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돈 줭 사람은 못 사는 거…” 총선 앞둔 4·3 유족들의 기억
“절대 돈 줭 사람은 못 사는 거…” 총선 앞둔 4·3 유족들의 기억
  • 문준영·최윤정 기자 (yun@jejusori.net)
  • 승인 2020.03.27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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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기획/내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13) 4·3, 회복되지 못한 통한의 역사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입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유튜브 채널 ‘제리뉴스’가 2020년 4월15일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유권자들에게 ‘내가 국회의원이 된다면?’을 물어봤습니다. 어떤 바람들이 있을까요? 우리가 내는 당당한 목소리가 유권자 중심, 정책 중심 선거의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제리뉴스 영상을 통해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돈 줭 사람 못 사는 거난. 사람들이 용심도 나게 만들고 웃음도 나게 만드는 거. 돈 줭 못 사는 거 사람은……. 그냥 총살시켜부난 살려오진 못 하고…….”
(“돈 줘서 사람은 못사는거야. 사람들이 화도 나게 만들고 웃음도 나게 만드는  거지. 돈 줘서 못사는거야 사람은...... 그냥 총살시켜버리니 살아오지 못하고...... ”)

4월입니다. 72주년을 맞은 4·3추념식과 4.15일 총선이 이달에 치러집니다. 제주도민이라면 잊지 못할 통한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겨봐야 하는 4월입니다. 2017년 발의된 4·3특별법 개정안이 결국 지난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4·3 유가족의 속은 다시 한 번 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총선기획 ‘내가 국회의원이 된다면’은 4·3유족 분들에게 4·3 당시의 기억을 들어봤습니다. 4·3유족 김을생(86) 할머니는 다시금 생생히 떠오르는 지난 아픔에 가슴을 부여잡았습니다.(김을생 할머니의 동생 김필문 씨의 4·3피해 회복탄력성 인터뷰)

할머니가 14살이던 1948년, 고향 영평리 마을은 군경의 초토화작전으로 모조리 불에 타버립니다. 아버지는 9연대 주둔지인 농업학교로 끌려가 있던 상황입니다. 군인들이 오자 온 가족은 대나무 밭에 숨어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자식들 먹을 산듸(밭벼)를 태우는 것을 본 어머니는 홀로 뛰어나와 ‘자식들이 먹을 식량만은 태우지 말아달라’ 애원했습니다. 이어 한 군인이 아이들 키보다 더 큰 M1총 개머리판을 휘둘러 어머니는 머리 뼈가 부서지고 피를 쏟아내는 큰 상처를 입습니다. 김 할머니는 피가 철철 흐르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곡식에 난 불을 끄는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1차 감금에서 풀려난 뒤 형부네 집이었던 소개지(남문로 오현단 부근)에 일곱식구가 잠시 머물 때, 대대적인 수색을 펼친 경찰들에 의해 다시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연행됩니다. 어머니는 모진 전기고문 끝에 풀려났지만 아버지는 대구형무소로 이송된 뒤, 편지를 두어 번 부치시고는 그 뒤로 생사를 알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수감됐던 인근 이웃주민이 대구형무소에서)석방돼 나와서 ‘형님(김을생 할머니의 아버지)은 어디 다 싣거강, (총살한 뒤) 바다에 강 비워 버려실거우다’ 하니까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다에서 죽은 사람이니 제삿상에 바닷고기는 안 행 올려….”

이후 아버지와 함께 대구형무소에 있던 양모 씨가 뒤늦게 아버지의 소식을 알려주자 그제서야 아버지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바다에 버려졌을 거란 말에 부친의 제사상엔 바닷고기도 올리지 못합니다.

연미마을에 살았던 부모님에게 얘기를 전해들었다는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도 한 많은 유족들의 삶을 전했습니다.

1949년 5월 10월, 그는 주정공장 수용소에서 임신중인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본인을 지우려, 어머니의 배 위로 널빤지를 놓고 시소를 탄 군인들의 모진 고문에도 생명은 질기고 질겨 결국 자신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앞잡이들이 마을주민들을 마을회관으로 다 오라고 해서 그때 어머니가 저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맨땅에 (어머니를) 눕혀서 시아버지, 서방 간 곳을 대라며 (널빤지를 배에 대고) 초등학교 시소처럼 왔다 갔다하면서 유산시키려고 했습니다. 그걸 지켜본 할머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서너 살 때 제주시 아라리와 구남동 일대에서 4·3을 겪은 김광우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도 전주형무소에 끌려가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며 비참한 심정을 내비쳤습니다.

“저희 부친은 전주형무소에 수감이 돼서 1년 8개월 수감을 마치면 제주도로 올 걸로 해서 재판 과정이 끝난 걸로 알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6.25가 진행중일 때 전주형무소가 한 1000여 명을 군사재판 식으로 해서 사형시켰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농사일만 하던 우리 부친님이 끌려가서 정말 억울하게 희생당한 걸 지금도 한이 서려가지고 눈을 편히 감고 잠들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참담한 상황을 겪어낸 유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을까요?

1988년부터 지금까지 약 7000여명 가량의 4·3 피해자 및 유족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김종민 전 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은 “4·3의 회복탄력성 연구를 하며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하나는 개인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낙천적이거나 긍정적인 사람은 회복 탄력의 정도가 좋다는 것”이며 “또 개인의 성격만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치사회적 환경과 아주 밀접하게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4·3특별법 제정과,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진상조사보고서 확정, 故노무현 대통령의 공식사과. 4.3 70주년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사과. 이와 같은 정치사회적 환경이 4·3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치유에 도움을 줬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있습니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피해배상과 불법 군사재판 무효화 ▲명예회복 ▲트라우마센터 건립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시행 ▲추가 진상조사 등의 내용이 담긴 4·3특별법 개정입니다.

위의 영상을 통해 4·3유족들의 간절한 염원을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4월, 떨어지는 동백꽃이 땅 위에서 다시 한 번 피어나고 있습니다.  

※ [제주의소리]의 유튜브 채널 제리뉴스(youtube.com/제리뉴스)는 ‘제’라지게 ‘리’얼한 뉴스부터 제주의 다양한 소식을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를 꿈꿉니다. 제주의 이슈를 쉽게 설명하는 ‘제주이슈빨리감기’와 제주의 숨은 보석을 소개하는 ‘제주아지트’, 2020년 총선 유권자 프로젝트 ‘내가 국회의원이 된다면’으로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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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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