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로 시민행동 25일 ‘낭 싱그레 가게’ 행사 개최...“다시 울창한 숲으로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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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로 시민행동 '낭 심는 사롬덜'은 25일 비자림로 확장 공사 구간에서 시민들과 함께 나무심기 행사를 가졌다. ⓒ제주의소리

부실한 공사 과정에 환경부가 제동을 건 비자림로 확장 공사. 나무가 잘려나가 밑동만이 남은 그 자리에 시민들이 모여 나무를 심었다.

비자림로 시민행동 ‘낭 심는 사롬덜’은 25일 오후 2시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나무 심기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나무를 잘라낸 공사 구간에 묘목을 심으면서 난개발에 대한 경각심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취지다. 

비자림로 공사는 제주시 대천교차로부터 금백조로까지 2.9km 구간을 3개 구간으로 나눠 왕복 4차선으로 확장하는 사업이다. 제주도는 2018년 8월 삼나무 900여 그루를 잘라 냈지만 시민단체가 환경훼손 문제를 지적하면서 공사는 닷새 만에 중단됐다. 이에 제주도는 보강 대책을 마련해 7개월만인 3월23일 공사를 재개했다. 이후 69일 만인 5월30일 영산강유역환경청이 다시 공사를 중지시켰다. 공사가 멈춘 지 1년 가까이 됐다. 완공 목표는 2021년 6월이다.

이날 행사 참가자 한 사람당 어린 나무 1개를 심었다. 나무는 공사장 주변에서 자라는 것들을 옮겨 심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고려해 애초 계획보다 행사 규모나 참가자 수는 줄었지만, 시민들은 이곳이 다시 울창한 숲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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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심기 행사 현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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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무에 매달 초록색 끈을 준비하는 시민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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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50여 그루 이상의 묘목을 심었다. ⓒ제주의소리

선흘리 주민 이진희(45) 씨는 “212번 버스를 타며 이 길로 아침저녁 출근한다. 다닐 때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참 좋다. 실제로 크게 불편함을 느낄 만큼 길이 막힌 적이 드물고, 오히려 버스 운행 속도가 빠르다고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닌데 왜 길을 넓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제주도가 시민들을 충분히 설득할 필요가 있다”면서 “오늘 자녀와 함께 심은 나무가 높이 자라서 나중에 다시 찾아와 ‘그때 심었던 나무’라고 이야기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민 행동에는 예술가들도 힘을 보탰다. 평소 제주4.3을 비롯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깊은 관심을 가진 고길천 화백은 그중 하나다. 고 화백은 2월부터 공사 현장을 찾아 밑둥만 남은 삼나무를 프로타주(frottage) 기법으로 종이에 옮겼다. 그렇게 만든 작품 100점은 이날 나무를 심은 시민들에게 무료로 배포됐다.

고 화백은 “애초 비자림로를 소재로 개인전을 준비했지만 시민 행동에 힘을 보태는 일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방식을 확장했다”며 “숲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면서 인간은 왜 이렇게 잔인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내 4.3미술과 비자림로 작품 모두 생명이란 하나의 가치로 이어진다. 앞으로 비자림로에 대한 여러 예술 행동이 계속 되길 바라면서, 잘못된 정책을 시민들이 바로잡을 수 있길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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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심기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고길천(오른쪽) 화백. ⓒ제주의소리
고길천 화백의 작품을 들어보이는 가족. ⓒ제주의소리

주최 측은 50주년을 맞는 ‘지구의 날’을 기념하며 제주환경선언문을 함께 발표했다. 지구의 날은 매년 4월 22일이다.

주최 측은 “코로나19의 원인에 대해 난개발로 서식처를 잃은 야생동물에서 찾고 있다. 기후 위기, 멸종시대에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지상주의는 결국 생명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인간의 멸종을 초래하는 자멸의 길임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 발달과 인구의 팽창, 그리고 난개발로 인해 제주의 하늘과 바다, 마실 물은 오염됐으며 녹지는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 이제 제주 자연은 평형을 상실했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생존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며 “제주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제주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모든 공해요인을 배제함으로써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회복 유지하는데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그대로 아름다운 제주를 다음세대에게 물려주고자 난개발의 상징이 돼 버린 이곳에서 제주환경선언을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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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환경선언문 발표 기자회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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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 등장한 피켓. ⓒ제주의소리

주최 측은 ▲제주를 사랑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일은 국가나 공공 단체를 비롯한 모든 도민의 의무이자 책임임을 깨닫는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경관과 문화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연 자원은 인류를 위해 보호돼야 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인 제주를 가정, 학교,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환경 교육을 통해 체질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행위에 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제주 자연 보전이 최우선 돼야 한다. ▲제주의 땅, 바다, 공기 자연을 오염시키는 모든 행위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따르도록 하며, 파괴된 제주 자연은 즉시 복원하도록 한다. ▲제주 도민 각자가 생활 주변부터 가꾸고, 제주를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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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무들 사이로 '비자림로 공사 부지는 제주도의 공유재산입니다. 무단 사용(점유)하면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제주도의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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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울창한 숲이었던 자리는 지금 휑하게 비어있다. 시민들은 이곳에 다시 나무를 심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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