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67.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 정홍섭 역, 좁쌀한알, 2018

출처=알라딘.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 정홍섭 역, 좁쌀한알, 2018. 출처=알라딘.

1. ‘줌짠’으로 달래는 하루

소고기를 사 먹었다. 정부에서 준 재난 지원금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소고기를 먹으며 지금은 망해버린 코미디 프로그램의 옛 코너가 생각났다. 한 개그맨이 돈을 벌면 무엇을 할꺼냐고 묻는 질문에 ‘소고기 사먹어야지’라고 대답하는 코너였다. 그 당시에는 그 대답이 왜 우스운 대답인지 몰랐다. 그런데 막상 돈이 생기니 소고기를 사 먹고 있는 자신이 우습게 여겨졌다. 그는 아마 오늘날의 상황을 예견했나보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한우 값은 폭등했고, 가계는 역설적으로 흑자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대학에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한지도 몇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Zoom이라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이 생소하기도 하고, 모니터 화면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아서 수업이 끝나면 심한 피로감에 시달렸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아니 익숙해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편하게 여겨진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아랫도리는 잠옷 바지를 입어도 되고, 다리가 피곤하면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수업을 할 수도 있다. 물론 학생들도 수업에 참여하는 척 하면서 친구들과 열심히 sns를 하고 있는 듯하다. 내 수업이 재미있을 리가 없을 텐데, 모니터 화면에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학생들 얼굴이 가득하다. 간혹 크게 웃는 학생은 아마도 유튜브와 줌을 멀티태스킹하고 있을 것이다. 비대면 강의를 종료하고 학교에 나오라고 하면 이제 모두가 거부할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단 몇 달 만에 세상을 바꾸어 버린듯하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는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무릇 사람과 사람 간의 진정한 소통이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할 때 가능한 것이라는 말은 진지하게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다. 상황이 바뀌면 방법을 찾게 된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Zoom을 켜놓고 원격으로 술잔을 부딪치는 ‘줌짠’이 유행이라고 한다.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안주와 술을 마련해서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즐기는 술자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의 변화가 모두 적당히 용인할 만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변화는 유래가 없는 것이어서 그야말로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시급하다. 사회를 봉쇄한 나라들에서는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봉쇄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태가 장기화되면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벼랑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매출이 격감한 기업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제위기에 대처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의문이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세계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한다. 비대면 강의를 경험한 학생들은 대면 강의가 재개되더라도 수업에 대한 생각이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줌짠’을 경험한 사람들은 술집에서 술잔을 부딪치게 되더라도 술을 함께 마시는 것에 대한 생각이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정부로부터 재난지원금을 받아 사용해 본 사람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국가로부터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지성적인’ 태도일 것이다. 지성적으로 태도를 취한다는 말은 행위나 판단의 결과를 충분히 숙고하고 실천이나 실험을 통해 부정적인 결과가 예상될 경우 다른 길을 찾아나가라는 것이다. 

2. 실험을 통해 만드는 새로운 사회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는 전염병 관리에 관해 교과서를 새로 쓰고 있다고 칭찬받고 있다. 소독제를 먹으면 코로나가 예방된다고 선동한 미친 지도자 때문에 여러 사람이 희생당하고 있는 어떤 나라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공무원과 시민들은 대단히 ‘지성적’이다. 물론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느 사회건 공동체를 위협하는 ‘빌런’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4차 감염을 일으킨 어느 젊은 청년의 사례는 일종의 상수로 간주해야 한다. 

성공적인 방역이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성공은 아마도 절반의 성공으로 남을 것이다. 소위 4차 산업혁명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했던 ‘다가올 미래’는 어찌 보면 코로나 때문에 이미 와버린 셈이다. 전 세계의 경제는 거의 멈추었다. 비축해 놓은 재화가 없는 사람들은 죽을 운명에 놓였다. 그 어느 때보다 상상력이 절실하고, 우리가 상상한 것이 가져올 귀결에 대한 지성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존 스튜어트 밀, 정홍섭 역, 좁쌀한알, 2018)은 새로운 세상이 열렸을 때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사회적 실험을 행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밀의 사후에 출간된 이 유고집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할 밀이 당시 유행했던 사회주의 이론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공산주의의 사회적 실험이 이미 실패로 끝난 오늘날 이 책을 들추어 보는 이유는 우리가 새로운 사회를 꿈꿀 때 갖추어야 할 ‘지성적’ 태도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되어서이다. 

총 네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첫 번째 장은 서론에 해당하고, 두 번째 장은 당시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글을 모아 놓은 것으로 되어 있다. 밀의 견해는 3장 및 4장에서 주로 제시되고 있다. 밀은 1867년의 선거법 개정을 통해 처음으로 도시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지자 이들의 정치적 요구를 사회가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이 책을 썼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밀이 새로운 국면에서 요구되는 사회제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기본 원리들이 시험대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현존하는 사회의 최우선 원칙을 검토”(14쪽)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곧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의 요구들을 “아무런 적대적 편견 없이”(18쪽) 그 토대로부터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자유주의자라고 해서 밀이 당시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의 견해를 요약하고 있는 2장에서 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몸에 꼭 필요한 것들이 충족되지 않거나 짐승만이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충족되어 물질적 궁핍이나 도덕적 타락으로 고통 받는 누군가가 있다면, 비록 이것이 반드시 사회의 죄악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만큼은 사회제도의 실패다. 그러니, 이 해악을 덜어 볼 양으로 이렇게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도 도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더 약한 성원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행에 모욕을 더하는 꼴이다.” (30쪽)

이런 사회제도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은 생산과 분배의 원리, 즉 개인주의와 경쟁의 원리를 대체할 대안을 요구한다. 

자유주의자인 밀의 대응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자본주의적인 사회제도의 실패를 인정하더라도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실패를 더 큰 실패로 덮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의 개혁주의적인 태도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잘 드러나 있다.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현 체제가 우리를 사회주의만이 구할 수 있는 일반적 극빈과 노예 상태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다. 현 체제하에서 겪는 해악과 불의는 크지만 그것들이 증가하고 있지는 않다. 그와는 반대로 일반적 경향은 그것들이 서서히 감소하는 쪽이다. 게다가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분배의 불평등은 그것이 아무리 자연스러운 감정에 충격을 가한다 할지라도, 그 불평등을 단순히 평등하게 만드는 것에 의해서는, 사회주의자들과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기 쉬운 대로 낮은 보수 수준을 높일 만큼 많은 자금을 전혀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어떤 남용이나 불의도 그 사회를 단순히 폐지함으로써 인간이 고통에서 빠져나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89쪽)

밀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오언과 푸리에 같은 온건한 철학적 사회주의자들보다는 중앙정부가 생산 자원 전체를 관리하도록 하자는 M. 루이 블랑과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지금 물질적으로 편안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생활을 유지하는 현재의 수단을 강제로 빼앗고자 하고, 만일 그 시도가 저항에 부딪히면 뒤따르게 될 끔찍한 유혈 사태와 참상을 무릅쓰고자 하는 사람들”(94-95쪽)에 해당하는데 밀은 이런 무모한 실행이 불러올 사회적인 저항과 그 저항을 없애려는 사회적 노력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그와 같은 길을 가지 않는 편이 낫다는 입장이다. 

설사 그런 저항을 극복하더라도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노동을 평등하게 배분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데, 세상에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그들과 벌여야 하는 일상적인 다툼은 애초에 공산주의자들이 바라는 공동체적인 조화를 크게 저해할 것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110쪽 참조) 생산 자원을 사용하는 방식과 관련해서도 화해할 수 없는 견해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밀은 그런 불화조차도 “대다수의 신조 앞에서 개인의 모든 의견과 바람이 굴복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기만적 만장일치보다는 인간성의 전망에 훨씬 덜 사악한 것이 될 것”(113쪽)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성의 전망’이라는 밀의 어휘에 주목해 보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 진다. 밀은 완전히 새로운 기초에 입각한 사회의 경제제도를 세우고자 할 때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은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도덕적이고도 지적인 자질”(122쪽)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밀의 입장이 전적으로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논쟁적인 문제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우리의 이기심과 나태함이 노동을 소외시키고 있는 잘못된 경제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물질적 토대가 바뀌면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할 것이라고 희망한다. 밀은 이런 희망이 시험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밀은 교육을 통한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우리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측면에서 개선될 수 있으며, 사회주의자들이 꿈꾸는 우애, 평등, 조화의 미덕은 오랜 시간을 들여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자인 밀과 사회주의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밀은 “재산 개념은 역사를 통틀어 동일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어떤 한 가지 실체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가변적인 것”(130쪽)이며, 공익을 위해 잃어버릴 수 있는 소유권을 국가가 보상해야 하는 것이 옳다면, 같은 논리로 “공익에 반한다고 판단하는 어떤 특정 재산권도 그 사회는 폐지하거나 변경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131쪽)고 언급하면서,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에게 제도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도록 하는 모든 방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책을 맺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사회를 꿈꾼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적인 논의들이 적절한 실험적 사고와 제도적인 시행에 의해 테스트되었거나 테스트의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어떤 공동체가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공동체가 얼마나 ‘지성적인’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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