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편지를 쓰며 20년 전 아버지를 떠올리다
"해봉유치원 앨범 보니?"
제가 칼질을 잠시 멈추고 원재를 보며 물었습니다.
"참 재미있었는데… 김화미 선생님도 잘 계실까?"
제 물음엔 대답도 하지 않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사자소학에 나온 구절을 들먹이며 금방 대답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아들에게도 추억이 생긴 것이니까요.
"원재야. 너 김화미 선생님에게 편지 쓰면 어떻겠니?"
어느새 제 옆에 와서 어떻게 만드느냐고 꼬치꼬치 묻는 원재를 보며 넌지시 의향을 떠 보았습니다. 김화미 선생님은 원재의 유치원 담임이셨습니다.
"오늘?"
"그래 엄마 오시면 저녁 먹고 아빠랑 편지지 사러 가자."
▲ 원재가 유치원 선생님에게 쓴 편지입니다. 공개되면 뭐라 할 것 같습니다. |
ⓒ 강충민 |
▲ 원재가 모교인 유치원 앨범에서 주소를 확인하고 정성껏 적었습니다. | |
ⓒ 강충민 |
▲ 봉투에 그림도 그려 넣더군요. 원재는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
ⓒ 강충민 |
그렇게 편지쓰기를 끝내고 원재와 딸 지운이까지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살며시 베란다로 나가 담배 한 대를 물었습니다.
▲ 원재가 보낸 문자입니다. 각시의 휴대폰을 사용했더군요. |
ⓒ 강충민 |
'아빠술좀먹지마먹으면술에취하잖아12시에오지말고11시에와 원재가'
띄어쓰기를 다 생략한 원재의 문자를 받은 날도 어김없이 저는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원재는 제가 술 마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어느 때는 '부득이하게 술을 마셔야 될 때가 있다'라고 했는데 '부득이하다'라는 형용사의 뜻을 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 듣고 난 원재는 딱 한마디를 하더군요.
"부득이해도 안 돼!"
그러면서 저에게 술을 마시지 않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며 알려 줬습니다.
"옆에서 아빠보고 술 마시라고 하면 우리 아들이 술 마시지 말라고 했다고 해. 그러면 되잖아."
이 모든 것이 아빠가 돼서 술 취해 힘든 모습을 보였던 제 탓입니다.
원재는 흔히 말하는 팔삭둥이입니다. 예정일보다 두 달 일찍 이 세상에 나와 2000년 2월 22일생입니다. 1.5㎏으로 이 세상에 나와 두 달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는데 그땐 정말 살아만 있어달라고 얼마나 빌었는지요.
8층이 소아과 병동이었는데 매일 아침 각시가 짜낸 모유를 갖다주면서 일부러 8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한 계단씩 천천히 오르면서 '너에게 아빠라는 소리를 꼭 듣고 싶다'고 얼마나 빌고 또 빌었는지요. 건강하게 자라준 게 너무나 고맙고 대견스러운데 가끔 그걸 잊고 아들 속을 썩이고(?) 있습니다.
그런 염원으로 건강하게 자라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에게 술 먹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고 있는 거고요.
▲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는 참 오랫만입니다. |
ⓒ 강충민 |
▲ 두번째 장입니다. 물 많이 마시고 손 깨끗이 씻기는 원재가 잘 잊어버립니다. |
ⓒ 강충민 |
거실에 뒹구는 쓰다 남은 편지지를 정리하다 원재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꼭 편지의 형식은 아니더라도 원재에게 많은 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때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받으면서 수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그 말에 한 번 진지하게 아빠도 정말 사랑한다고 답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술 먹지 말라는 원재의 문자에 대한 답장으로, 원재의 모교인 유치원 선생님에게 쓰다 남긴 편지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원재가 내 아들인 게 고맙고, 술 먹지 말라는 잔소리가 사실은 듣기 좋다고, 그리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그렇게 쓰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 원재의 학교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
ⓒ 강충민 |
그때 저는 최전방 이기자 부대 신병 중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출신이었습니다. 신교대에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고 동기 중에서 제일 먼저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 편지를 받자마자 특급우편으로 제주도에서 보내신 아버지의 편지. 훈련병 중에 맨 먼저 편지를 받으니, 동기들은 여자친구일 거라 짐작하며 부러움 섞인 환호성을 질렀고요. 지금도 기억하는 아버지의 편지 내용….
'그곳은 네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의 연속이겠지만 그래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라고 시작하다 맨 끝에 쓰신 한 줄의 문구 속에 순간 울컥했던 기억이지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다감하게 말씀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몇 번을 생각하고 생각하시다 어렵사리 글로 옮기셨을 당신이 늘 품으셨던
"아들 사랑한다."
저는 스물 한 살이 되어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아버지는 늘 마음속에 저에 대한 사랑을 품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진즉 입으로든, 글로든 표현만 하지 않았던 것뿐이지요.
저는 아들에게 아버지보다는 조금 빨리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알려 주고 싶습니다. 그래야 시간이 많이 지나도 그 사랑한다는 표현에 쑥스럽지 않을 테니까요.
아버지에게도 5월이 가기 전에 제 입으로 '사랑한다'고 말해 봐야 하겠습니다.
▲ 원재의 유치원때 사진입니다. 원재에게도 추억이 생겼습니다. |
ⓒ 강충민 |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