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올해로 제8회를 맞는 4.3평화문학상 수상작으로 시 부문의 <맑고 흰죽>, 논픽션 부문의 <그해 여름>을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맑고 흰죽>은 변희수(58, 경남 밀양) 작가, <그해 여름>은 김여정(47, 전남 영암) 씨의 작품이다. 소설 부문은 당선작을 선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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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제주의소리

시 당선작은 4.3 당시 토벌대의 총탄에 턱을 잃어버린 채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던 진아영 할머니를 다루고 있다. 이상국, 이하석, 김광렬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죽을 먹을 수밖에 없는 불편한 몸을 떠올리고, 그 불편함을 야기한 ‘죽고 죽이는’ 비극적 사건을 되새기면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쉽게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인식하에, 주어진 삶을 힘겹게 가누어나가는 한 인간의 애잔한 안간힘을 그려내고 있다”며 “음식을 통해 쓰디쓴 역사의 맛을 되새기는 절실함이 가슴을 울리게 한다”고 호평했다.

변희수 작가는 196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2011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13년 천강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시집 《아무것도 아닌, 모든》을 펴냈으며 현재 대구시교육청 창의융합교육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논픽션 당선작은 한국전쟁 당시 좌·우익에 의한 민간인 집단 학살부터 가난한 민중의 삶에 대한 증언을 다루는 작품이다. 주한미군사령부 바로 옆인 서울 용산구 보광동 빈민가에서 카페를 차린 필자가 동네 토박이 노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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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제주의소리

안재성, 박영희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어디에도 보기 힘든 새로운 이야기를 채록했다는 점에서 참신했다”며 “취재원들의 생각과 감정을 함부로 추측하거나 상상하지 않고 본인들의 말을 통해 표현하는 논픽션의 기본 원칙을 잘 지켰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추천했다”고 평가했다. <그해 여름>은 지난해 논픽션 부문이 생긴 이후 첫 번째 수상자다.

김여정 씨는 영국에서 대학 졸업 후 국제 인권 단체, NGO 활동가로 활동하다 용산에서 다문화 공동체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 보광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할머니들을 손님으로 만나게 돼 증언을 채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소설 부문 당선작은 나오지 않았다.

고시홍, 임철우, 정찬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소설의 미학은 언어와 서사, 예술성의 조화에 있다. 언어를 바탕으로 인물, 사건, 배경, 복선 등 구조적 장치가 서로에게 유기적으로 스며들 때 소설이라는 생명체가 비로소 숨을 쉰다”며 “우리는 이 생명체의 역동적인 숨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당선작을 내지 못하는 애석함이 유달리 컸던 것은 4.3평화문학상이 지닌 무게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상식은 5월 중 열릴 예정이다. 상금은 시·논픽션 수상자 2000만원, 소설 5000만원이다. 4.3평화문학상은 제주도가 2012년 제정했으며 2015년부터 4.3평화재단이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한편, 4.3평화재단은 지난해 5월 13일부터 12월 13일까지 제8회 4.3평화문학상에 대한 전국 공모를 진행했다. 공모 결과 국내‧외에서 220명, 1204편이 응모했다. 시는 102명(1082편), 소설은 108명(112편), 논픽션은 10명(10편)이다.

다음은 역대 수상작 명단. 

제1회 : 현택훈의 시 <곤을동>, 구소은의 소설 <검은 모래> 
제2회 : 박은영의 시 <북촌리의 봄>, 양영수의 소설 <불타는 섬>
제3회 : 최은묵의 시 <무명천 할머니>, 장강명의 소설 <2세대 댓글부대>
제4회 : 김산의 시 <로프>, 정범종의 소설 <청학>
제5회 : 박용우의 시 <검정고무신>, 손원평의 소설 <1988년생>
제6회 : 정찬일의 시 <취우>, 김소윤의 소설 <정난주 마리아-잊혀진 꽃들>
제7회 : 김병심의 시 <눈 살 때의 일>

맑고 흰죽* 
변희수

불편해지면 죽을 
끓입니다

식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가볍게 훌훌 넘기고 싶다는 말
어제의 파도는 우물우물 삼켜도 된다는 그 말 

그게 잘 안 돼요
부드럽게라는 말이 목에 걸려요

당분간 절식이나 금식
이상적인 처방이라는 건 알아요 미련이 생겨서
나는 죽을 먹습니다

맑고 흰죽을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돌아서서 코를 풀었죠
조금 묽어졌다는 뜻이지만
눈물은 짜니까
빨간 눈으론 돌아다닐 수 없으니까
그런 날은 손바닥마다 노란 가시선인장꽃
울지 않은 척 했어요
얹혔을 거라고 수군거릴 때마다
이 고비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생각에 걸려

어제도 오늘도 삼키죠 백번도 더 생각하죠
죽이고 죽이다 보면 또 다시 죽

이렇게 맑고 흰죽
목이 메여요 달랑 죽 한 그릇인데
눈이 부셔요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몸속을 돌아다니는 물기가
어제의 죽이라 하겠지만
밤마다 복닥복닥 탕! 탕! 
죽 끓이는 시간이 또 다시 찾아오고 

죽은 조금만 쑤어도 넘치게 한 솥이에요
후회도 한 솥 미움도 한 솥이어서
나는 먹고 또 먹을 테죠
다행이다 싶지만

맑고 흰,
무명의 시간들 

좀 서운해요 돌아서면 고프고
어떻게든 달래고 싶은데
받는 게 이것 밖에 없는 이 속이 
내 속이 그렇다는 거죠 지금

*4.3 사건 피해자인 진아영 할머니는 턱과 이가 없어 평생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병과 영양실조를 달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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