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범행 당일 고유정 PC접속 기록 오류 가능성...직접증거 없이 법의학적 판단 집중 부각 

고유정(38.여)의 의붓아들 살인사건 무죄 판결에 ‘대단히 비논리적’이라며 작심한 듯 불만을 표출한 검찰이 항소심 재판에서도 결정적 증거인 스모킹 건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검찰이 정황증거로 제시한 범행 당일 고유정의 PC 접속 시간 디지털 포렌식 기록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스스로 증명력을 끌어 내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20일 살인 및 사체손괴, 은닉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 사건의 항소심 2차 공판을 열었다.

1심 무기징역 선고 직후 국선변호인을 선임한 고유정은 이날도 머리카락을 길에 늘어뜨린 채 법정에 나타났다. 방청석은 쳐다보지 않고 재판 내내 몸을 재판부 쪽으로 틀었다.

검찰은 무죄 판결을 받은 의붓아들 살인사건에 대한 고유정의 범죄 가능성에 화력을 집중했다.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와 양경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중앙법의학센터장 등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검찰은 고유정이 2019년 3월2일 새벽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현 남편 홍모(39)씨의 친자인 의붓아들(당시 6세)을 침대에서 몸으로 강하게 눌러 질식사 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범행 당시 집안에는 고유정과 남편, 의붓아들 3명이 있었고 아이는 외력에 의해 질식사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피해자 아버지의 범행 가능성은 배제했다. 결국 남은 가해자는 고유정 뿐이다.

증인 심문에서도 검찰은 피해아동 아버지에 의한 범행 가능성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증인들도 일관되게 취침 중 6세 아동이 성인의 다리에 눌려 사망할 가능성은 낮게 봤다.

이정빈 명예교수는 “부검 자료를 보면 아이가 침대에 엎드린 채로 외력에 의한 압력을 받아 숨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성인의 다리로 가슴과 얼굴이 압박될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이불이나 베개로 인한 질식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흉부압박과 비구폐쇄성 질식사는 이불이 덮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른 힘에 의해 눌려 사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경무 센터장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양 센터장은 “아버지가 몽유병이나 간질, 수면장애가 있다는 가정을 해도 6세 아이가 함께 잠자던 부모에 의해 질식사 당한 국내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에서는 신생아에 한해 질식사가 의심된다는 논문이 있었지만 3세 이상은 없다”며 “이번 사례는 가슴 상부에 피가 안 통할 정도의 압박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검찰은 시종일관 피해아동의 아버지에 대한 범행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정작 고유정이 범행을 했다는 직접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어진 증인신문에는 제주지방경찰청 디지털 분석관이 출석해 의붓아들 사망 당일 새벽 고유정의 청주 자택 내 PC 접속 기록에 대해 설명했다.

고유정은 시종일관 자신은 의붓아들이 죽기 전 다른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맞서 검찰은 고유정이 2019년 3월2일 새벽에 안방으로 이동해 컴퓨터를 작동했다고 맞섰다.
 

검찰에 따르면 고유정은 이날 오전 2시36분 안방에 있던 자신의 PC에 접속해 제주~완도행 여객선 탑승후기가 적힌 특정 블로그를 확인했다.

고유정이 PC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잠자던 방에서 나와 의붓아들이 있던 옆방과 거실을 지나쳐 맨 안쪽에 위치한 안방까지 이동해야 한다.

반면 이날 증인으로 나선 디지털분석관은 최초 수사를 한 청주상당경찰서의 분석 결과가 잘못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접속 시점이 3월2일 새벽 2시36분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 경우 고유정이 당일 새벽 깨어있었다는 검찰측 디지털 포렌식 결과의 오염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검찰측 증인이 검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상황이 펼쳐지자 방청석도 술렁였다.  

올해 2월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의붓아들 사망 사건에 대해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를 추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범행 당일 새벽 고유정이 깨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컴퓨터와 휴대전화 사용 시점에 대해서도 PC 접속 기록 자체의 오류 가능성을 지적하며 증명력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전 남편 살인사건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6월17일 결심 공판을 열어 검찰측 구형과 고유정의 최후 진술을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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