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63. 봉수아비 아들 낳지 말라

* 아덜 : 아들의 제주방언
* 봉수아비 : 봉수대를 지키면서 적의 침입을 포착해 봉화를 올리는 사람

봉수아비란 봉수대를 지키는 사람, 곧 봉화를 올려 위급한 상황을 관에 알리는 역할을 하던 사람을 말한다. 외부의 침입을 알리는 구실에 한정하지 않고, 통신 같은 의사 전달을 위한 일도 했다.

‘봉수대(烽燧臺)’의 ‘烽’은 밤에 봉화(횃불)를 올려 연락하는 것이고, ‘燧’는 낮에 연기를 피워 올려 어떤 상황을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봉수대는 지형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해 적의 동태를 파악해 조기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는데, 봉수대를 지키는 봉수아비의 임무는 전략상 매우 엄중하다.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게 설비해 놓기도 했으나, 제주도의 경우는 왜구의 잦은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설비라는 지역적 특성상 해안가 높은 곳에 위치했다. 지금도 바닷가 높직한 자리에 봉수대의 옛 자취가 여러 곳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봉수아비 아들 낳지 말라.
 
어조가 단호하다. 필시 오래 겪어 오면서 얻은 경험칙(則)일시 분명하다.

봉수아비는 밤낮 가리지 않고 봉수대를 떠나지 않고 지키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이다.

제주에 쳐들어와 온갖 노략질을 하던 왜구가 해안가를 돌아가며 봉수대가 세워져 있는 걸 몰랐겠는가. 하물며 봉수대에 봉수아비가 있어 자기들의 동태를 매의 눈으로 살피고 있음을 모를 턱이 없다.

출처=오마이뉴스.
비양도 봉수대. 출처=오마이뉴스.

그러니 야음을 이용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봉수대에 잠입해 봉수아비를 제거하려 들게 마련이다. 까딱 방심해 눈이나 붙인다고 쪽잠으로 졸다간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가 있다.

1차적으로 제거할 대상이 바로 봉수아비였던 것이다. 미리 척후병을 보냈을 것 아닌가. 적에게 죽음을 당하는 비운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게 봉수아비의 운명이었다.

더군다나 옛날, 봉수아비는 대물림 했다 한다. 그러니 아들을 낳아 애꿎게 참혹한 변을 당하게 할 바에는 아니 낳음만 못하다 함이다. 다분히 자조적(自嘲的)이 느낌이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을 둔 봉수아비의 설움, 속 시원히 말 못할 비감(悲感)을 담고 있는 말이다. 오죽 했겠는가. 그럴진댄 차라리 아들을 낳을 게 무엇이냐는 한탄이 새어나오고 있다.

봉수아비 아들 낳지 말라.
 
아들이라고 낳아 봤자 봉수아비 아들로 태어나 좋은 꼴을 볼 수 없을 게 불 보듯 하니 이르는 말이다. 가슴 쓸어내리며 되뇌는 체념의 언사, 넋두리가 아닌가.

언제는 어떤가. 사람 사는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 이렇게 한숨 속에 한평생을 살면서 제 자식만은 자신처럼 봉수아비가 돼 희생당하는 일이 없기를 빌고 또 비는 기원의 말이다.

화자의 육성이 한과 설움을 담고 있어 울림이 크지 않은가.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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