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의 도백열전(30)] 제9대 도지사 양제박③

  국회 양민학살진상조사작업은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결국 싱겁게 끝났다. 국회조사단은 6월18일에 가진 회의에서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이 불완전하다는 의원들의 이의제기가 있자 유보 쪽으로 의견을 모은 뒤에 국회 본회의에 대한 조사 보고마저 생략해버렸다.

  4.3 사건 당시 제주경찰청장을 지낸 바 있는 최천 위원장은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결부된 문제가 다시 거론될 것을 우려했던 터라 “4.3 사건도 그렇지만 전국의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조사가 사실대로 규명될 경우 정부에 대한 국민불신이 매우 클 것이 뻔하다”면서 진상조사보고의 취소를 선뜻 결정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때 국회보고서에 나타난 4.3 사건의 피해내용은 인명피해 1878명, 가옥피해 4179동, 가축피해 2만5185마리로 각각 기록됐다.

국회 4.3진상위, 본회의 보고도 없이 마무리…재경학우회 국회의사당서 시위

  4.3 사건에 대한 국회진상조사가 무산되자 재경 제주학우회 소속 10여명은 6월21일 오전10시 국회 의사당으로 몰려가 「700여 학도의 외침」이라는 유인물을 뿌리면서 “제주도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7만여명이 4.3 사건 당시 합법적인 절차도 없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됐다”고 주장하고 국회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학살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은 다음날에는 가칭「제주도민학살사건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8월 여름방학동안 제주대학생과 함께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처럼 국회의 양민학살진상조사 중단조치는 4.3 사건의 진상규명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도민들을 자극함으로써 국회를 불신하는 목소리들이 높아갔다. 제주신보 신두방 전무는 수많은 주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4.3 사건의 진상이 국회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며 신문사에 접수된 고발내용 1259건 가운데 고발조건이 갖춰진 외도동 사건을 제주지검에 고발함으로써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고발 내용은 제주시 외도동 252번지 이양호(李亮晧) 등 일가족 10명이 1949년 2월17일 외도지서 주임 김병채 경위와 이윤도 순경으로부터 아무런 법적 수속없이 외도동의 속칭 「절뒤」로 끌려 간 뒤 죽창으로 학살당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재산 무장대에게 끌려간 장남 이완영이 재산 무장대에 가담하기 위해 산에 올라갔다고 몰아세우며 생후 10일된 젖먹이까지 무참히 살해했다고 밝혔다.

4.3 피해자, 학살 자행한 경찰∙군인상태로 검찰에 고발

  또한 7월2일에는 서귀포의 주민 강희철이 당시 해병대사령관 신현준 중장 등 2명을 제주지검에 고발, 양민학살 고발 2호를 기록했다. 강희철은 자신의 부친 강성모(당시 44세)가 서귀면장으로 있을 때 “군인들이 민간인을 고사리 캐는 일에 동원하는 등 민폐가 많아 시정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트집잡아 1950년 7월 하순 해병대사령관인 신 중장의 부하에게 끌려간 뒤 지금까지 행방불명되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러나 제주지검에 고발한 뒤 4.3 사건은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부정적인 입장 때문에 흐지부지되다가 후에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양제박 지사는 4.3 사건 진상규명에 대한 도민들의 목소리가 날로 거세지고 있을 무렵, 부임 한달만인 1960년 6월20일에야 일선 시․군 순시에 대한 초도순시에 나설 수 있었다.

  양 지사는 북제주군청과 제주시청을 차례로 방문한 뒤 한림면사무소에 들러 직원들에게 “이승만 정권은 폭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했고 부패정권의 연장을 위해 발췌개헌과 4사5입이라는 전대미문의 개헌을 강행함으로써 3.15 부정선거와 4월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면서 이승만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양 지사는 이어 자신이 실시한 제주도청 간부공무원 인사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과도정부인 현 정부입장에서 과거 자유당에 협력하지 않았던 사람을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기를 업고 온 과부라도 시집와서 살림만 잘하면 될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인사문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해명해 보였다.

“혁신세력은 솔직히 말해서 좌익계열이 틀림이 없다” 중문면 발언 파문

  양 지사는 고향인 한림에서 하루밤을 묵은 뒤 6월21일에는 대정을 거쳐 서귀읍사무소
등을 시찰했다.

  그런데 양 지사가 중문면사무소 순시 중에 행한 발언이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켜 나중에는 중앙정계까지 비화됨으로써 결국에는 양 지사의 퇴임으로 이어졌다.

  속칭 「양제박 지사의 설화(舌禍)」이라고 불리는 이 발언파문은 양 지사가 중문면장실에서 지방유지들를 접견하는 중에 “혁신세력은 솔직히 말해서 좌익계열임에 틀림없다”고 피력한 개인적인 소신이 당시 참석했던 유지들에 의해 밖으로 전해지면서 설화사건으로 번진 것이었다.

  양 지사는 또 이 자리에서 “보수는 민족 고유의 생활양식이다. 그러나 혁신은 통제경제에 의해 주민들의 자유로운 생활권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앞으로 선거에 있어서도 정당보다도 인물본위로 선택하되 혁신의 진출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4.19 학생의거 이후 부쩍 대두되고 있는 혁신정당들을 자극했다.

  특히 양 지사는 이 같은 발언은 제5대 국회의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미묘한 시기에 터진 것인데다 발언자인 양 지사 역시 보수당인 민주당원이라는 점에서 제주도내 혁신정당의 반발을 몰고왔다. 한국사회당 제주도당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6월26일에 개최키로 한 도당준비대회에서 「양제박 지사규탄대회」를 함께 열기로 하는 한편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으로서, 그것도 총선을 앞두고 혁신세력을 모두 좌익시 하는 발언은 이승만 정권이 양민을 적색분자라고 했던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고 반발했다.

사회당, 양 지사 발언 규탄…도의회에서 ‘중문 발언’ 집중 추궁

  6월26일 오후3시 제주시내 중앙극장에서 개최된 한국사회당 제주도당부 결성준비위원회 전도대회에서 김성숙(金成淑) 중앙당부 총무위원(제4대 국회의원선거 때 남제주군에서 출마했다가 차점으로 낙선)은 양 지사의 발언을 문제삼고 “혁신세력은 국민의 벗일 뿐만 아니라 고귀한 학생들의 피로 시작된 4.19 혁명은 아직도 그 과정중에 있다”고 말한 후 「양자사 폭언규탄결의의 건」을 상정시켰다.

  한국사회당은 이와 함께 △공무원으로서 공공연한 정당간섭에 대한 고발조치 △허정(許政) 국무총리에 대한 행정조치요구 메시지 전달 △읍면별 규탄대회개최 및 기자단 파견 △독직여부 규명조사 △신문지상 사과문 발표 등을 촉구하기로 했다.

  제주도의회는 양 지사의 발언사건이 정계에 까지 파급됨에 따라 6월18일에는 양 지사의 도정방침을 듣는다는 명목으로 임시회를 소집하고 한달 후인 7월29일에 있는 5대 총선대책과 양 지사의 「중문발언」을 집중 추궁했다.

  도의회에 참석한 양 지사는 총선대책에 대해 “완전히 자유선거를 보장함은 물론이며 공명선거가 이뤄지도록 하겠으며, 각 국장들에게는 정실과 친족관념에만 치우쳤던 과거 선거관을 버리고 중립을 고수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양 지사는 문제가 된 「중문발언」에 이르러서는 “허정 국무총리도 혁신당을 가리켜 좌익계열이라고 말한 사실이 보도된 것을 본 바 있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뿐이며, 그러나 혁신당을 공산당시해서 말한 것은 결코 아니며 또한 특정정당을 모략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양 지사의 「중문발언」은 제주지역에서만 그치지 않고 중앙정계로 까지 비화되자 다가오는 총선에 위기를 느낀 민주당은 양 지사를 급히 서울로 불러 올렸다.

  「혁신세력은 좌익계열」이라는 中文발언으로 새로운 정쟁(政爭)의 도화선을 초래케 한 梁濟博 지사는 서울로 소환된 뒤 민주당 정부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이 때문에 74세의 양 지사는 이곳 저곳에 불려 다니며, 그것을 해명하느라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민주당은 양 지사의 「中文발언」이 중앙정계까지 비화, 사태가 심각해지자 야당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도 일단 양 지사를 해임키로 방침을 결정했으나 선거 중에 지사를 경질할 경우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인사조치를 선거 이후로 일단 유보했다.

  그러나 호기를 만난 한국사회당은 “정부가 양 지사를 파면하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에는 허정(許政) 국무총리를 상대로 고소하겠다”고 민주당을 계속 몰아붙이면서 이 사실을 선거전략용으로 이용했다.

‘중문발언’ 중앙정치권으로 비화…제주검찰청, 양제박 지사 ‘소환’

  상경 일주일만에 귀임한 양 지사는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며 “이번 상경은 중문 발언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내가 혁신을 좌익계열이라고 했던 것은 공산당시한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 해석상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양 지사가 제주지방검찰청의 소환을 받은 것은 귀임 이틀 뒤인 7월12일 밤 8시였다.
  한국사회당 제주도당 장공우 총무위원장의 고소를 접수한 제주지검 김순재(金淳栽) 검사는 고소인 장공우와 피고소인 양 지사를 함께 소환했다.

  장 위원장은 검사 신문에서 “좌익은 외국의회의 의석배치에서 비롯된 용어로서 우측에 앉은 사람들을 가리켜 우익(여당)이라고 하고 좌측에 앉은 사람을 좌익(야당)이라고 한 것인데도, 보수를 우익이라고 본다면 혁신을 좌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혁신세력의 주의주장을 자유경제권 박탈이라고 몰아 세우고 있는 것은 혁신세력의 진출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적인 발언인 동시에 앞으로 있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본다”며 양 지사를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자기 밤중에 검찰의 소환을 받은 양 지사는 이에 대해 “혁신이 국민의 자유권을 박탈하기 때문에 혁신세력의 진출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은 전혀 한 바가 없으며 이같은 신문보도는 허위이다”며 발언사실 자체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야당의 고소로 현직 도지사를 어쩔 수 없이 소환했으나 검찰이 자칫 정쟁에 휘말리지 않을까 매우 노심초사했다. 검찰은 정치적으로 원만히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검찰 측은 이러한 이유로 “양 지사가 발설한 시기가 선거법과 선거일자가 공고되기 전이었고 어느 특정한 정당이나 개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은 크게 없다고 보며, 다만 정치적인 면에서 다소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정치적인 해결을 요구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이 있자 제주사회는 양 지사의 경질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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