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제주의료원 간호사 중 A씨 지인통해 심경 전해 "병원 노동자 안전해야 환자도 안전"

“통화를 했는데 눈물만 흘렸어요. 지난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마 모르실 거예요”

유해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간호사가 선천적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은 경우도 산업재해가 인정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29일 A(39.여)씨는 선배 간호사와의 통화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한 소송 당사자 4명 중 A씨의 심정을 선배 간호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눈물만 흘리더라고요. 지난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노조활동을 하며 현장에서 목소리를 낼 때 너무 많이 고생했어요. 사측(제주의료원)의 탄압 만만치 않았죠.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외부에는 안 좋은 소문 낸 사람으로 몰아갔어요. 노조는 무력화되고 간호사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죠”

“OO이는 병원을 다닐 수가 없었어요. 아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할 수도 없었죠. 어린이집에서도 봐주기 힘들었다고 해요. 집에서도 힘들고 병원에서도 힘들고. 결국 간호사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죠. 얼마나 힘든 싸움이었는지 모르실 거예요. 서로 만나면 손을 잡고 우는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이번 대법 승소 결과를 듣고 오열하는 건 당연합니다.”

A씨는 2014년 2월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한 4명의 당시 제주의료원 간호사 중 한명이다.

가혹한 근무환경 속에 2010년 3월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는 청색증, 폐동맥판막폐쇄증, 심방중격결손증에 시달렸다. 서울로 옮겨져 여러 차례 수술까지 받았다.

A씨는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출근했지만 강도 높은 근무환경은 여전했다. 남편과 어머니 등 가족들이 총동원돼 육아에 매달렸지만 A씨의 선택은 퇴사뿐이었다.

그 사이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11살 어린이로 자랐고 11년만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여성 근로자의 태아 건강 손상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국내 첫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며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1항에서 ‘업무상 재해’는 업무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이나 질병, 장해 또는 사망으로 정의하고 있다. 태아의 건강 손상을 업무상 재해로 처음 인정한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지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여성 노동자들이 안전한 일터에서 모성권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큰 발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의료연대는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기형아를 출생할 수 있는 약품을 다루는 등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턱없이 부족한 인력난 속에 임신 상태로 일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공공병원의 확충과 인력충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다시 확인됐다”며 “병원노동자가 안전해야 환자들이 충분한 치료를 받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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