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42. '1917', 샘 맨데스, 2020.

영화 ‘1917’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1917’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윤동주 시인은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을 안고 살았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시가 쉽게 써진다며 자신을 질책하던 시인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기 몇 개월 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전쟁은 언제 끝날까. 내가 죽으면 끝난다. 전쟁은 롱 테이크처럼 이어진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 지역. 봄꽃이 피기 시작한 그 무렵. 롱 테이크는 시작되었다. 내가 눈을 감아야 롱 테이크도 끝난다.

햇빛이 낮잠을 자는 군인을 깨운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잠들었던 군인. 나무 그림자의 위치가 바뀌면서 잠에서 깬 것이다. 상관이 그를 깨운 거나 햇빛이 그를 깨운 거나 별 차이 없다. 아무튼 그는 잠에서 깼고, 이제 임무가 시작된다.

그에게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 임무는 계속 주어진다. 군인은 연락병이 되었다. 보급품 운반일 줄 알고 지원했지만 적지로 들어가라는 명령이었다. 옆에 있던 군인은 어떨 결에 함께 연락병이 되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군대 명언.

“군인은 줄을 잘 서야 한다.”

아무튼 군인은 새로 부여 받은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그 미션을 수행하면 또 다른 미션이 주어지는 게 우리의 삶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는 어떤 임무를 지닌 채 산다. 처음에는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도 있지만, 하다보면 목적 없이 그냥 명령이라 여기며 움직이기도 한다.

박철 시인의 시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에 나오는 시인은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영진설비에 갖다주는 임무에 실패한다. 그 돈으로 럭키슈퍼 앞에서 병맥주를 마시고, 자스민 한 그루를 산다. 하지만 시인은 시를 썼다. 그는 과연 임무에 실패한 것일까.

천신만고 끝에 연락병 스코필드는 매캔지 중령을 만나 애린무어 장군의 명령을 전달한다. 이제 전쟁이 끝나는 걸까. 관객에 기대에 부합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기대를 꺾는 게 전쟁이라고 감독은 말한다. 그러니 매켄지 중령은 그 명령이 반갑지 않다. 며칠 뒤에 아침 일찍 비가 내리는 날에 명령을 다시 올 거라고 예언한다. 그것은 습관화된 전쟁이며, 소모적인 전쟁에 대한 묵시록이다.

샘 맨데스 감독의 할아버지 앨프리드 H. 멘데스 일병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임무를 하고, 샘 맨데스 감독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일을 숙명처럼 여기며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어쩌면 그것이 이 전쟁 같은 삶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처음에는 두 그루였던 나무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한 그루 오도카니 서 있는 걸 지긋이 보여준다. 희망이라면 그 나무에 기댈 수 있겠다.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의 형에게 동생의 전사 소식을 알려준다. 마치 그 소식을 전하는 게 임무인 것처럼. 카메라가 응시한 나무는 크고 푸른 나무였다. 형은 울음을 힘들게 참는다. / 현택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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