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가 간다-택배노동 현장](3) 땀의 현장 취재를 마치고 

코로나19 사태로 갈수록 택배물량은 폭증하고 있다. 그러나 새벽배송이니 로켓배송이니 하는 업계의 치열한 마케팅 경쟁에 택배노동자들의 ‘안전’은 늘 뒷전으로 밀려있다. 최근 배송물량 증가에 쫓긴 ‘쿠팡’ 소속 택배노동자가 새벽근무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한진택배, CJ대한통운 등 택배 회사들과 노조 간 갈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 갇힌 택배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최근 정부도 급기야 택배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12일 국토부가 비대면 배송 등 택배종사자 보호조치 권고조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육지와 제주섬을 잇는 제주 택배노동자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3일간(3월31~4월2일) 생생히 동행 취재했다.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 글]

3일간의 첫 동행취재를 마쳤다. 높은 산 하나를 등반한 느낌이다. 새내기 기자의 첫 르포 취재라 보람도 컸지만 아쉬움도 컸다. 마침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혹은 전 국가적 재난 상태를 겪고 있는 터라, 이전보다 더 큰 어려움에 처한 택배노동 현장을 생생히 전하기엔 아직 경험도 지식도 관점도 여실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3일간 동행했던 택배노동자 취재는 우선 육체적으로 쉽지 않았다. 가만히 차에 앉아 인터뷰를 나누는 게 아니라 물건을 싣고 내리고 배송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3일간 2명의 택배 노동자와 함께하는 동안 수없이 4~5층 고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값진 노동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됐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에 측정된 걸음 수는 3일간 약 4만 걸음. 거리로 환산하면 약 30km, 대략 제주국제공항을 기준으로 할 때, 동쪽으로는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해수욕장, 서쪽으로 제주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 남쪽으로 서귀포시 안덕면 방주교회까지 갈 수 있는 거리다.

3일간 새벽잠을 깨기 위해 휴대폰 알람을 수십개 설정했다. 기자는 평소 자고 있을 이른 새벽시간부터 배송을 준비하거나 배송을 시작한다니 ‘동행 취재’라는 요청이 되려 택배노동자의 생업을 방해할까 싶어 시간이라도 정확히 엄수하는 게 도리일까 싶어서였다.

현장에선 그렇게 빠듯하게 움직여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오전 물량을 제때 끝내지 못하면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을 시간마저 없어지기 때문이다. 생리현상이 급해도 제때 해결하지 못했다. 톱니바퀴 맞추듯 배송할 물건을 새벽 일찍부터 이동 동선에 맞춰 배송차량 적재함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부터 완벽하지 않으면 일정이 꼬일 대로 꼬여버린단다.

짐칸에 붙여진 관내도와 급하게 메모한 흔적들. 택배노동자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낸다. ⓒ제주의소리
짐칸에 붙여진 관내도와 급하게 메모한 흔적들. 택배노동자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낸다. ⓒ제주의소리

택배노동자들에게 일하면서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 배송지만 생각해야 헷갈리지 않고 배달사고(?)가 없다. 아주 가끔 딴생각을 하거나 멍하니 있다가 배달지를 놓쳐 다시 돌아간 적도 있다”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전국택배연대노조 제주지회장 김지환(43)씨의 대답이다.

배송하는 틈틈이 대화를 나누면서도 방해가 되진 않을까 걱정했다. 일 평균 350개가 넘는 물량을 해치우기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일정이었다. 배송 물건을 들고 고층 건물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리니 숨이 턱턱 막혔다. 

골목을 끼고 있는 주택가에서도 차를 세우고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정확히 집 앞에 배송 물건을 놓고 돌아왔다. 주소만 보고도 이곳저곳 실수 없이 배송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단했다.

택배노동자들과 일거수일투족을 똑같이 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란 욕심에 가능한 한 그들의 발자취를 똑같이 따라다니려 애썼다. 당연히 평소 쓰지 않던 근육들이 놀란 것은 당연. 3일간의 택배노동으로 몸 여기저기서 통증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어떤 ‘훈장’ 같은 보람이 수반된 고통이어서 불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파도 마음 놓고 아플 수 없는 현실, 1일 평균 12시간 안팎의 초인적 노동, 불안정‧불공정 산업재해보상 현실 등은 모두 노동시간과 연차휴가, 산업재해 등의 법적보호로부터 사각지대에 놓인 택배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노동자인데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일부라도 인식하게 됐다.

“많은 택배노동자들이 식사도 제때 마음 놓고 챙겨먹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그런데 개선 노력은 택배회사도 대리점도 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그래서 노조 활동을 한다.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전국택배연대노조 제주지회장 김지환(43)씨가 자신의 차에 붙여둔 대자보. 이들이 말하고 싶은 건 뭘까. ⓒ제주의소리
전국택배연대노조 제주지회장 김지환(43)씨가 자신의 차에 붙여둔 대자보. 이들이 말하고 싶은 건 뭘까. ⓒ제주의소리
사진 왼쪽부터 전국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부장 김기홍(39)씨와 그의 동료. 기홍씨는 지환씨의 친동생이다. 형제는 서로 다른 터미널에서 노동자 권리를 찾기 위한 피켓시위를 매일 이어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사진 왼쪽부터 전국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부장 김기홍(39)씨와 그의 동료. 기홍씨의 형 지환씨도 택배노동자다. 형제는 서로 다른 터미널에서 노동자 권리를 찾기 위한 피켓시위를 매일 이어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택배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 직군에 속한다. 택배회사에 속한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개인사업자로 각 대리점과 계약해 일하는 기이한 구조다. 그래서 전국택배연대노조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통과돼 근로 환경이 개선되길 간곡히 바라고 있다. 현재 해당 법안은 각 단체 이해관계 충돌 등 이유로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주요 내용은 △택배사업자와 종사자 간 6년 계약을 통한 안정적 계약 유도 △부정한 대가 지급 및 수취금지장치 도입 △생활물류 소비자 보호 등을 위한 서비스 평가제도 도입 △종사자 보호, 안전운행, 서비스 개선 위한 조치 등을 골자로 한다.

법안 제45조(종사자의 보호)에는 △종사자 과로 방지,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 휴식시간·공간 제공 △생활물류시설 내 안전운행 위한 주행로, 차량접안시설 등 충분한 공간·시설 확보 △혹서·혹한·폭우·폭설 등 종사자가 활동이 어려울 정도로 기상이 악화될 경우 안전대책 등 택배노동자의 주5일제·휴가·안전 등 처우를 개선할 근거가 마련됐다.

동행 취재하면서 그들에게 4.15 총선을 앞두고 바라는 점이 있는지 물었다. 역시나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을 통한 수수료 인하·평준화와 주5일제를 바랐다. “대리점에 영업점 관리 명목으로 수수료 떼 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근데 (대리점) 소장 마음대로 비율을 정해 노동의 대가를 부당하게 침해 받고 있다”고 항변했다.

택배노동자들에게 주5일 노동은 ‘그림의 떡’이다. 토요일에도 일하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자의 과로 방지와 안전 확보를 위해서라도 노동자에게 휴식은 꼭 필요하다.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물건을 실어나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배송 차량 행렬. 뒤에선 노동자들이 물건을 끊임없이 담아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물건을 실어나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배송 차량 행렬. 뒤에선 노동자들이 물건을 끊임없이 담아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지금 이 시간에도 고객들이 주문한 물건들이 육지에서 내려와 각 택배회사 대리점 터미널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구역별로 쉴 새 없이 분류된다. 송장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기도 버거울 만큼 택배물품들이 쏟아진다. 

사각지대에 놓여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택배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알리려 동행취재했던 3일간의 시간. 3일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했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행동하는 피켓시위는 노동자로서 그저 무시 받지 않고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이자 목소리였다.

힘들어도 아파도 우선 참아야만 하는 택배노동자들은 지금도 제주 곳곳을 누니며 시민들을 찾아가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기사 공간을 빌어 그들이 흘리는 땀에 감사를 표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일부라도 담아내는 것뿐이다.

힘든 노동 환경에서도 당연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건 택배노동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각지대에 내몰린 이 땅의 많은 노동자들의 그늘을 한번쯤 들여다보고 위로할 수 있었으면 한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에게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전한다. “노동자여, 떳떳한 권리 앞에 당당하라. 당신들의 정당하고 소박한 요구에 국민이, 도민이, 응답할 것이다”고.

김찬우 수습기자 ⓒ제주의소리
김찬우 수습기자 ⓒ제주의소리

김찬우 수습기자는?

2020년 1월 벽두 입사한 새내기. 제주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언론홍보학을 복수전공 했다. 태어난 곳은 제주가 아니지만 제주에서 공부했고 제주사람으로 뿌리내리고 싶은 청년이다. ‘같이의 가치’를 좌우명으로 삼고, ‘시대의 소리, 진실의 소리’를 내기 위해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배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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