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65. 급소는 할머니가 지킨다

* 봇바른 듸 : 명자리, 급소, 가장 중요한 부분
* 직헌다 : 지킨다

먼저 여기 등장하고 있는 ‘할망’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할망은 제주방언으로 ‘삼승할망’을 말한다. 표준어로는 ‘삼신할머니’다. 무속(巫俗)에서 초월적이고 영통력(靈通力)이 있는 존재태다. 

민간신앙이 집약돼 무당 중심으로 체계화된 종교현상을 무속이라 하는데,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민족 정신의 토양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실제 생활을 통해 생리화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민족의 정신생활을 지배해 온 종교 행위였다. 

그 중심에 무당이 있다. 무당은 하늘에 기원하는 사제로서의 역할, 병을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역할, 앞날을 내다보는 예언자로서의 역할, 악령을 이용하는 저주의 역할, 춤과 노래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영험을 갖는다.

무속신앙에서 삼신할망은 이를테면 무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신통력을 갖고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특히 삼승할망은 아기를 갖도록 점지해 주는 신불(神佛)의 위치에 있다고 믿었다. 귀한 아기를 낳게 해 줄 뿐 아니라 산육(産育)하고 관장한다는 신으로 인식했다. 신(神)이요 산신(産神)이 곧 삼승할망이다.

전국적이지만, 삼승할망은 제주에서도 다른 지역 못지않게 중요하게 모셔진다. 아이를 낳으면 “할마님, 귀헌 자손이우다. 별 탈 엇이 잘 크게 해여줍서, 할마님께 빌고 비나이다” 하고 두 손 모아 싹싹 빌고 또 빌었다. 아기가 잘 성장해서 어른이 될 때까지 그 모든 것을 삼승할망이 다 맡아서 해 준다고 믿었으므로, 기원의 말엔 간절함이 깃들었음은 말할 것이 없다. 

출처=오마이뉴스.
아기가 자면서 방긋방긋 웃기만 해도 ‘삼승할망이 쓰다듬엄시녜’ 한다. 아기가 삼승할망의 보살핌 속에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다며 흐뭇해하는 것이다. 출처=오마이뉴스.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빌기 위해 삼신상을 차리고 밥과 미역국을 올렸다. 아기가 자라는 과정에서도 갖가지 질병이나 동티가 따르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말라고 또 동티 나지 말게 해 달라고 삼승할망을 위한 의례가 지속적으로 행해졌다.

‘봇바른듼 할망이 직헌다.’

신통한 일이다. 집안의 귀한 손이 어쩌다 불의의 위험천만한 사고를 당했는데, 놀라운 일이 아닌가. 교통사고로 여럿의 사상자를 냈는데 그것도 어린 아이가 상처 하나 없이 말짱했지 않은가. 아무렇지도 않고 무사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기적 같은 일이라 다들 놀라고 놀란다. 그게 그냥 무사한 게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삼승할망이 지켜준 덕이다. 

그러니 우리 귀한 자손 무탈하게 해 달라 빌고 또 빌었지 않은가. 지극정성으로 축원을 올렸으니 삼승할망이 감복해서 구사일생으로 무사하게 보호해 준 것이다. 굳게, 굳게 그렇게 믿었다.

80세를 전후한 어른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무속신앙을 믿어 온 분들이다. 지금도 삼승할망의 존재를 믿는다. 아기가 자면서 방긋방긋 웃기만 해도 ‘삼승할망이 쓰다듬엄시녜’ 한다. 아기가 삼승할망의 보살핌 속에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다며 흐뭇해하는 것이다.

무속도 민간신앙으로 종교적 현상이다. 민간의 기층에 뿌리 내린 종교이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좋은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지 않는가.

‘급소는 삼승할망이 지킨다’는 믿음 하나만도 삶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됐을 것인가. 농사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안심할 수 있었을 테니까.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김길웅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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