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33) 제주도-오리온 상생협약 ‘흔들리는 공수화’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최근 제주도가 염지하수를 이용한 상품인 용암해수의 판매범위와 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오리온과 상생협약을 맺었다고 깜작 발표했다. 또한 용암해수를 공급하고 있는 제주테크노파크와 오리온 사이의 공급계약도 체결했다. 계약내용을 보면 지난 1월 제주도가 오리온과 협의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달라졌다. 오리온이 요구했던 국내 판매방식을 완전히 수용하고 있다. 지하수 정책의 공수화 근간이 흔들리는데 제주도는 상생이라 규정한다.

상생협약? 공수화 포기 협약
불과 5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리온의 용암해수 사업에 대해 제주도는 매우 단호한 입장이었다. 지난해 12월 제주도는 기자 브리핑을 갖고 “제주도는 공수화 원칙상 국내 판매는 안 된다는 방침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며 오리온에 용암해수를 국내 판매용으로 공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원희룡 지사 역시 지난 1월 초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오리온의 용암해수 국내시장 판매계획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원 지사는 국내에서 최소한의 물량 판매가 필요하다는 오리온 측의 일방적인 주장은 믿을 수 없다며 은근슬쩍 제주도를 무시하면서 물 공급을 기정사실화해 밀고 가려 한다면 제주도로서는 물 공급을 해줄 의무가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수화 원칙을 지키겠다는 제주도의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월 말 제주도와 제주테크노파크는 오리온과 용암해수 공급관련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판매는 절대불가라는 입장은 뒤로하고 하루 300톤까지 국내 판매를 허용했다. 다만 판매유형은 가정배달 및 B2B(기업간 거래)에 주력하기로 협의했다. 그리고 수출을 위한 물량은 공급가능 범위에서 충분히 공급하기로 했다. 

제주도는 기존 입장 변화와 관련하여 “제주의 자원을 활용해 기업 활동을 하는 측면과 제주 공공자원의 보존과 활용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는 입장에서 상생 발전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제주특별법에서 정하고 있는 지하수의 공수화 원칙을 후퇴시켜 놓고는 지하수를 사유화하려는 기업과 상생 발전의 과정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오리온제주용암수 공장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오리온제주용암수 공장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오리온의 지하수 증산 요구 시간문제
제주도는 지난 1월 보도자료에서 오리온의 해외수출을 통해 청정 제주의 물 자원 홍보와 제주에 대한 관심 제고로 관광객 유치 등 도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리온은 넉 달 만에 해외시장 개척을 포기하고 국내시장 중심의 판매 계획으로 선회하여 제주테크노파크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전 협의과정에서 쟁점이었던 국내 판매방식 중 대형유통매장, 편의점, 일반슈퍼 등 오프라인 판매를 포함한 모든 판매방법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로써 제주도의 염지하수 보전관리정책에 대한 공수화 원칙은 완전한 포기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이번 용암해수 개발 논쟁과정에서 제주도의 조변석개와 같은 행보는 차마 납득할 수가 없다. 도지사까지 나서서 제주도의 입장을 피력해 놓고서는 하루아침에 입장을 접고 오리온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도민의 생명수인 지하수의 공공적 관리 원칙의 입법취지를 훼손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아 온 지하수보전정책에 대한 도민의 신뢰도 잃고 말았다.

제주도는 오리온과 상생협약의 근거로 판매순이익 20%를 사회공헌기금사업으로 투자하기로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규정은 결국 오리온의 지하수 사유화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협약에서 오리온이 국내 오프라인 판매를 할 수 있는 대신 국내 판매량은 100톤이 줄어든 하루 200톤까지로 정했다. 오리온의 국내 판매와 유통 능력을 고려하면 하루 200톤은 결코 많지 않은 양이다. 제품 홍보 광고가 이어지고 제품판매의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공급량이 부족하다며 용암해수의 증량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오리온의 용암해수 생산 및 판매량 증가는 사회공헌기금의 증가로 이어지므로 이를 명분삼아 증산 필요성의 여론을 만들어 갈 것이고, 이미 허가해줘 버려 경계가 무너진 지하수 공수화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판매수익의 일부를 사회공헌에 쓰인다는 명분으로 사기업의 지하수 사유화를 정당화 할 수는 없다. 그런 방식이라면 하다못해 용암해수 사업을 오리온이 아닌 제주개발공사가 진행한다면 판매이익 일부가 아닌 전부를 도민사회에 환원하게 할 수도 있다. 결국 오리온과 맺은 상생협약은 도민의 공공자산을 기업의 자본과 맞바꾼 부당거래와 같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지하수의 공수화 원칙이 흔들리는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제주특별법의 지하수 보전이라는 입법취지를 망각한 채 염지하수를 이용한 사적 이익 추구를 허용하는 법률 개정을 하면서부터이다. 따라서 현 도정이 해야 할 일은 이전 도정의 과오를 바로 잡고 지하수의 공공적 관리 원칙에 맞는 정책을 시행해 나가는 일이다. 이를 방관하고 비뚤어진 규정을 근거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행정의 권한과 책임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이제라도 제주도는 지하수 보전정책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염지하수의 사유화를 막아야 한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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