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달 특집] 추자도 우체국 새내기 집배원 윤영빈 씨

제주시 추자면 상추자항 전경. 추자도는 2000여명이 살고 있는 제주 최북단 섬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추자면 상추자항 전경. 추자도는 2000여명이 살고 있는 제주 최북단 유인섬이다. ⓒ제주의소리

사람은 섬이다. 우리네 인생도 크고 작은 섬들처럼 각자 섬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섬은 사람이 그립다. 사람도 섬이 그립다. 누구나 떠나려 하고 누구나 돌아오려 하지 않는 섬마을로 돌아온 청년이 있다. 고향 섬마을을 지키려 가족이 있는 섬으로 돌아간 20대 청년 집배원이다. 제주시 추자면 추자도우체국 소속 윤영빈(26) 씨다.

그는 오늘도 하늘을 이고 바람을 끌어안고 바다를 일구며 살아가는 섬사람들을 만나러 우편배달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섬 끝에서 끝으로 추자 곳곳을 누빈다. 가정의 달 5월,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고향 섬마을과 가족 품으로 돌아온 20대 청년집배원을 지난 21~22일 추자도에서 만났다.

영빈씨는 고향 추자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추자초등학교와 추자중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로 나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한때 서울로 상경해 취업이나 학업을 이어가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향을 선택했다. 결국 가족이 있는 추자도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고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우편집배원 시험을 준비하고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영빈씨가 일하는 추자도 우체국. 추자 유일의 우체국인 만큼 직원들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주의소리
영빈 씨가 일하는 추자도 우체국. 추자 유일의 우체국인 만큼 직원들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주의소리
집배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고 있는 영빈씨. ⓒ제주의소리<br>
우편집배 오토바이를 타고 근무 중인 윤영빈 씨. ⓒ제주의소리

영빈 씨는 집배 업무를 시작한 지 이제 막 한 달째인 새내기다. 어부인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고향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기회였다. 대학에서 복지행정을 전공한 그가 우편집배원으로 고향에 돌아온 선택에 가족들 모두 그를 격하게 반겼다.

영빈 씨는 “추자도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은 건 가족과 고향 때문”이라 했다. 어부인 아버지와 어머니, 먼저 고향을 지키고 있던 형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는 “청년들이 떠나는 섬마을에 저부터 고향 발전을 위해 돌아오고 싶었다. 제가 먼저 고향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고향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사람들이 언제나 찾아 오고 싶어 하는 추자도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에 살면서 추자도가 더 발전적으로 변화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영빈씨는 아버지를 통해 어릴 때부터 고향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 윤재웅(52) 씨는 30년 이상 바다에서 생업을 일궈온 어부이자 어선을 운영하는 선장이다. 추자를 지키고 있는 토박이다. 영빈 씨에게 아버지란 기둥 같은 존재다. 그래서 그의 휴대폰엔 ‘아버지’ 대신 ‘돈대산’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했다.

돈대산은 추자도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아버지 윤재웅 선장은 그만큼 영빈 씨가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당당히 도전할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뒷배’인 셈이다. 고향 마을 가장 높은 산봉우리 같은 아버지는 그를 버티게 하는 존재다. 

영빈 씨는 “아버지는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때로는 친구 같기도 한 아버지는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했다.

영빈씨는 아버지 이름을 '돈대산'이라고 저장했다. 추자도서 가장 높은 산인 돈대산처럼 자신에게 가장 높은 존재라는 의미다. ⓒ제주의소리
영빈 씨는 아버지 이름을 '돈대산'이라고 저장했다. 추자도서 가장 높은 산인 돈대산처럼 자신에게 가장 높은 존재라는 의미다. ⓒ제주의소리

영빈 씨는 어머니를 위해 한때 배를 타기도 했다. 선원이 부족해 항상 남편을 도와 배를 타던 어머니 오미선(52)씨 대신 배에 몸을 실었던 시절이 있다. 군 입대 전 1년, 전역 후 1년 반을 뱃일을 했다. 배를 타며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기 힘들어 자청한 일이었다. 

영빈 씨의 부모님도 그런 아들에게 가슴 속 깊이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아버지 윤재웅 선장은 “아들도 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희망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자식들과 고향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지금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며 웃어 보였다.

어머니 오미선 씨는 추자면 부녀회장이다. 어머니 오 씨 역시 추자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오 씨는 아들에 대해 “제 남편도 세살 때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자식들에게 매우 애틋한 편이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영빈이가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섬에는 친구들도 다 떠나 남아있지 않고 문화생활을 즐길만한 거리도 거의 없어 외로울 텐데도 이렇게 돌아와서 너무 고맙고 든든하다”고 말했다.

마침 기자가 하루 일과를 마친 영빈 씨의 집까지 동행한 그날은 형 윤수빈(30)씨의 생일이었다. 수빈 씨도 한국전력 추자도 발전소에서 근무하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저녁 시간에 영빈 씨 집에는 가족들과 아버지의 친구들까지 모여 조촐한 생일 축하 자리가 열리고 있었다. 

영빈 씨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버지의 죽마고우 황필운(52) 씨는 “부모도 섬에서 내보내려 하고, 자식도 섬으로 안 돌아오려 하는 요즘, 이렇게 가족이 함께 고향에서 모여 살 수 있는 건 흔치 않을뿐더러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쑥스럽게 웃는 영빈 씨를 향해 아버지는 “자랑스런 내 아들은 밥상의 작은 숟가락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추자의 우편집배원으로서 모든 주민의 아들이 돼 고향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살고 있는 윤영빈씨 가족.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이현수(28, 형수), 윤희수(22, 동생), 오미선(52, 모), 윤영빈(26), 윤재웅(52, 부), 윤차오름(1, 조카), 윤수빈(30, 형). ⓒ제주의소리<br>
추자도에서 함께 살고 있는 윤영빈씨 가족.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이현수(28, 형수), 윤희수(22, 동생), 오미선(52, 모), 윤영빈(26), 윤재웅(52, 부), 윤차오름(1, 조카), 윤수빈(30, 형). ⓒ제주의소리

다음날, 영빈 씨는 기상악화로 며칠간 끊겼던 배편이 전날 재개되면서 평소보다 두 배 넘게 쌓인 우편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오전 7시부터 일찍 집을 나섰다. 배가 안 뜨면 밀린 물량이 한 번에 밀려오고 주민들이 우편물을 제때 못 받기도 한단다. 기자가 취재하던 날도 한 주민은 우체국을 방문해 항의하기도 했다. 월요일에 보냈다는 물건이 금요일에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럴수록 영빈 씨는 바빠졌다. 그러나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편지 하나라도 대충 전달하는 법이 없다. 우편물을 전할 때마다 살가운 인사와 함께 주민들을 만났다. 모두 추자도의 이웃이고 어른들이다.

어린 시절 증조할머니 아래서 자란 영빈 씨는 마을 어른들에게 평소 인사를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단다. 털털한 성격과 살가운 모습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좋아한다는 어머니의 말 그대로 골목길을 누비는 영빈씨를 만나는 주민들은 우편물을 받으면서 꼭 한마디씩 안부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빈 씨는 종일 이어지는 우편배달 업무가 힘들 법도 할 텐데 늘 노래를 흥얼거리며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으려 했다. 아직 새내기여서 종종 배송 목적지를 지나쳐버리는 실수라도 하면 망설임 없이 얼른 되돌아가 더 밝은 표정으로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제주에서 도착한 물건을 싣기 위해 하추자항서 움직이고 있는 영빈씨. ⓒ제주의소리
제주에서 도착한 물건을 싣기 위해 하추자항서 움직이고 있는 영빈 씨. ⓒ제주의소리
영빈씨가 소형 전기차를 타고 배송에 나서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상추자항에 정박해 있는 배가 보인다. ⓒ제주의소리
영빈 씨가 소형 전기차를 타고 배송에 나서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상추자항에 정박해 있는 배가 보인다. ⓒ제주의소리

김병철(52) 추자도우체국장은 “우체국 막내, 영빈이는 서글서글하고 뭐든지 잘 받아들인다. 한 달밖에 안 됐지만 일도 잘하고 열심히 배우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추자를 지켜갈 젊은 일꾼으로서 옆에서 응원하고자 한다. 집배 업무가 힘들지만 앞으로 더 잘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응원하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선배 집배원 역시 “요즘 젊은 사람 같지 않게 열심이다. 착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잘한다”고 덧붙였다.

영빈 씨에게 고향 추자도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애증의 존재”라고 했다. 고쳐야 할 부분도, 지켜야 할 부분도 많은 고향이란다. 고향을 잘 지키고 더 건강하게 만들어 훗날 친구들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더욱 성장해 있는 고향과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하늘을 이고 바람을 끌어안고 바다를 일구며 살아가는 추자도. 물결이 솟고 길 따라 이야기가 피어나는 제주 최북단 유인섬 추자도에서 오늘도 행복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 윤영빈 청년 우편집배원. 오늘도 사랑과 정보를 싣고 추자섬 구석구석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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