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24. 지난 국회에서 끝내 문턱 넘지 못한 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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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입법 발의 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1대 총선 선거 공보물 ‘어디 있니? 노동 정책’

4.15 총선이 마무리 되었다.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비례대표 제도가 추진되어 유례없이 긴 투표 용지에 최다 비례정당이 출마한 선거였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비례후보를 낸 정당이 21개 였던 것에 반해,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을 비롯하여 총 35개의 정당이 출마했고 투표 용지가 48.1cm에 달했다. 

투표를 며칠 앞두고 후보와 정당의 정책 확인을 위해 집에 도착해있는 공보물을 살펴보기로 했다. 정책 중심 선거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각 정당의 정책이 유권자의 손에 직접 쥐어지는 것이 바로 선거 공보물이기 때문에 정당에서 말하고자하는 주요한 정책 공약이 실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중요하게는 각 정당별 노동 정책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35개의 정당에서 총 15개의 정당 공보물이 발송되어 있었다. 20개의 정당은 공보물 조차 만들지 못했다. 공보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각 정당의 노동 정책은 극히 드물었다.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정당 중 녹색당, 민중당, 정의당을 제외하고는 노동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은 찾기 힘들었다. 한시적 해고금지제도 신설 등을 공약한 노동당은 공보물이 없었다. 미래통합당도 10대 정책을 제시하면서 일자리 창출 등을 이야기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여성의제 정당을 기치로 하는 여성의당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성별 임금 격차 해결 및 성별 임금 공개,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등의 내용이 눈에 띄기도 했다. 

전·현직 대통령의 사진을 내세운 공보물도 있었는데 특히 이러한 공보물에는 정책 따위는 살펴볼 수 없었다. 그저 A정당의 힘을 싣기 위해서는 A-1이다, B정당의 직계는 B-1이다 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제한적인 공보물에 당의 정책과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모두 담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번 공보물은 문제가 있다 싶을 정도로 정당의 정책과 공약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노동 정책은 더 깊은 곳으로 숨었다. 

21대 국회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 

21대 총선 공보물에 노동 정책은 숨었지만 코로나19와 관련한 대응 방향 및 긴급 지원 대책, 재난기본소득제 도입 등의 공약은 골고루 포함되어 있었다. 코로나19이슈 속에서 진행되는 선거인만큼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국회가 나서서 예방과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두 달여 지속되면서 우리의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19가 극복되더라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뛰고 있는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의료 관계자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두 달여 동안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해서 사회적 거리 두기 등 확산을 막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또 오늘은 세월호 참사 6주기인 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자 추모글을 통해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와 대책 속에는 세월호의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유산으로 남겨준 아이들을 기억한다”며 세월호 유족과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고인과 유족을 위로하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리고 탄핵과 촛불 항쟁 이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의 태도와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의 견지에서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는 현장이 있다. 해마다 2000명 이상의 국민이 사망하는 현장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죽음은 사전에 간단한 조치 의무로 막을 수 있었던 현장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정부의 대원칙이 바로 노동 현장에 도입되어야 한다. 

노동 현장은 이미 위기 상태를 넘어 무방비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하루 3명꼴, 일하다 생긴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는 노동자까지 합치며 하루 6~7명 꼴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순위 10위권에 들지만 OECD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다.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경제 발전의 고리가 여전히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경중의 비교가 있을 수 없다. 코로나19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 일터에서 발생하는 위험 요소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로 확대되어야 할 때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으로 시작되어야 

그 시작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도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이 조직 문화, 안전 관리 시스템 미비 등으로 사업장을 비롯하여 다중이용 시설에서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을 때 법인, 사업주, 경영 책임자 등을 엄중하게 처벌함으로써 노동자·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업주,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법인에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사업주가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시설에 투자하는 것보다 사망하고 다치는 사고 발생 후에 치러야 할 벌금이 솜방망이에 머무는 이상 현장에서의 사고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삼다수 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해 최근 개발공사는 100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당시 노후 기계의 잦은 고장으로 인하여 생산 물량을 맞출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급자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 한 채 가동하다가 발생한 인재였다. 같은 사고가 영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이미 미국·영국·호주 등에서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살인죄’로 처벌하고 있다. 영국은 2008년 기업살인법을 시행했다. 1명이 사망하더라도 기업의 책임에 따라 최고 7억 원의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후 영국에서는 2011년까지 산재 사망 사고가 25% 줄었다고 한다. 한편 한국은 영국에서 기업살인법을 도입하던 2008년 경기도 이천에서 건설 노동자 40명이 냉동 창고 화재로 집단 사망한 사고에 대해 총 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을 뿐이다. 사망한 노동자 1인당 50만원의 벌금이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도입의 취지는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를 넘어 노동 현장에서 스러져가는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재정립하자는 취지까지 포함된다. 일터에서의 산재 사망이 일하다가 발생하는 필연적인 희생이 아니라 기본적인 안전 보건 조치를 취하지 않아 발생하는 범죄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우리사회에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대응에 모두가 마음을 모아 동참하는 것과 같이 누구나 일을 하다가 다치고 병들거나 사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모두가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중대재해기업처벌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입법 발의 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주요 정당의 숨어버린 노동 정책에 대하여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시대적인 요구를 고민해보면 어떨까. 

21대 국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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