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70. 아침 안개에 중 머리 깨진다

* 벌러진다 : 깨어진다, 쪼개진다

TV나 라디오까지 가지 않아도 핸드폰만 열면 그날의 기상 정보가 나온다. 비, 바람, 기온에 미세먼지 좋고·나쁨은 말할 것 없고 물결의 높이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오보가 없지 않으나 빗나가는 경우가 별로 없을 만큼 높은 확률로 신뢰를 얻고 있다. 생활과 직결되는 게 날씨 정보인 만큼 기상청에서도 기상 변화에 대한 과학적 접근으로 정확도를 높이려 애쓰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좋고 편리한 세상이다.
 
하지만 예전엔 기상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힘들었다. 유일하게 ‘오늘의 날씨’를 말해 주는 게 라디오뿐이던 시절, 그 라디오마저 한 동네에 몇 집 있을까 말까 했던 때가 생각난다. 애써 얻어들어 봐야 비 온다 했는데 볕이 쨍쨍 난다든지, 쾌청이라 했는데 하루 종일 장대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특히 날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어부들의 경우임에랴. 일기예보를 믿고 조업에 나섰다 풍랑을 만나 어려움을 당하는 건 그렇다 치고 자칫 조난당해 불귀의 객이 되는 수는 왜 없었겠는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시절이 있었다.

‘아침 안개에 중 머리 벌러진다.’

어른들의 기상 관측은 순전히 경험칙에서 나온 한 예다. 어릴 때부터 늘 듣던 이 엉뚱해 보이던 ‘일기예보’는 그게 터무니없는 게 아님을 알아 갔다. 가만 보니, 적중한다. 아침 안개가 짙을수록 한낮이 불볕더위로 이글거리는 것이다.

실은 ‘아침 안개에 중 대가기 벌러진다’ 쪽이 더 많이 쓰였을 터다. ‘대가리’는 ‘대갈통’과 함께 머리의 제주방언이다. 스님은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속된 말을 갖다 붙인 게 좀 그러해 ‘중 머리’로 순화함이 좋을 듯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3년 단기 출가에 나선 동자승들이 머리를 깎은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방언엔 거칠고 저속한 비어(蜚語)들이 의외로 많다. 목을 ‘모가지’, 배를 ’배떼기‘, 뺨을 ’귀싸대기‘, 코를 ’코빼기‘ 하는 식이다.

옛 어른들, 새는 날 밭일을 가거나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밤중에 마당에 나서서 밤하늘을 우러렀다. “허, 그것 참, 달이 갓을 써싱게.” 달이 둘레에 둥글게 갓을 쓰면 ‘우친다(비가 온다)’고 했다. 거의 적중이다. 강수량까지 mm로 맞추는 재간은 없어도 최소한 비가 오고 안 오고는 척척 맞췄던 것이다. 한라산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와 있으면, 이도 비가 올 테니 하던 농사일을 맞추느라 바쁘게 움직이곤 했다. 건 듯 샛보름(동풍)이 불거나 갑자기 후텁지근하게 마포름(남풍)이 불어와도 비가 올 조짐이라 했다. 어지간히 맞아 떨어지곤 하니 놀라운 일 아닌가. 그뿐 아니다. 비가 올 양이면 팔다리 어깨 할 것 없이 온몸의 뼈가 쑤셔댄다 했다. 이를 일러 ‘등허리 기상대’라 했던가.

요즘 스님들은 삭발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차광모를 쓴다. 생리적인 것이므로 궁리 끝에 나올 보호본능일 것이다.

아무튼 아침 안개가 심한 날, 하늘에서 잉걸이라도 내려놓는 것처럼 볕이 뜨거운 건 사실이다. 우리 선인들의 혜안(慧眼)을 엿보게 되는 대목이 아닌가.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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