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적으로 늦고, 제주도 2차 지원금도 현금 아닌 선불카드나 신용·체크카드 준비 중

14일 기자회견하는 원희룡 제주지사
14일 기자회견하는 원희룡 제주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14일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해 지역사용 제한 폐지와 현금 지급을 건의한 것과 관련해 도청 안팎에서 "뜬금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이미 포인트와 상품권으로 지급받은 국민이 상당수 있는 등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데다, 제주도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2차 제주형 긴급재난생활지원금도 도청 내부에서 '포인트나 선불카드'로 준비하고 있는 등 엇박자를 보이고 있어서다.

원희룡 지사는 14일 오전 10시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대정부 건의' 관련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제주도에서 오전 9시10분께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갑작스럽게 잡혔다. 내용도 전혀 사전에 공지되지 않았다.

원 지사의 대정부 건의는 긴급재난지원금의 지역사용 제한을 폐지하고, 카드나 선불카드, 상품권 대신 전액 현금으로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지난 5월4일부터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11일부터는 일반 국민들도 온라인을 통해 신청했다. 신청 이틀 뒤부터는 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원 지사의 건의가 실제 효과를 발휘하려면 최소 11일 이전에 실시했어야 했다. 13일 기준으로 전국 긴급재난지원금 신용.체크카드 신청 세대는 375만9000여가구에 이른다.

제주도 역시 11~12일 이틀간 전체 지급대상 29만5000여 가구 중 4만7089가구가 카드사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신청을 했고, 상당수는 이미 지급됐다.

온라인 신청을 접수받은 지 4일이나 지난 후에 원 지사가 뜬금없이 '현금 지급'을 건의한 것이다.

원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경제위기가 3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국민들이 많고, 공과금이나 통신요금, 카드대금, 자녀 교육비 등 현금이 절박한 국민들도 있다"며 "지역상권 매출 확대 등 여러 가지 목표를 섞어 놓지 말고 국민 개개인의 긴급한 필요에 쓸 수 있도록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돈 쓰는 것까지 일일이 제한하려 하지 말고 국민을 믿고 지급해야 한다. 지역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 쓰거나 이를 이용한 상품권 할인 재테크 영업이 등장하고, 상품권이 특정 상권이나 업종에 몰리고, 물가 교란이 일어나는 등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금을 지급한 제주도는 부작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원 지사는 "사용처에 제한이 있고 사용기간이 정해진 카드 포인트 충전이나 상품권보다는 현금 지원이 효과적"이라며 "긴급재난지원금은 국민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국민 모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지역사용 제한을 폐지하자는 건의는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니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금 지급은 사실상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주도는 6월 2차 제주형 긴급재난생활지원금을 '현금'이 아닌 선불카드나 신용.체크카드로 지원할 계획이었다. 사실상 정부 방침과 같다.

제주도가 지난 8일 제주도의회에 제출한 2020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따르면 2차 제주형 긴급생활지원금으로 468억원을 편성했다. 지급방식은 선불카드나 신용.체크카드 등으로 명시했다. 

원 지사가 이날 긴급 브리핑을 진행할 때까지도 예산담당 공무원들은 2차 생활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회 추경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할 때 제주형 재난지원금 지급을 현금이 아닌 정부와 같은 방식으로 하겠다고 했다'는 질문에 원 지사는 "실무에서 검토한 것인데 확정지은 바 없다"며 "1차도 현금으로 지급했는데 그 취지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도가 정부와 같은 방식으로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확정해 놓고 원희룡 지사가 임의대로 바꾼 것인지, 실무적인 검토안을 예산담당 부서가 원 지사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발표한 것인지 도청 내부에서 '엇박자'를 내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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