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4.3도민연대-인권위부산사무소, 4.3수형인 사진전 개최

72주년을 맞이한 제주4.3이 '진정한 의미의 전국화'를 위한 또 하나의 의미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대한민국 제2의 수도로 일컫는 부산의 중심에서 4.3생존수형인의 아픔을 전하는 자리가 마련되면서다.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4.3도민연대)와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인권사무소는 4월 3일부터 5월 30일까지 이규철 작가의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사진전을 마련했다. 

그간 4.3을 알리는 행사의 경우 주로 제주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제70주년을 맞은 지난 2018년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문화제가 열리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그외 지역에서는 별다른 연이 닿지 않았다. 부산 역시 사실상 '4.3 불모지'나 다름 없는 지역이었다.

지난해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개최된 이후 두 번째 열린 이번 사진전은 부산도시철도 3호선 물만골 역사 내 조성돼 있는 부산인권전시관에서 진행됐다.

11일 찾은 전시장. 이 곳은 제주4.3 생존수형인 18명의 재심 재판 과정을 기록한 사진 작품으로 구성됐다. 2017년 4월 19일 제주지방법원에 '4.3재심 개시 청구' 소장을 제출하고, 2018년 9월 4일 재심이 열리고, 2019년 1월 17일 마침내 '공소 기각' 판결에 이르기까지 3년에 걸친 기록이 담겼다.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11일 오전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사진전에 참석한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와 이규철 작가.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전시 제목인 '나 죄 어수다'는 17일 열린 4.3재심 마지막 선고 재판에서 임창의(1921년생) 할머니의 최후 진술 내용이다. 임 할머니는 다섯 글자만 진술하고 원고석에서 내려왔다. 이규철 작가는 스스로를 '육지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제주의 풍광과 아름다움을 보았지만 그 속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전시하는 사진은 그들의 아픔과 한(恨)에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제주에서 전시를 하면서도 4.3을 육지에, 세계에 알리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피해자는 너무 아픈데 가해자나 주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며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감을 통해 제주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런 일이 선행돼야 치유가 있을 것으로 봤다"며 부산에서 진행되는 사진전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최근 운명을 달리한 4.3수형인 故 정기상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그 분의 삶을 듣다보면 죄송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나 힘든 현대사를 헤쳐나오셨구나, 우리가 너무 무관심하고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었다"며 "바쁜 생활 속에서 70년 전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많지 않은 세상이지만, 그동안은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전달하는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전시장에는 총 25점의 사진이 걸렸다. 흑백사진 속 할머니·할아버지는 담담하지만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 하단에는 70년 간 묻어뒀던 이들의 사연과 촬영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달렸다. 사실상 '무죄'임이 인정된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던 환희의 순간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전시장 앞쪽 디스플레이 전시장에는 4.3생존수형인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도 상영됐다.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길을 지나던 시민이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가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11일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사진전을 찾은 4.3도민연대 관계자들과 이규철 작가. ⓒ제주의소리

역을 지나던 적지 않은 수의 시민들도 전시회에 관심을 보였다. 사진을 대강 훑어보는 이들도 있는 반면,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부산시민 최상철(78)씨는 "그동안 (4.3의 아픔이) 묻혀있었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됐다"며 "이전까지 제주4.3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 강근옥(65)씨도 "뉴스에서 (4.3을)봤을 때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나보다' 싶었는데, 사진으로 억울한 분들의 사연을 보다보니 4.3에 대해 더 관심을 같게될 것 같다"고 했다.

사진전을 기획한 국가인권위 부산사무소 관계자는 "제주4․3사건 72주년을 맞아 제주4․3 수형인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전을 통해서 혼란스러운 역사적 사건 속에서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함으로써, 인권보호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고자 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부산지역 내에서는 제주4․3 수형인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수형인'이라는 용어도 시민들에게 생소하다. 제주4․3 수형인의 이야기를 지역 내 알리고 주목함으로써 인권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공감대를 높여 나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부산도시철도 물만골 역사 내 인권전시관에 마련된 '4.3수형인 18인의 이야기 -나 죄 어수다' 이규철 작가 사진전. ⓒ제주의소리

공동기획한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4.3을 기억하고 잊지말자는 구호도 중요하지만, 사실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잊지 말아야하는지 측면에서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4.3을 알리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됐을 뿐 부산 등 타 지역에 대해서는 일부 등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양 대표는 "작년부터 인권위와 연락을 주고 받아 올해 초에 확정된 사업으로, 코로나19가 퍼져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사진과 같이 예술·문화적으로도 알려나가는 것이 매우 뜻 깊지 않나 싶다"며 "이를 시작으로 여수·순천을 비롯해 대전 등 타 지역에서도 4.3을 알려나가는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부산=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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