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공유물이 충분히 남아 있어야 / 고봉진 교수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제 '소리'를 내는데 한발 더 다가섭니다. 이름하여 '소리 시선(視線)' 입니다. '소리 시선'에는 일종의 사시(社是)를 담고 있습니다. 금기의 영역은 없습니다. 다른 언론이 다루길 꺼려하거나 민감한 현안에도 어김없이 '소리 시선'이 향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가 1690년에 쓴 ‘통치론’이란 책이 있다. 사회계약론을 이론화한 책으로 유명하지만, 필자가 관심 갖는 부분은 ‘제2권 제5장 소유권에 관하여’이다.

로크는 신이 세계를 공유(共有)물로 주셨기에, 애초에 세계는 만인의 공유물이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에 더해 공유물인 자연에 인간이 노동을 투여하면 사유(私有)할 수 있다는 ‘노동가치설’을 주장했다. 로크가 ‘노동가치설’을 주장한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사유재산권에 2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다는 점이다. 로크에 따르면, 사유물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공유물들이 충분히 남아 있어야 하고, 사유화된 물건은 상하기 전에 사용되어야 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사유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공유물이 충분히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사유화된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우리 사회에는 공유물이 충분히 남아 있는가? 사유재산은 재산권으로 철저하게 보호하면서도, 별로 남지 않은 공유물은 점점 훼손하고 이마저도 사유화하려 하지 않는가!

필자의 독일 유학 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때 필자는 장학금이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래도 독일에는 대학 등록금이 없었기에 유학 생활이 가능했다. 한 학기에 30만원 정도를 학교에 내면, Semester Ticket이라는 종이로 된 교통카드를 받았다. 교통카드는 낸 돈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돈을 받고 다닌 셈이다.

독일의 교육시스템 덕분에 2001년부터 2006년까지 6년간 공부할 수 있었다. 그 고마움 때문에 필자는 박사학위논문 서문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무엇보다도 나는 독일에 감사드린다. 독일의 교육시스템 덕분에 나는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Vor allem danke ich Deutschland, dessen Erziehungssystem hauptsächlich mein Studium in Deutschland ermöglicht hat).”

독일은 교육을 기본적으로 공공재로 바라본다. 이에 반해 우리 사회는 교육이 철저하게 사유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 하에서 교육은 계층 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부의 대물림 수단이 되고 만다. 중산층 아래 계층 자녀들이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을 하려면, 중산층에 속한 자녀들이 그 아래 단계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을 사유화된 교육이 막는다(Richard Reeves/김승진 역, 20 vs 80의 사회, 민음사, 2019 참조). 이런 구조 하에서는 중산층이 아닌 부모와 그 자녀는 계층 이동 수단으로서의 교육에 기대기 어렵다.

교육을 공공재로 구축하는 것은 공유물을 충분하게 하는 한 방법이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이 점에서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의료시스템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공공재로서의 교육 시스템 구축은 매우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공유물이 충분할 때, 그 사회는 건강해진다. 물론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주장도 있다. 공유와 사유를 대립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토지공개념이나 헨리 조지의 주장만큼은 아니어도, 사유에 기반한 우리 (법)제도에 수정이 필요한 게 아닐까? 부족한 공유물을 다시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부유한 사람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어 이를 통해 공유재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가 기댈 수 있는 공유 시스템이 절실히 요청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재산권을 보호하고 사유를 소중히 여긴다. 필자도 사유재의 소중함을 절감한다. 사유재가 있어야 자립할 수 있으며,

사유재가 풍족해야 여러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사유의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 로크의 두 가지 전제조건을 기억하자. 내 사유물이 귀중한 줄 안다면, 다른 사람들의 공유물도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공유재로의 접근을 통해 개인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겠다.

“대도가 행하여질 때는 사람들이 천하를 공으로 삼지만(大道之行 天下爲公), 대도가 은폐되면 사람들이 천하를 사가로 삼는다(大道旣隱 天下爲家).”

공자는 ‘예기 예운편’에서 노나라의 현실을 개탄하며, 요순시대에 행해졌던 ‘대도지행 천하위공’을 말했다. 물론 오늘날의 大道와 공자가 말한 大道는 같을 리 없다. 그럼에도 大道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공의 것이 된다는 말씀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고봉진 제주대 로스쿨 교수 ⓒ제주의소리
고봉진 제주대 로스쿨 교수 ⓒ제주의소리

필자가 생각하는 大道는 공공시스템 구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의료, 교육의 공공시스템과 여러 사회 안전망 시스템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공공의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공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관리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면 또 다른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선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행력이 뒷받침되어 ‘건강한 사회’로 가는 토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또한 모든 사람의 공유를 확보하려는 조치임에 틀림없다.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한 번 확인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사회안전망 효과가 다른 분야에도 실효성 있게 구축되기를 소망한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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