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정기성 할아버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故정기성 할아버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4.3재심 청구자 중 누명을 쓰고 가장 오래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 故 정기성(1922~2020) 할아버지가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던 정 할아버지는 이날 오전 5시 제주시내 한마음병원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99세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출신인 정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 돼 일본 히로시마 조선소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광복후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살다 4.3의 광풍에 휘말렸다. 소개령이 내려지자 가족들을 이끌고 산으로 몸을 숨긴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1948년 11월 학생청년단에 잡혀 하효지서로 끌려가 영문도 모른 채 온갖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총살을 당했다. 아버지는 몸을 피했지만 예비검속에 걸려 행방불명인이 됐다.

정 할아버지는 이송된 위미지서에서 도망쳐 1949년 5월까지 산에서 생활했다. 스스로 경찰서로 간 정 할아버지는 그해 7월 군법회의에 넘겨져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성명불상의 무장대에게 식량 등을 제공해 물자로서 적을 구원하고, 성명불상의 무장대가 폭동을 할 때 참가해 적과 통신 연락 혹은 적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거짓 혐의가 씌워졌다.

마포형무소에 수감된 정 할아버지는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수형자들과 함께 형무소를 나왔다. 당시 북한군이 남쪽 형무소의 문을 열어주면서 벌어진 일이다.

목포 등지에서 생활하다 1954년 제주로 돌아왔지만 다시 경찰에 잡혀 목포형무소에 재수감됐다. 형량은 15년으로 줄어 1965년에야 출소했다. 

정 할아버지는 2019년 1월17일 생존수형인 17명과 함께 사상 첫 4.3관련 재심청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당시 병상에 누워있던 정 할아버지는 법정에는 출석하지 못했다.

공소기각 후 정 할아버지의 아들 정경문씨는 “20대이던 아버지를 불법 구금해 인격을 몰살하고 청년의 기회를 박탈했다. 이를 기회로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4.3재심청구인 18명 중 故 현창용 할아버지와 故 김경인, 故 김순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올해 2월에는 2차 재심청구에 나선 故 송석진 할아버지가 영면에 들었다. 벌써 5명째다.

정 할아버지의 빈소는 제주부민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일포인 26일 오전부터 일반인들의 조문이 예정돼 있다. 생존수형인들도 이날 빈소를 찾아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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