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가 간다-택배노동 현장](1) 제주와 육지 잇는 택배노동자 김지환 씨 /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제주지회장

코로나19 사태로 갈수록 택배물량은 폭증하고 있다. 그러나 새벽배송이니 로켓배송이니 하는 업계의 치열한 마케팅 경쟁에 택배노동자들의 ‘안전’은 늘 뒷전으로 밀려있다. 최근 배송물량 증가에 쫓긴 ‘쿠팡’ 소속 택배노동자가 새벽근무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한진택배, CJ대한통운 등 택배 회사들과 노조 간 갈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 갇힌 택배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최근 정부도 급기야 택배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12일 국토부가 비대면 배송 등 택배종사자 보호조치 권고조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육지와 제주섬을 잇는 제주 택배노동자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3일간(3월31~4월2일) 생생히 동행 취재했다.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 글]   
문 앞에 놓여 있는 택배 물품. 택배노동자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물건을 받을 수 있다. ⓒ제주의소리
아침 일찍 고객의 아파트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택배 물품. 택배노동자들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물건을 받을 수 있다. ⓒ제주의소리

오전 8시, 전날 배송차량에 미리 실어놓은 물건을 배송 순서에 맞게 분주하게 재정리를 마치자 마자 배송 현장으로 출발하기 위해 배송트럭에 올랐다. 다시 고된 하루의 시작이다. 

"보통 이 시간이면 대부분의 택배노동자들이 배달을 시작합니다. 조금만 늦어져도 하루 배송에 차질이 생깁니다. 특히 시장 안에는 더 늦어지면 차를 세우기도 힘들고 오가는 사람도 많아 아침 일찍 배달해야 합니다. 자, 가시죠!"

택배노동자 김지환(43) 씨와 동행하기로 한 날이다. 코로나19로 제주에서도 10여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상태라 마스크를 단단히 챙기기는 했으나 고객들을 일일이 찾아가는 업무 특성상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김지환 씨는 CJ대한통운 소속으로, 현재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제주지회장을 맡고 있다. 

3년째 택배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택배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스스로 개선하기 위한 노동조합운동에도 열심인 그다. 

김지환 씨의 담당구역은 제주동문시장과 칠성로 일대. 이동차량도 많고, 복잡한 전통시장 특성상 오전에 배송을 마치지 못하면 일정이 꼬이게 된다. 

김지환 씨는 “시장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바빠진다. 잠깐 차 세우기도 너무 힘들죠. 그래서 아침 일찍 배달하지 않으면 안돼요. 자, 서둘러요. 늦으면 안돼요”라며 기자를 재촉했다.

CJ대한통운에서 근무하는 김지환(43)씨. 3년차인 그는 동문시장과 칠성로 일대를 담당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CJ대한통운에서 근무하는 김지환(43)씨. 어깨에 짊어진 박스만큼이나 택배노동자들의 삶의 무게 또한 가볍지 않다. 택배노동 3년차인 그는 동문시장과 칠성로 일대를 담당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전통시장 안의 복잡한 점포들과 시장밖 골목까지 미로처럼 이어져 헷갈릴 법도 한데, 그는 주저함 없이 움직인다. “처음에는 골목이 많고 복잡해서 힘들었다.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발급해주는 관내도를 통해 전날 배송지를 모두 달달 외우곤 했다”며 웃었다.

’시간이 금’이라는 그는 두 계단씩 오르며 서둘러 물건을 배달했다. 밀려있는 물건을 생각하면 잠깐의 여유도 부릴 수 없다. 머릿속에 그려둔 지도를 떠올리며 주저하지 않고 차를 세워 물건을 전달했다.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 공동현관 비밀번호마저 다 기억하는 그는 물 흐르듯 쉼 없이 배송을 이어갔다.

그는 “이왕 시작한 배달은 다 끝내고 쉬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엘리베이터 탈 때나 고객이 커피를 한잔 내줄 때는 고마운 마음에 피로를 잊으려 잠깐씩 쉰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휴식시간도 이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배달하던 중 고객이 타준 믹스커피. 편하게 커피 한잔 마실 여유가 없어 차에 두고 한 모금씩 마신다.  ⓒ제주의소리
배달하던 중 고객이 타준 믹스커피. 편하게 커피 한잔 마실 여유가 없어 차에 두고 한 모금씩 마신다. ⓒ제주의소리

오전 10시, 물품 배송을 마치고 칠성로 상가에 들러 물건을 픽업한다. 칠성로 입점 상가들은 인터넷으로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지환씨에게 픽업을 요청한다. “삼춘(삼촌), 오늘 보낼 거 5개 있수다.”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주문량이 폭증하면서 픽업 수량도 덩달아 급증했다고 한다. 상가 점포 사장들과는 친분이 쌓였는지 농담도 주고받고 코로나19로 힘든 와중에 응원 메시지를 서로 건네기도 했다.

분주히 칠성로를 활보하던 그가 갑자기 폐업한 어느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렇게 문을 닫는 가게가 있고, 안면 있는 사장님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쓰럽다”라며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상권을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실 그는 택배 일을 시작하기 전, 제빵사로 근무했다. 하던 일이 잘 안돼 접고, 우연한 기회로 지인의 부탁으로 시작한 일이 택배 노동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자식들이 눈에 밟혀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딸이 초등학교 전교 회장이다. 공부도 잘 하고 똑똑하다. 요즘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자면서 나한테 가르쳐준다. 손으로 입을 막고 기침 했다가 호되게 혼났다”고 말하며 행복한 표정을 보였다.

택배 노동을 하며 가장 힘든점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그는 “택배 노동 자체를 비하하거나 하대하는 분들이 꽤 있다. 나이를 불문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하루종일 기운이 없다”라며 불편했던 속내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그래도 고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고객들 중에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거나 간식까지 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럴때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모 무도학원 사장님은 배달 갈 때마다 박카스나 커피를 내어준다”며 배시시 웃음 지었다.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도로에서 배송을 위해 집중하는 지환씨.  ⓒ제주의소리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도로에서 배송을 위해 집중하는 지환씨. ⓒ제주의소리

지환씨는 매일 반복되는 택배 노동으로 ‘익상편’이라는 안구 질환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익상편은 바람, 자외선, 먼지, 이물질 등으로 인해 생기는 질환이다. “익상편 때문에 안경을 쓰고 다닌다. 수술 때문에 일을 쉬어야 하는데 걱정이 많다”며 “내 공백이 누군가에게 일을 떠넘기게 하는 형국이 된다. 짐을 안겨준다는 마음에 미안함이 많다”고 걱정했다.

택배 노동자의 수입 구조는 건당 수수료를 얻는 방식으로 이뤄져있다. 일을 쉬게 되면 수입이 전혀 없다. 또 담당 구역 물건은 다른 동료들이 맡아야 해 미안한 마음에 아프기도 쉽지 않다. “아프기도 쉽지 않다”는 그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오후 12시50분, 지환씨는 같은 회사의 다른 터미널로 이동해 노동 인권을 위한 피켓시위를 펼쳤다. 배달현장의 밀린 일정 사이에서 그는 택배노동자들의 권리찾기 행동에도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놓고 있었다. 

그는 택배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제주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택배노동자의 나은 삶을 위해 조합은 꼭 필요하다. 사람이 많을수록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어 더 많은 택배노동자들이 가입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지환씨는 동료와 함께 쉴 수 있는 시간을 희생해 매일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지환(43)씨, 김세종(39) 전국택배연대노조 제주지회 노동안전부장. ⓒ제주의소리
지환씨는 동료와 함께 쉴 수 있는 시간을 희생해 매일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지환(43)씨, 김세종(39) 전국택배연대노조 제주지회 노동안전부장. ⓒ제주의소리

택배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이다. 근로자처럼 일하면서도 계약 형식은 사업주와 개인 간 계약으로 이뤄져 있다. 이 때문에 사측은 불리할 때면 입맛에 맞게 택배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로 취급하며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 택배노동 구조는 기이하다. 회사는 노동자와 노조 활동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회사의 담당구역을 설정해 운영토록 하고, 어플을 사용하게 하며, 근무복을 입도록 권유한다. 실질적으로 회사에 속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불리할 때는 개인사업자로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택배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모 정당이 심의를 회피하고 있어 앞으로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배송에 바쁜 노동자들이 시위 현장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대리점 눈치를 살피느라 관심이 있어도 조합 가입을 꺼리는 신입 노동자와 노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베테랑들도 꽤 있었다. 

오후 2시, 육지에서 온 물건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무급으로 이뤄지는 물건 분류작업 때문에 오후 배송이 늦어질 때가 많다고 한다. “물량이 많은 날엔 도중에 배송 갔다가 저녁에 다시 터미널로 들어와 정리를 이어간다. 배송 자체가 늦어지는 바람에 8시 넘어 퇴근할 때도 부지기수다”라고 했다.

오후 4시, 물건을 싣고 오후 배송에 나섰다. “익일 배송으로 이뤄지는 제주 택배 특성상 다음날 해도 되는 일이지만, 물량이 많아 저녁에 배송하지 않으면 다음날 감당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오후 6시50분, 오후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다음날 배송할 물건을 실으러 다시 터미널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40분이었다. 꼬박 12시간을 노동현장에서 보낸 귀갓길이다. 힘들어도 참아야 하고, 아파도 참고 일할 수 밖에 없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늦은 시간 퇴근하는 지환씨. 그의 뒷모습에서 택배노동자의 애환이 느껴졌다. ⓒ제주의소리
늦은 시간 퇴근하는 지환씨. 그의 뒷모습에서 택배노동자의 애환이 느껴졌다. ⓒ제주의소리

이날 기자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배송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수백 건의 물건을 배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중간중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물건을 제때 배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했다. 또 고객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순간, 진짜 택배노동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만약 가까운 시일에 택배를 받을 일이 있거나 택배노동자를 만난다면 꼭 ‘감사합니다’ 또는 ‘수고 많습니다’라는 한마디를 전하겠다는 다짐이 저절로 가슴을 채웠다. 어렵지 않은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힘든 노동을 이겨낼 자양강장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들은 이미 정부와 법원으로부터 노동3권을 가진 '노동자가 맞다'고 인정받았지만 현장에서는 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실제 현장에서 택배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받으려면 정부가 사용자들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택배노동자, 현대인의 삶에 밀접하게 닿아있는 그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제주 곳곳을 누비고 있을 택배노동자들의 안전과 정당한 권리찾기 목소리가 현관 앞 택배에 함께 배송되었을 것이다. 그들을 향한 응원이 필요하다. 

김찬우 수습기자 ⓒ제주의소리
김찬우 수습기자 ⓒ제주의소리

김찬우 수습기자는?

2020년 1월 벽두 입사한 새내기. 제주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언론홍보학을 복수전공 했다. 태어난 곳은 제주가 아니지만 제주에서 공부했고 제주사람으로 뿌리내리고 싶은 청년이다. ‘같이의 가치’를 좌우명으로 삼고, ‘시대의 소리, 진실의 소리’를 내기 위해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배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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