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72. 빠르면 빠른 값 있다

* 재민 : 빠르면
* 잰 : 빠른
* 깝 : 값  
* 싯나 : 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꿰어 못 쓴다’고 했다. 매사에는 수순이 있고, 그 일들은 차례 따라 차근차근 이뤄져야 한다. 마음 급한 나머지 서둘러 진행하다 뒤죽박죽 일을 망칠 수 있다. 급히 먹다 체하는 법이다.

이를테면 집을 건축하는 데도, 설계에 따라 분야별로 주어진 기간이 정해지게 마련이다. 그게 공기(工期)다. 급히 서두르다 집이 되기 전에 번번이 붕괴되는 사고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낭패가 없다.

출처=오마이뉴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꿰어 못 쓴다’고 했다. 매사에는 수순이 있고, 그 일들은 차례 따라 차근차근 이뤄져야 한다. 출처=오마이뉴스.

뱁새가 황새걸음 흉내 내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다. 자신의 능력을 모르거나 과신했다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흔히 주제 파악을 못한다고 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역량과 그에 걸맞은 시간과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것임을 일깨워 준다.

‘빨리빨리’는 일종의 조급증이다. 하루속히 가난에서 벗어나자. 어서 이 불행한 현실을 박차고 나가야지, 우리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한 발 앞서 성공했으면…. 그렇게 하고자 해서 뜻대로 다 되는 세상이 아니다. 일을 하는 데는 밟아야 하는 과정이 있고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다. 서두른다고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서두르기 일쑤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예로부터 어른들이 곧잘 하던 말씀이 있었다.

“맹심해야주, 너미 잰 체 허당 자빠진다게.”
(명심해야지, 너무 빨리 하다가 넘어진다.)

속도조절을 하지 않고 다짜고짜 덤볐다 큰 실수를 하게 된다고 경계한 것이다. 진리가 숨어 있다.

하긴 ‘재다(빠르다)’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일을 빨리하는 사람의 성의를 소중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남의 일을 거들어 주려는 성의가 없으면 서둘러 나섰겠는가. 나서준다는 것은 지극 정서의 표출이 아닐 수 없다. 설령 일을 하다 다소 그르치더라도 도와주고자 한 마음에 담겨 있는 인간적인 정리(情理)를 저버려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잰 것’만 흉볼 게 아니다. 너무 느린 것도 흠이 된다. 매일 속도전을 치르며 사는 도시 사람만 아니라 농촌 사람도 매한가지다. 농사일로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에 느릿느릿 늑장을 부리면 한 가족이라도 꾸지람을 듣게 된다. 갑자기 하늘에 먹장구름이 뒤덮이기 시작하면서 금방 비가 쏟아지게 생겼는데, 참깨를 묶어 비를 피해야 할 긴급한 상황에서 너도나도 잰 손놀림이 필요하다. 까딱하다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다들 깻단을 묶어 경운기에 실으랴, 혹은 모도록이 마주 세워 비닐을 덮어야만 한다. 허겁지겁 재게 움직여야 한다.

“무시거 햄시니게, 재게 재게 해사주 이 깨덜 비 마지민 농서 망칠 것 아니가게?  호쏠 재기 움직이라.”
(무엇 하고 있나. 빨리빨리 해야지. 이 깨들 비 맞으면 농사 망칠 것 아니냐. 좀 빨리 움직여라.)

하지만 지나치게 빠를 건 아니다. 너무 빠르면 큰 낭패를 사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빠른 값’을 치른다. 역시 중요한 건 속도조절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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