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42) N잡러/ 하순희

의자에 기댄 배낭. ⓒ김연미
의자에 기댄 배낭. ⓒ김연미

물 한 컵 삼각 김밥 하루를 계량하며
고된 일과 비정규직 선 채로 마감하는
퇴근은 또 다른 출근 허둥대는 시간 출구

제약회사 설명회 늦은 밤 자리한 채
휘어지는 판매액에 굽어지는 가장의 무게
희망을 배낭에 담고 간이 의자에 기댄다

고지혈 녹이는 알약 경동맥을 뚫는다고
졸리는 눈 비비며 필기하는 공책 속에
미래가 환해져 올까 낯가림 없이 찾아올까

- 하순희 <N잡러> 전문- 

* N잡러: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신조어

하나의 직장이 그 누구의 평생 직업이 되어주지 못하고, 거기서 얻는 소득이 충분한 생계비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사회구조적으로 소비는 많아질 수밖에 없고, 소득은 볼 필요도 없이 빤하다. 한 집안의 가장이 자신의 직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생계비를 책임지지 못할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짜투리 시간까지 다 긁어모아  다른 일을 할 수 밖에... 

한 때, 정말로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던 투잡이 보편적 현상이 된지 오래다. 그래도 투잡은 하나의 중심 직장이 있고, 남는 시간, 여가생활의 의미가 살짝 가미되었던, 다른 일 하나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 스물 네 시간 전체가 고만고만한 일거리들의 연속이다. 모두가 중요하고, 모두가 언제든 떨어져나갈 일감들이다. 편의점이 성행하는 이유, 새로운 용어가 탄생하는 이유의 한 풍속도다.  

요즘 같으면, 이렇게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일거리라도 있는 게 다행이다. 자발적 자가격리라는 말이 우습지 않게, 코로나 19로 그렇지 않아도 어렵기만 했던 경제상황이 올스톱 상태다. 이런 상황은 하루하루, 아니 시간대별로 일터가 바뀌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닫힌 공장문, 비어있는 강의실, 인적이 끊긴 도로 등으로 해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N잡러’라는 신조어조차 내려야 할 판이다. 

아무도, 그 무엇도 약속해 주지 않지만, 오늘도 타의적 자가격리를 해제하기 위해 다시 문을 나서는 모든 ‘N잡러’들을 응원한다. 언젠가 낯가림 없이 찾아와 그들의 배낭 속에서 발견되어질 그 환한 미래. 그 날을 기대한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