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래의 사수만보 - 굴착기 일을 하던 김경배, 제주 제2공항 저지 투사가 되다
"어어~어, 쿵." 김경배는 비틀거리며 내려오다가 그만 다리가 꺾여 두 계단 밑으로 떨어졌다. 겨우 팔로 짚었지만 한 바퀴를 구른 탓에 흙범벅이 되고 팔꿈치가 욱신거린다. 집 마당에 성산 일출봉을 본 떠 만든 언덕에서 내려오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김경배가 다리를 다친 것은 제주도청 국정 감사날인 2019년 10월 8일의 일이었다. 이날 김경배와 '제2공항저지를 위한 비상 도민회의' 그리고 '천막촌사람'들은 제주도청 정문 앞에 모여 국토교통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제2공항 반대의지'를 보여주고 부당성을 호소하려 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면담을 거부했고 그들이 탑승한 버스는 도청으로 진입했다. 이때 시위대와 김경배는 버스 쪽으로 접근했고 경찰들과 거칠게 몸싸움을 하다 넘어지면서 조금씩 전진하는 버스 바퀴에 그의 오른쪽 다리가 끼이고 말았다. 후진하라고 소리를 쳐도 버스기사가 알아듣지를 못해 '우드득' 하며 뼈가 부러졌다.
그는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다리 여러 곳에 핀을 박아 고정해놓고 있다. 무릎과 발목 관절까지 상했던 터라 계단을 내려설 때 통증이 특히 심해 나지막한 내리막길에서도 구르고 만 것이다.
멀리 한라산 허리로 노을이 비껴돌면서 점점이 솟아 있는 오름으로는 저녁 어스름이 펼쳐진다. 사위는 조금씩 희끄무레해지니 가까이 온평리 바닷가에서 파도소리가 들린다. 김경배는 다리를 절며 집안으로 향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발목에서 무릎까지 찌릿찌릿 파고 든다.
저녁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얼마 전부터 위염이 도져, 누룽지로 대충 때우는 날이 많다. 쉰세 살에 혼자 사는 남자라 안 그래도 부실한데 속병까지 지녔으니 끼니 때가 되면 짜증이 난다. 이 모두가 42일이나 단식투쟁을 하고 회복식을 제대로 못한 탓이다.
국토부는 2015년 11월 제주도 성산읍 일원을 제2공항 부지로 확정한다고 발표했다. 총 10개 후보지 중에서 성산읍 난산리와 신산리 일대가 접근성, 환경성 등 9개 기준에서 최고 적합지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경배는 아침을 먹다가 이 뉴스를 듣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발표에 따르면 그의 고향이며 현재 살고 있는 땅은 활주로가 되고 부근에 있는 어머니집도 이주대상이 된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그날부터 그는 '굴착기' 일을 하는 사람에서 '제주 제2공항 저지투사'로 변신했다.
1인 시위에서 단식투쟁으로
김경배는 '제2공항 부지확정' 보도 며칠 후 짐을 싸서 서울 여의도로 올라갔다. 국회의원들을 만나서 하소연하면 달라질 줄 알았다. 동의는 물론 설명회조차 없었던 경과를 설명하면 원점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귀 기울여주는 의원들은 없었다.
그래서 청와대, 국토부, 제주도청, 새누리당사 등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1년여 동안 1인 시위를 벌였다. 처음에는 여관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시작했지만 갈수록 돈이 쪼들려 찜질방을 전전했다. 현수막과 머리띠, 그리고 피켓을 둘러멘 여정이었다.
그런데 1인 시위가 별 효과가 없자 그는 투쟁 방법을 한 단계 높여 2017년 10월 제주도청 앞에서 "부지선정의 부실을 검증하라"며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단식 초기 저혈압과 저혈당이 찾아왔고 두통이 그를 괴롭혔다. 사흘이 넘어가자 먹는 음식이 없어서 장 운동도 끊겼다. 목숨이 위태로우니 그만하라는 만류에도 42일을 버텼다. 그렇지만 국토부는 제주도와 '성산읍 반대대책위'의 '부지선정 타당성 검증'은 받는 척 하면서 '기본계획 수립용역'은 밀어붙이려 했다.
그가 사람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단식을 중단했을 때 구순에 이른 어머니는 눈물로 김경배를 맞았다. 그 또한 어머니를 끌어안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제주병원에 입원해서 죽을 먹고 4일간 몸조리를 하니 변이 문제 없이 나왔다. 장이 막히지 않은 것이 확인되자 그는 곧바로 퇴원을 당했다. 이후 회복식을 잘 해야 하는데 그에게는 쉽지 않았다. 이때부터 김경배는 만성 위염을 갖게 되었다.
2018년 후반기 들어 국토부는 성산읍반대대책위와 합의했던 '부지선정 검토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그리고 2018년 12월 '기본계획수립용역'에 착수하는 등 제2공항 추진속도를 높이려 했다. 이에 김경배는 또 다시 2018년 38일, 2019년 12월 10일간 단식을 했다. 제주 어디에도 2공항은 안 된다며 목표도 더욱 선명히 했다. 이렇게 단식 기간만 90일이 넘을 정도로 싸워왔으니 몸은 무너지고 속병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경배는 집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4월도 중순에 이르렀건만 사람 온기가 없는 주방은 늘 서늘하다. 밥솥에서 찬 밥을 푸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밀가루를 먹으면 속이 더 부대끼는데도 찌개며 반찬이며 모든 게 귀찮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은 관광객이 2000만명을 넘나들고 제주공항의 이착륙이 지연되면서 국토부가 국책사업으로서 검토하기 시작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안전성을 높이고 이용객의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며 제2공항 추진에 적극 화답했다.
한편 국방부도 노태우 정부 때 제주도에 공군기지를 만들려고 추진하다 주민반발에 좌절되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17년 3월 당시 정경두 공군참모총장은 공군 남부탐색구조부대 창설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제주 제2공항 등 4개 후보지를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었다.
결국 제2공항은 국토부가 앞에서 끌고 제주도가 뒤에서 밀며 국방부가 옆에서 당겨주는 사업이 되었다. 이런 일을 김경배가 온 몸으로 맞서며 나선 것이다. 어쨌든 그를 비롯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불쏘시개가 되어 '성산읍 반대대책위'와 '제주도내 11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제주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가 결성되었다. 또 2019년에는 전국 300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제주 제2공항 백지화촉구 전국행동'이 출범했다.
2015년 발표 당시만 해도 2공항 건설에 관한 도민 여론은 찬반이 팽팽했다. 그런데 제주도에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난개발이 이슈가 되고 쓰레기와 오폐수가 넘쳐나자 지금은 반대 여론이 더 높아졌다. 그래서 제주도 의회도 나서서 "제2공항 공론화 절차를 밟아 제주도민의 총의로 결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한편 2019년 5월 국토부가 은폐했던 파리공항관리공단의 용역보고서가 공개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착륙 혼잡은 관제 및 활주로 개선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 10월 30일에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의견서가 공개되었는데 제2공항 예정부지가 "생태 보전 가치가 크고, 철새 도래지가 있어 충돌 위험성이 높고, 소음피해 문제 등을 검토할 때 입지 타당성이 매우 낮다"며 다른 대안을 권고했다.
그렇지만 국토부는 2020년 2월 27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제2공항 기본 및 실시설계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5월로 예상되는 (환경부와의) 전략영향평가협의가 끝나면 강행할 태세다. 이런 분위기라면 자칫 '비상도민회의'나 '전국행동'과 대규모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굴착기로 땅만 파다가 전과 3범이 되어
저녁을 얼기설기 때운 김경배는 어둠이 깊어지자 집 마당의 언덕을 조심스레 다시 올랐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생각해보니 벌써 전과 3범이다.
2018년 5월 지방선거 당시 정책토론회에서 원희룡 후보에게 계란을 던져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2019년 12월에는 제주도청에서 농성하면서 "짬뽕 국물을 청경에게 뿌렸다"고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또 2020년 1월에는 환경부 관료들이 만나주지 않아 담을 넘었는데 '현주건조물 침입'죄가 적용되어 벌금 200만을 구형받았다. 제주도 촌구석의 이름없는 무지랭이였다가 불과 5년 만에 이렇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언덕 위에 올라 평상에 앉으니 어둠에 잠긴 한라산과 오름들이 보인다. 요즘 들어 단식 후유증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잇몸이 내려앉고 모든 장기들이 시원치 않다. 단식 기간 동안 뇌세포에 영양이 공급되지 못해선지 건망증, 실어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게 제일 힘들었다.
김경배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집안 내력으로 보면 무려 16대에 걸쳐 수백년 이상을 성산읍 난산리 주민으로 살아왔다. 그가 어린 시절에는 주로 주정을 만드는 고구마, 기름을 짜는 유채 농사를 했고 1985년경부터 감귤을 재배했다. 지금도 어머님과 6남매 중 동생들이 성산읍 인근에서 함께 살고 있다.
김경배는 군대를 다녀온 1991년 21세 때 굴착기 일을 배워 2015년까지 생업으로 삼았다. 2016년 1월에 1억 3천만원을 주고 새 굴착기를 샀는데 제2공항 저지 투쟁이 바빠 3월에 9천만원에 팔았다. 졸지에 전업 투쟁가가 된 지금은 수입이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그는 고향을 잃으면 삶을 잃는다며 병든 몸을 이끌고 투쟁전선을 지켜온 것이다.
김경배는 심호흡을 깊게 하고 언덕 위 평상에 누웠다. 예전에는 일과 후 이렇게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는 게 즐거움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온평리 바닷가에서 대나무와 작살로 문어를 잡으며 놀았다. 참돔을 잡아 회도 썰고 초밥도 만들어서 먹었다. 섭지코지가 코앞이어서 즐거이 오르내리고 새해맞이로 성산일출봉에서 가족들과 해돋이를 봤다. 성산일출봉을 너무 사랑해 집 마당에 쬐그많게 만들었을 정도니... 이렇게 성산읍 난산리는 그에게 고향이고 추억이며 삶이었다.
김경배는 담배를 하나 꺼내다 도로 집어넣었다. 끊어야지 하는데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맘 속의 걱정 탓이다. 정희승 시인은 오름을 어머니 젖가슴이라고 했다. 사진가 김영갑은 제주다움은 오름이라며 중산간 지역을 20년 동안 카메라로 그려냈다. 이곳 성산읍 일대에만 열 개가 넘는 오름이 있다. 공항 공사가 시작되면 다 깎여 나갈 것이다. 용암동굴도 흔적도 없이 파헤쳐질 것이다.
저어새같은 철새들은 제주를 외면하고 그의 집 근처 송골매나 맹꽁이 두견새도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섭지코지에서 온평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변은 찢겨나가고 수백 년 이어져 온 밭담이며 유채꽃밭 감귤밭은 짓밟혀질 것이다.
평상에 돌아누워 한라산 쪽을 보니 먼 창공으로 미리내 별빛이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그 옆으로는 싸라기별들이 밤바람에 몸을 떨고 있다. 엄마는 김경배가 어릴 적에 밤이면 유채꽃밭에서 북극성과 늑대별, 개밥바라기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설문대할망 얘기를 들려주었다. 치마폭에 흙을 담아 오물조물 오름을 만들고 한라산을 한 웅큼 떼 내 산방산을 빚은 얘기를 들려줬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김경배는 엄마 무릎에서 잠들곤 했다.
상한 몸, 지친 마음, 김경배는 눈이 스르르 감기는데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몸을 돌아누우니 성산 일출봉 너머로 손톱달이 살짝 얼굴을 비춘다. 그 옆으로는 여우별이 까뭇까뭇 졸고 있다. 김경배도 어느덧 가는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든다. 한라산에서 불어온 봄바람이 성산읍 오름을 돌고 돌아 김경배가 누운 평상에 이불처럼 머문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 기사입니다.
김경배님의 현장 사진들
<못다한 이야기> 김경배님의 5년여에 걸친 투쟁기록은 그의 페이스북에 자세한 일지와 사진들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방문하셔서 격려글 응원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56787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10907 ⑤ '제주 제2공항 백지화촉구 전국행동'은 출범선언문에서 이들은 선언문에서 3천만평에 이르는 제주 땅이 골프장과 대규모 리조트 등으로 개발 되고 있다.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 때문에 소각도 매립도 하지 못한 쓰레기가 10만 톤 가까이 쌓여 있고, 하수처리 되지 못한 오폐수가 제주바다로 쏟아지고 있다"며 "제주가 좋아서 제주를 찾았던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제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다움'을 지키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