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73. 심술은 복을 털어 버린다

‘심술 거복’이라 것은, 심술이 사나우면 자신에게 오는 복도 발로 차 버리게 된다 함이다. 사진은 고우영의 '놀부전' 표지. 출처=알라딘.

심술(心術)이란 온당하지 않게 고집을 부린다는 말이다. 남을 골리기 좋아하거나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상대와 비교하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가운데 나올 수 있는 얄궂은 심리일 수도 있다. 결코 좋은 심성이 아니다.

세상에 우리 고대소설에 나오는 놀부처럼 오장육부가 ‘오장7부’로 심술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성일지 모르지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임은 말할 것이 없다.

‘심술만 하여도 십 년 더 살겠다.’고 한다. 심술을 잔뜩 가졌으니 그것만 먹고도 십 년은 더 살겠다는 뜻으로, 심술궂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행간에도 심술보가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 심술궂은 사람을 나무라고 놀리는 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무심결에 심술부리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술 거복’이라 것은, 심술이 사나우면 자신에게 오는 복도 발로 차 버리게 된다 함이다. 그러니 심술을 부리지 말라 경계(警戒)하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남을 나무라며 비난하다 보면 종국에 자신도 화를 입게 되니 비록 말로라도 남을 위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심심하면 좌수(座首) 볼기 치기’한 말이 있다. 좌수란 조선시대의 지방 자치기구인 향청(鄕廳)의 우두머리로 수령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담당했다가 향원(鄕員)의 인사권과 행정실무 일부를 맡아 보았는데, 향장(鄕長)으로 고치면서(고종 32년, 갑오경장 일 년 뒤) 유명무실한 존재가 돼 버린 감투다. 나중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좌수처럼 힘없는 사람들 불러내어 아무 잘못한 일도 없는데 꾸짖거나 볼기를 때리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인데, 하물며 심심풀이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잔인한 악취미를 비판하는 말로, 심심하면 어떤 일이든 파적(破寂)거리로 삼는다고 하고 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심심하면 낮잠이나 잘 일이지, 참 싱겁기도 한데, 남을 힘들게 하는 악취미이고 보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지 않은가.

‘심사는 놀부라’ 하지 않는가.

옛날에도 본성이 아름답지 못한데다 탐욕을 일삼아, 일일마다 심술을 부리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죽 했으면, ‘심사는 없어도 이웃집 불 난 데 키 들고 나선다’고 했겠는가. 이렇게 심술 고약한 사람, 남의 일은 무엇이나 못되게 방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불 난 데 부채질’, ‘심사는 좋아도 이웃집 불붙는 것 보고 좋아한다.’, ‘우는 아기 뺨치기’라 하는 말들이 다 심술부리는 행태들을 꼬집는 말들이다. 심사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사람도 남이 잘못 되는 걸 보면 좋아한다니 알고도 모를 일이다.

행여 우리 민족의 DNA가 아니기를….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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