본 후에 밀려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지도 못한 채 내 마음을 우물쭈물 안절부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비합법 영화를 만들었던 장산곶매의 경이로운 예술창작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성원, 감격 등에데 불구하고 나에게 이 영화는 ‘미적 쾌’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파업전야>를 보면서 그것을 영화로 보아 넘기지 못하고 현실의 문제와 결부시켜 내내 불편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술이 현실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라는 나의 오랜 질문을 만들기도 했다. 세계사적인 흐름은 노동운동의 퇴락을 예고하는데, 대한민국의 현실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한 가운데에서 나온 영화 <파업전야>는 따라서 시대의 우울과 발전적 전망이 뒤섞인 1990년 당대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이 책은 <파업전야>에 대한 나의 오랜 불편함을 씻어주었다. 그것은 이 영화에 대한 한 편의 글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이 책에 실린 15편의 이야기 전체가 남긴 후과에 가깝다. 

‘영화로 만나는 15개의 노동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영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노동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제목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패러디한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영화와 노동이라는 서로 다른 두 캐릭터를 엮어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풀어냈다. <파업전야>를 다룬 글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모든 주제들은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들이 사회와 개인 모두에게 노동이라는 의제가 얼마나 밀접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노동을 다룬 많은 영화들이 <파업전야>와 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것은 (노동)영화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 자체의 문제였던 것이다. 노동은 언제나 결론이 나있는 완결의 텍스트가 아니라 미완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삶의 이야기이며 생명의 서사 그 자체라는 점을 노동의제를 담은 영화들은 담담하게 또는 드라마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학자 이성철과 중문학자 이치한이 들여주는 이야기 15편은 역사적으로 평가받는 걸작 영화들을 통하여 노동의 역사를 들려준다. “대공황과 주변부 노동자들, 자본의 원시적 축적 과정과 노동자, 여성노동자와 조직활동가, 서비스 비정규노동자들의 조직화사업, 68혁명과 노동운동, 직원에서 노동자로, 직업에서 계급으로, 철도 민영화와 비정규직 노동자, 전쟁, 식민지, 그리고 노동자, 조화사회와 농민공의 현실, 중국 노동자들의 기억과 전망.” 여기 나열한 이 문구들은 얼핏 보면 노동의제 관련 연구보고서와 같은 위의 주제들은 실은 이 책의 목차에 들어있는 글 제목들이다. ‘노동자의 저항은 어떻게 생기는가, 노동운동의 위기는 왜 생기는가?, 누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노동자의 예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등과 같이 문학적인 수사들도 있지만, 다수의 제목들은 명확하게 노동 의제의 인문사회과학 논문 제목 같아 보이는 것들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15편의 영화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 사회 이후 노동의 역사이자, 노동운동의 역사이다. “윌리엄 웰먼의 〈베가스 오브 라이프 Beggars of Life〉, 스티 코넹의 〈단스(Daens)〉, 마틴 리트의 〈몰리 맥과이어스〉, 대니 드비토의 〈호파〉와 노먼 주이슨의 〈투쟁의 날들〉, 마이크 니콜스의 〈실크우드〉, 마틴 리트의 〈노마 레이〉, 켄 로치의 〈빵과 장미〉, 장 뤽 고다르의 〈만사형통〉, 엘리오 페트리의 〈노동자계급 천국으로 가다〉, 켄 로치의 〈네비게이터〉,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장산곶매의 〈파업전야〉,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 양 야우저의 〈미꾸라지도 물고기다〉, 지아장커의 〈24시티〉” 등 서구와 한국, 일본, 중국의 노동의제 관련 걸작들을 골라 영화 속에 들어있는 노동 이야기, 노동을 담은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동이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키며 레드콤플렉스를 나타내는 사람들, 노동자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해 부지런할 근(勤) 자를 넣어서 근로자(勤勞者)라는 말을 써야하는 사람들,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과 달리 머리만 써서 일하는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등 한국사회 구성원들만큼 노동에 대해 부정적하고 표피적인 인식을 가진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 책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노동 의제를 삶과 밀접한 나의 문제이자 우리의 문제로 담아냄으써, 노동과 노동자가 남의 일이거나 남의 직업군이 아니라 나의 일이고 살아 있는 사람 모두의 일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것은 인간 삶을 지탱하고 인간 존재를 성립가능하게 해주는 기제로서의 노동 의제를 친근한 대중예술 매체인 영화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은 노동예술 비평이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소중하다. 영화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예술 장르에서 노동이라는 개념어는 예술적 비평의 키워드로 채택되지 못하는 단어다. 1980년대에 등장한 노동문학의 창작과 비평 이후 현장의 치열한 노동예술 운동과 활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미술, 노동음악, 노동연극 등의 노동예술 비평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척박한 상황의 노동예술 비평에 일종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중요한 책이다. 예술학 연구와 미술비평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에게 노동사회학자 이성철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가져다준 학자이다. 특히 노동예술에 관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관점과 노력에 감사와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 이후 정치와 경제, 사회 등의 관점에서는 치열하게 노동 의제를 다뤄왔지만, 문화적 관점의 관심과 배려를 가진 노동문화 연구와 비평, 제도, 정책 등은 터무니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노동문화가 이러할진대 하물며 노동예술이라는 말은 어떠했겠는가. 이 척박한 세상에 노동영화라는 새로운 비평 개념의 씨앗을 뿌린 이 책에 뒤늦은 헌사를 보낸다.

김준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경기문화재단 '평화예술대장정' 프로젝트 총감독 겸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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