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시집 ‘사유의 변곡점’ 발간...“타고난 시인” 호평

출처=알라딘.

늦깎이 작가 정복언(72)이 첫 번째 시집 《사유의 변곡점》(정은출판)을 세상에 내놨다. “때 묻지 않은 심성”이라는 평가처럼 이 책은 한 개인의 섬세한 감성이 종이를 넘길 때 마다 오롯이 느껴진다.

2016년, 2017년에야 각각 시인과 수필가로 등단하는 꽤나 늦은 입문이지만 책 속에 실린 80여편의 시를 마주하면 조급함 보다는 차분함을 지니고 고요하게 관통하는 힘이 느껴진다. 

시소를 오르내리는 소녀 둘을 바라보며 “어른이 되면 알겠거니 시소같이 사랑이란 비대칭 상대를 올려놓는 일”이라고 말 없는 조언을 건네고, 쓸쓸한 가족 구성을 보이는 신문 속 부고에는 “여백이 많은 사연 뒤로 한 편의 서정시가 흐른다 눈으로 잠시 읽은 인연이지만 어찌 향을 아니 피우리. 새로운 세상에서 평안”을 기원한다. 

분꽃을 찾아간 노랑나비의 모습에서는 “찰나의 시간을 망치질하고 아로새긴 연정을 거둬들인다”는 애틋한 서정을 퍼올리고, 붉은 동백꽃을 보면서 “며칠을 붉게 가슴 열더니 생에 대한 미련을 저리도 쉽게 툭툭 털어내는가 너는 이미 절정을 넘는 순명”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사소한 주변 사물, 사안이라도 따뜻하게 바라보는 정복언의 시선은 ‘어머니’라는 존재에 이르러 한층 짙어진다.

<사모곡 1·2>, <붉음>, <어머니의 식사>까지. 그 외에 여러 작품에서 작게나마 등장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어머니를 얼마나 아련히 생각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붉음
정복언

메모지 위에 올라앉은
모기 한 마리
손바닥으로 찰싹하는 순간

꽃송이 붉게 벙글며
압화 두 장 그려놓네

덩달아 생각나네, 그 옛날
초등학교 파하여 집에 오니
방문 앞으로 내친 짚더미 예제
피어난 붉은 꽃에 시선 머물자
산파 노릇 하신 백모님이
네 여동생 태어났다고 알려주셨네

지워지지 않는 그 붉음
서러워서 
그 시간 속 어머니

책 말미 평설을 쓴 김길웅 문학평론가는 “시를 딛고선 그의 행보는 이미 등단 4년 차 초심이 아니다. 사유와 자연의 혼효(混淆), 내 안의 풍경, 길 위의 자아, 여기까지만 해도 그가 주관하는 언어의 영지(領地)는 넓고 깊다”고 호평했다.

더불어 “순간순간 피었다 스러지는 하나의 사상(事象), 하나의 몸짓, 어느 그리운 이름에게로 스쳐 지나가는 시적 단상인들 놓치지 않고 포획하는, 그는 타고난 시인”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시인
정복언

하나의 사물 위로
눈과 귀를 하나씩
더 얹혀 놓고

떠나 버린 빛과 소릴
불러와
가슴 터지게 뒹굴며

자정 넘어
강으로 흐르는 별 중
어느 한 별이 떨어져 나와
내려다보듯

그걸
즐기는 사람

정복언은 책 머리 ‘시인의 말’에서 “그저 바라만 볼 걸 무엇 하려 침묵을 헤집었을까 그냥 재미로 깨작인 건 아니어서 시라는 이름 앞에 엎디어 제 몸통 많이 부식된 고목에서도 새싹 키우는 그 노역을 보며 노욕에서 사유의 강에 조각배 하나 띄워 보낸다”는 ‘정복언’ 다운 인사를 전했다.

정복언은 1949년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에서 태어나 공주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제주대 교육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계에 입문해 고등학교 교장까지 마쳤고 은퇴했다.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6년 <文學광장>, 다음 해 <현대수필>로 시인·수필가로 등단했다. 현재 제주문인협회, 제주수필문학회, 동인脈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수필집 《살아가라 하네》가 있다.

정은출판, 163쪽, 1만1000원.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