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오영훈․위성곤 ‘재선’ 성공, 맏형 박희수 첫 본선무대 ‘낙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 ‘3인방’의 희비가 엇갈렸다.

4월15일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은 박희수(제주시 갑), 오영훈(제주시 을), 위성곤(서귀포시) 후보 등 3명이다.

3명 모두 최근까지 더불어민주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지만 박희수 후보는 중앙당에서 송재호 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전략공천하자 당을 뛰쳐나와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하지만 개표결과, 현역 국회의원인 오영훈․위성곤 후보는 재선에 성공한 반면 셋 중 맏형인 박희수 후보는 4위에 그치며 낙선의 쓴 맛을 봤다.

셋 모두 제주도의회 의정경험을 디딤돌 삼아 여의도를 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86년도에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희수 후보는 지방의회가 부활한 1991년 첫 공직선거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나이가 28세에 불과할 정도로 일찍 정치에 뛰어든 셈. 4년을 절치부심한 그는 1995년 결국 의원배지를 다는데 성공한다. 최연소 지방의원 타이틀을 달았다.

이후 박 후보는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오뚜기’라는 별칭을 얻는다. 2010년 지방선거 때 4선에 성공하며 제9대 제주도의회 후반기 의장을 지낼 때가 황금기라면 황금기다.

이번 4.15총선은 그의 10번째 공직선거 도전.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제주의소리> 등 언론4사가 1월19~21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총선 여론조사 때가지만 해도 제주시갑 후보군들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렇지만 중앙당에서 제주시갑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분류하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끝내 송재호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전략공천하자, 박 후보는 “공천장을 도둑맞았다”며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오영훈 제주시을 선거구 당선인은 1993년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04년 열린우리당 제주도당 창당에 참여했고, 강창일 의원 보좌관을 하면서 중앙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위 ‘몸빵’을 뛰면서 정치수업을 받았다.

2006년 제8대 제주도의회에 입성했고, 9대까지 재선에 성공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회 도전이라는 베팅을 하게 된다. 호기롭게 현역 김우남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경선에서 패배하며, 좌절을 맛봤다.

4년 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는 경선에서 3선 김우남 의원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더니, 본선에서는 출구조사 결과를 보란 듯이 뒤집고 역전승을 일궈냈다.

그 때 맞붙었던 상대가 당시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 부상일 후보다. 4년만에 성사된 리턴매치에서는 부 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리며 재선에 성공했다.

서귀포시 선거구에서 당선된 위성곤 당선인도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1991년도 총학생회장 당시 4.3진상규명 투쟁 및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투쟁으로 도민사회에 청년리더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대학졸업 후 서귀포신문 창간에 참여했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귀포시 동홍동 선거구에서 첫 의원 배지를 단 후 내리 세 번 당선됐다.

4년 전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운동권 선배인 문대림 전 제주도의회 의장(현 JDC 이사장)을 경선에서 꺾더니, 본선에서는 당시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 강지용 후보마저 누르며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이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검사장 출신인 미래통합당 강경필 후보를 누르고 선수를 ‘2선’으로 쌓으며 더 큰 정치를 향한 발판을 구축했다.

제주도의회를 접수(?)한 뒤 여의도 정치에 도전한 제주대 총학생회장 출신 3인방. 이 중 2명은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지만 1명은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한편 제주대학교 출신 1호 국회의원 타이틀은 김우남 전 의원이 가지고 있다.

*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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