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경제학의 초석을 놓다
한국 미술경제학의 초석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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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63. '미술시장의 탄생', 손영옥, 푸른역사
'미술시장의 탄생', 손영옥, 푸른역사, 2020. 출처=알라딘.

예술은 언제부터 상품이 되었을까? 이렇듯 우매한 질문에 대한 가장 현명한 답변은 당연히 ‘자본주의의 태동기부터’이다. 수천 년 인류 문명사에서 자본주의 사회처럼 거의 모든 노동 과정과 그 결과물을 상품으로 전환한 시대는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인간의 노동마저 상품으로 살고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 접어들어, 인간 노동의 최고로 평가받는 예술 또한 상품화의 논리에 포섭되었다. 예술 노동이라는 창작 행위가 결과한 물건, 즉 예술 작품이라는 재화는 다소간의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여지없이 자본주의 시장 체제의 상품으로 전환함으로써 근대적인 사회 체제의 일부로 확고하게 정착할 수 있었다.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 노동 그 자체도 일종의 서비스·재화로 자리 잡음으로써 근대적 공론장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렇듯 시장 체제에 편입된 예술이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왔으며, 향후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를 묻고 답하는 일은 이 시대 예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일찍이 미술과 시장의 관계를 갈파한 심상용의 책, <시장미술의 탄생>(아트북스)이 나온 것이 2010년의 일이다. 2000년대 초반, 다수의 화랑이 아트 펀드의 유혹에 빠져들었고, 다수의 컬렉터들이 화폐 획득의 수단으로 미술품 거래에 뛰어들었으며, 다수의 예술가들이 미술 시장의 활황에 적잖이 환호했다. 이 책의 부제 ‘글로벌 아트마켓의 성장과 예술의 몰락’이 말해주듯이, 당시의 미술 시장은 풍선껌처럼 부풀었다가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심상용은 한국 미술계의 허상을 반성적으로 고찰하면서, 미술 시장에 끌려가는 미술을 지양하고 예술로서의 미술 본연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당위를 역설했다. 미술 창작의 동인을 미술 시장에 맞춘 ‘시장 미술’이 나타났다는 이 뼈아픈 진단은 그 후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 의식으로 남아있다. 

한국 미술계에 시장 미술 비판이 등장한 지 딱 10년 후에 미술 시장을 다룬 손영옥의 연구서 <미술시장의 탄생>이 나왔다. 심상용이 예술 비평의 관점에서 미술 시장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시도한 것이라면, 손영옥은 사회사와 경제사 관점에서 한국 미술 시장의 생성과 진화 과정을 추적했다. 국민일보 미술·문화재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 손영옥은 늦깎이로 미술이론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학위 논문의 주제를 5년 간 더 파고들어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한국 미술 비평의 근거를 더욱 두툼하게 만들어주는 역작이다. 그것은 19세기 구한말에서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등장해서 정착하는 과정의 한국 미술 시장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것은 시장 미술이라는 극단적인 진단을 받은 한국미술계의 단면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초석을 제공한다. 동시대의 현상을 결과한 원인과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현실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손영옥은 수천 년 한반도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체제, 즉 미술 시장이라는 체제의 등장과 변화 과정을 생생하게 펼쳐놓는다. 근대적 형태의 미술 시장이 어느 시점에 어느 장소에서 발생했으며, 이후 전개와 발전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소상하게 밝힌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출발점은 개항기이다. 서구 문물이 급속도로 유입되던 개항기에 미술품 컬렉션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고미술품으로 고려청자가 수집과 거래의 대상으로 떠오른 시기와 함께 초기적 형태의 갤러리가 등장한 시기가 개항기이다. ‘미술로서의 고려청자의 발견’, ‘지전’과 ‘서화관’ 등이 그 근거이다. 이후 일제 문화 통치 이전(1905~1919), ‘문화 통치’ 시대(1920년대), 모던의 시대(1930년대~해방 이전)로 이어지는 각 시기별 미술 시장의 변화상을 알려준다. 그의 분석은 아래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시장 체제의 확립을 정교하게 분석한다. 

“자본주의를 속성으로 하는 근대 미술시장의 진전 여부는 재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2차 시장의 진전 정도를 그 척도로 삼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사실상 시작된 을사늑약을 기점으로 고려청자 거래 욕구가 일거에 분출하듯, 1차 시장인 골동상점과 2차 시장인 고미술품 경매가 일본인의 주도로 동시에 출현하는 독특한 현상을 보였다. (중략) 경성미술구락부가 창립되어 재판매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 1920년대 초반이라면,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미술품의 재판매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들어서부터다.”
- 손영옥의 <미술시장의 탄생> 가운데 일부

이렇듯 미술 시장은 1차 시장과 2차 시장의 분화 과정을 거쳐서 자본주의 시장으로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전근대기와 근대 초기의 공동 취미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화폐 획득의 수단으로 재정립하기까지 반세기 정도 걸린 셈이다. 1920~30년대에 확립된 식민지 조선의 미술 시장 구조는 오늘날의 한국 미술 시장에서 보이는 이중 구조와 일치한다. 미술 시장을 통하여 이른바 투자 수익을 챙기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은 21세기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라 이미 100년 전에 나타난 구조이자 현상이라는 것이다. 고려자기와 조선백자, 갤러리, 경매, 전람회 등 당시 새롭게 자리 잡은 공간과 제도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정보력은 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걸린 세월을 반증한다. 백화점 갤러리의 생성을 미술 시장의 완성으로 규정한 저자는 당시 백화점들의 도면 속에서 갤러리의 위치를 특정해서 기록물로 실어줄 정도로 꼼꼼하게 작업했다. 

저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미술 시장은 이미 100년 전에 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힘은 ‘시장 참가자들이 보여준 욕망’에서 나왔다고 진단한다. 이어서 저자는 향후 연구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20세기 후반 이후 한국 미술 시장의 흐름을 추적하는 일이다. 추정해보자면, 저자는 아마도 후속 작업에서도 욕망의 힘을 확인할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미술 시장을 추동하는 힘은 역시 시장 참여자들의 욕망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은 미술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호명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진 부조리를 못보고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손영옥이 발견한 것은 100년 전부터 미술 시장에 자리 잡은 욕망의 힘이다. 그 힘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예술 경영의 관점을 예술 경제의 관점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자본주의’라는 등식을 대입하면 이미 한국의 미술시장은 1930년대 중반 자본주의적 미술시장 제도의 모습을 거의 갖추게 된다. 1930년대의 갤러리와 경매회사, 전람회 등 미술시장 제도의 모습은 21세기인 지금의 갤러리현대, 서울옥션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1876년 처음 문호를 개방한 이후 해방되기까지 70년이 안 되는 시기에 일어난 변화다. 무엇이 이런 압축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까. 거칠게 요약하면, 개항과 일제강점이라는 엄청난 외부 충격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시장 참가자들이 보여준 욕망의 힘 덕분이다.”
- 손영옥의 <미술시장의 탄생> 가운데 일부

경영(학)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라면, 경제(학)은 모든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헤아리는 과학이다. 예술 경영을 예술 경제의 관점으로 전환하면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존재해온 예술의 소외로부터 한걸음 진전된 변화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은 욕망을 수용하는 장치이지만, 그 시장에서 발생하는 결여와 결핍을 보완하는 것은 역시 공공의 정책이다. 시장을 보완하거나 대리하는 역할로서의 공공이 미술 시장의 경영학적 편중을 경제적 균형 감각으로 재구조화하는 일을 제대로 펼쳐야 예술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예술 본연의 가치인 사용 가치가 예술의 부차적 가치로부터 출발한 교환 가치에 의해 잠식되는 사회, 그런 사회의 부조리를 고치지 않고서는 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생성하고 매개하여 수용하는 일에 나설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미술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이 책에 잔잔한 경의를 표한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경기문화재단 '평화예술대장정' 프로젝트 총감독 겸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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