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어제(3월 22일)는 유엔이 정한 28회 ‘세계 물의 날’이었다. 현재 지구상에서는 깨끗한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인구가 수십억 명에 달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이 물 한 동이를 얻기 위해 매일 수십km를 걷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 물조차도 오염된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지하수가 풍부한 제주도에 사는 우리는 느끼기 어렵겠지만 축복받은 땅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는 지구상 어느 곳보다도 많은 용천수가 솟아나는 곳 중의 하나다. 공식 기록된 것만 1025개소이다. 도외지역처럼 흐르는 강이 없는 대신에 제주에서는 강의 역할을 용천수가 맡았다. 세계 문명들이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제주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제주의 용천수는 해안가에 90% 이상 분포하기 때문에 제주도의 마을은 해안선을 따라 형성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 용천수는 지질적·생태적 가치와 함께 역사적 가치도 특별하다.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이다.

선사시대, 도내 3대 촌락 중 하나인 외도지역에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한 선사 유적지와 우물터가 발견되었고 고려 시대 도내 최대사찰이었던 수정사에서 쓰던 용천수(납세미물,수정밧물 등)들도 명맥이 남아있다. 항파두리 부근에는 삼별초가 사용하던 용천수(장수물,옹성물,구시물 등)들도 잘 남아있다. 

애월읍 상귀리의 소왕물은 고려 시대 삼별초 태자가 먹던 물이라고 전해져오며 당시의 용천수 형태가 비교적 잘 남아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또한, 용천수는 그리스신화에 버금간다는 제주 민간신앙의 성소(聖所)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제주 선조들은 용천수를 신성시하여 병이 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용천수를 찾아 치성을 드렸다. 지금도 도내 곳곳에 할망물이라 이름이 남아있는 용천수들은 마을과 집안의 중요한 대사가 있을 때 쓰던 물이다. 현재도 도내 용천수를 가보면 민간신앙의 장소로 쓰이는 경우가 많음을 볼 수 있다.
 
애월읍의 소왕물. 이야기가 고려 시대 때부터 전해져오며 원형도 비교적 잘 남아있는 용천수이다.
애월읍의 소왕물. 이야기가 고려 시대 때부터 전해져오며 원형도 비교적 잘 남아있는 용천수이다.

그리고 제주도 용천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물의 이용을 단계적으로 하는 형태였다. 식수로 쓰는 구역, 채소를 씻는 구역, 빨래하는 구역, 마소가 마시는 구역 등이 단계별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현대식 개념으로 본다면 ‘중수도’ 형태로 물 이용을 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물허벅, 물구덕, 물팡 등 제주만의 독특한 물 문화가 남아 있다.
 
이처럼 제주에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역사, 현대에 이르는 역사적 의미와 제주민중의 생활문화가 배어 있는 용천수가 상당히 많다. 이처럼 제주의 용천수는 문화유산 측면에서 높은 가치가 있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유명 관광지인 ‘라인스바일러’에는 1581년 조성되었다는 용천수에 ‘1581’이라는 표기를 해놓고 마을의 핵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주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적 가치가 남아있는 용천수들이 많지만 역사적 가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제주도에 분포하던 총 1025개소의 용천수 중 수백 개가 각종 개발로 사라져 현재는 661개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남아있는 용천수도 방치되어 있거나 과도한 정비로 인해 옛 모습이 사라진 곳들이 부지기수이다.
 
용천수는 그 자체로 가치가 높은 자연자원이기도 하지만 선조들의 삶이 진하게 녹아 있는 제주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현재 용천수를 보전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너무나 취약하다.
 
제주도 최상위 법인 제주특별법에도 용천수 보전근거는 없다. ‘제주특별자치도 지하수 관리조례’에도 용천수로부터 반경 50m 이내 지역에서의 지하수 개발 및 이용허가를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용천수 보전을 위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활용 및 보전에 관한 조례’가 2014년도에 제정되었지만, 제주특별법에 법적 근거가 없어서 유명무실한 조례로 남아있다. 따라서 제주특별법의 개정을 통해 용천수에 대한 보전을 보다 실효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법 개정 노력과 함께 제주도 당국이 적극적인 노력만 한다면 보다 빨리 성과를 이룰 수 있는 방법들도 있다. 바로 제주 용천수에 대한 문화재 지정을 검토하는 것이다. 현재 제주도에는 많은 국가지정문화재와 지방지정문화재가 있다. 역사유적뿐만 아니라 자연생태계 지역도 여럿이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도내 용천수 중에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한 곳도 없다. 도내 용천수에 대해 자연적 가치와 함께 문화유산적 가치로 접근한다면 충분한 가치와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지정문화재의 지정기준 중 하나도 “특색 있는 산악‧구릉‧고원‧평원‧하천‧화산‧온천지‧냉광천지”로 되어 있다. 이중 냉광천지는 용천수 등을 의미한다. 제주도의 의지만 있다면 문화재 지정을 할 수 있는 법적 요건도 갖춰져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치가 높은 곳들은 지방지정 문화재에서 더 나아가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 

올해 제주도는 용천수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661개의 용천수 중에 기준을 마련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곳들을 우선으로 문화재 지정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그중에서도 가치가 특출한 곳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 이 중 일부만 지정이 된다 하더라도 제주도 용천수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민과 국민에게 용천수의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고 용천수 보전여론도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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