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2주년 제주인기협 기획]②4·3 수형인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제주4.3에는 여전히 온기와 냉기가 교차한다. 국가 수반인 대통령이 4.3추념식에 참가해 제주도민에 사과하고 위로하면서 4.3해결을 향한 훈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수형인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유족 신고 상설화, 지속적인 유해발굴, 4.3 책임규명 등 아직도 갈길이 멀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제주4.3 72주년을 맞아 5회에 걸쳐 4.3 기획보도를 싣는다. / 편집자주
72년 전 군법회의와 관련된 군집행지휘서.

지난해 1월17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통한의 세월을 품은 울음소리마저 들렸다. 법정의 피고인석에 앉은 고령의 노인들. 그들의 70년 한을 풀기 위한 싸움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18명의 4.3생존수형인들은 2017년 4월19일 제주지법을 찾아 ‘4.3수형 희생자 불법 군사재판 재심청구서’를 냈다.

1948년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와 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죄 등의 죄명으로 징역 1년에서 최대 20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들이었다.

재심이 개시되기까지 1년 4개월여가 걸렸지만, 재심이 시작되고 난 후 사법부의 움직임은 이례적으로 신속했다.

2018년 9월 재심 개시 이후 재판은 4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수형인들은 70여년 전 불법 군사재판에 대한 사법부의 사실상 사과를 이끌어냈고, 나아가 70여년 전 재판이 잘못됐다는 공식 인정도 이끌어냈다.  

당시 결심공판에서 공판검사는 “재심개시 결정과 그에 따른 본안재판에 이르기까지 성심을 다해 노력해주신 재판부, 70년 넘는 기간을 참고 견딘 피고인들, 그리고 변호인에게 감사드린다”며 “이 자리를 빌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검사 측은 그러면서 “70여년 전 군사재판의 공소사실을 알 수 없다”며 공소기각을 구형했고, 재판부 역시 이를 받아들여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고 18명의 수형생존자들은 70년 싸움터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이 18명은 전체 수형인들 중 빙산의 일각이다. 70여년 전 불법군사재판으로 누명을 쓰고 형무소로 끌려간 이들은 차고 넘친다.

70여년 간 묻혀있던 이들에 대한 기록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99년이었다. 그 시절 국회의원이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그해 8월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 부산지소에서 4.3군법회의 수형인 명부를 찾아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이를 공개했다. 그렇게 세상에 알려진 이들이 2530명이다.

일반재판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제주도에 따르면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관련해 군정재판을 받은 이들이 328명이었다. 이어 1948년부터 1954년에 이르기까지 일반재판을 받은 이들은 599명에 달한다.

72년 전 군법회의와 관련된 군집행지휘서.
72년 전 군법회의와 관련된 군집행지휘서.

 

이렇게 재판을 받은 이들은 불법 군사재판까지 합해 3457명에 달한다.  모두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갔고, 대부분이 총살을 당하거나 행방불명됐다. 살아서 돌아와 그것도 70여년이나 지나 명예를 회복한 경우가 고작 18명인 것이다. 전체 인원의 0.5%다.

4.3수형인 관련 재심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6월3일에는 10명의 수형인에 대한 재심청구가, 같은해 10월22일과 11월29일에는 각각 8명 및 18명에 대한 재심청구가 이뤄졌다. 올해 2월에도 341명에 대한 재심청구가 있었다.

1948년과 1949년에 있었던 불법 군사재판의 경우는 이미 18명의 수형인들이 만든 선례가 있기 때문에 재심 과정이 수월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재심 청구 이후 ‘공소기각’ 판결을 얻기까지 1년 8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

현재 생존해 있는 수형인들은 모두 고령이다. 생존시 명예를 회복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게다가 일반재판을 받은 이들에 대한 재심 역시 결과는 미지수다.

군사재판의 경우는 제주지법이 “피고인들이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공소사실로 군법회의에 이르게 됐는지 확인할 자료가 없다”며 또 “개개인에 대해 ‘예심조사’나 ‘기소장 등본의 송달’ 등이 제대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당시 재판의 불법성을 인정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일반재판의 경우는 재판기록이 남아 있다. 이로 인해 재판부와 재심 청구인 측 사이에 다퉈볼 여지가 남아 있다.

더욱이 현재 재심을 청구한 이들이 전체 수형인들의 10% 정도에 그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전체 수형인들의 명예회복 및 배・보상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요원한 상태다.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정부와 4.3 관련 단체 차원에서 4.3희생자들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은 있어왔지만 수형자들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4.3특별법 개정이다. 4.3특별법의 개정을 통해 특별법에 4.3수형인에 대한 일괄적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배・보상 조항을 신설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2017년 12월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을)이 4.3수형인들에 대한 조항을 넣은 4.3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지만 제대로된 심사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이 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4.3수형인들에 대한 명예회복은 물론 진상규명과 배・보상 문제가 한 번에 다뤄져야 한다”며 “하지만 20대 국회에 제출된 4.3특별법 개정안은 이 부분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70년 전 군사재판에 대한 무효화가 왜 안되고 있을까란 고민은 물론 배・보상 문제에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가지고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거쳐야 한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이 여・야의 건설적인 논의 속에서 다뤄지고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 회원사 제이누리 고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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