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편지를 쓰며 20년 전 아버지를 떠올리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들 원재가 유치원 졸업앨범을 펼쳐 보고 있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저녁준비를 하는데, 슬쩍 보니 그때까지도 앨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해봉유치원 앨범 보니?"

제가 칼질을 잠시 멈추고 원재를 보며 물었습니다.

"참 재미있었는데… 김화미 선생님도 잘 계실까?"

제 물음엔 대답도 하지 않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사자소학에 나온 구절을 들먹이며 금방 대답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아들에게도 추억이 생긴 것이니까요.

"원재야. 너 김화미 선생님에게 편지 쓰면 어떻겠니?"

어느새 제 옆에 와서 어떻게 만드느냐고 꼬치꼬치 묻는 원재를 보며 넌지시 의향을 떠 보았습니다. 김화미 선생님은 원재의 유치원 담임이셨습니다.

"오늘?"
"그래 엄마 오시면 저녁 먹고 아빠랑 편지지 사러 가자."

 
▲ 원재가 유치원 선생님에게 쓴 편지입니다. 공개되면 뭐라 할 것 같습니다.
ⓒ 강충민
 
이렇게 해서 문구점에서 아들과 편지지와 봉투를 샀습니다. 원재가 글을 쓸 때 늘 '글은 말하는 것처럼 쓰면 된다'라고 가르쳐서인지 쉽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을 떠나서요. 그림 그리기로 상 받은 것은 빼놓지 않더군요. 다 쓴 편지는 내일 출근하면서 제가 우체통에 넣는다고 했습니다.

 
▲ 원재가 모교인 유치원 앨범에서 주소를 확인하고 정성껏 적었습니다.
ⓒ 강충민
 
▲ 봉투에 그림도 그려 넣더군요. 원재는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 강충민
 

그렇게 편지쓰기를 끝내고 원재와 딸 지운이까지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살며시 베란다로 나가 담배 한 대를 물었습니다.

 
▲ 원재가 보낸 문자입니다. 각시의 휴대폰을 사용했더군요.
ⓒ 강충민
 
그와 동시에 습관적으로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는데 원재가 며칠 전에 보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술 먹지 말라는 문자였습니다.

'아빠술좀먹지마먹으면술에취하잖아12시에오지말고11시에와 원재가'

띄어쓰기를 다 생략한 원재의 문자를 받은 날도 어김없이 저는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원재는 제가 술 마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어느 때는 '부득이하게 술을 마셔야 될 때가 있다'라고 했는데 '부득이하다'라는 형용사의 뜻을 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 듣고 난 원재는 딱 한마디를 하더군요.

"부득이해도 안 돼!"

그러면서 저에게 술을 마시지 않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며 알려 줬습니다.

"옆에서 아빠보고 술 마시라고 하면 우리 아들이 술 마시지 말라고 했다고 해. 그러면 되잖아."

이 모든 것이 아빠가 돼서 술 취해 힘든 모습을 보였던 제 탓입니다.

원재는 흔히 말하는 팔삭둥이입니다. 예정일보다 두 달 일찍 이 세상에 나와 2000년 2월 22일생입니다. 1.5㎏으로 이 세상에 나와 두 달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는데 그땐 정말 살아만 있어달라고 얼마나 빌었는지요.

8층이 소아과 병동이었는데 매일 아침 각시가 짜낸 모유를 갖다주면서 일부러 8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한 계단씩 천천히 오르면서 '너에게 아빠라는 소리를 꼭 듣고 싶다'고 얼마나 빌고 또 빌었는지요. 건강하게 자라준 게 너무나 고맙고 대견스러운데 가끔 그걸 잊고 아들 속을 썩이고(?) 있습니다.

그런 염원으로 건강하게 자라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에게 술 먹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고 있는 거고요.

 
▲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는 참 오랫만입니다.
ⓒ 강충민
 
 
▲ 두번째 장입니다. 물 많이 마시고 손 깨끗이 씻기는 원재가 잘 잊어버립니다.
ⓒ 강충민
 

거실에 뒹구는 쓰다 남은 편지지를 정리하다 원재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꼭 편지의 형식은 아니더라도 원재에게 많은 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때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받으면서 수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그 말에 한 번 진지하게 아빠도 정말 사랑한다고 답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술 먹지 말라는 원재의 문자에 대한 답장으로, 원재의 모교인 유치원 선생님에게 쓰다 남긴 편지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원재가 내 아들인 게 고맙고, 술 먹지 말라는 잔소리가 사실은 듣기 좋다고, 그리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그렇게 쓰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 원재의 학교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 강충민
 
봉투에 원재의 학교로 편지를 부칠 요량으로 봉투에 차근차근 써 내려가는데 문득 저의 군생활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20년 전 강원도 화천 이기자 부대에서 신병훈련 중에 받은 아버지에게 받은 편지이지요.

그때 저는 최전방 이기자 부대 신병 중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출신이었습니다. 신교대에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고 동기 중에서 제일 먼저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 편지를 받자마자 특급우편으로 제주도에서 보내신 아버지의 편지. 훈련병 중에 맨 먼저 편지를 받으니, 동기들은 여자친구일 거라 짐작하며 부러움 섞인 환호성을 질렀고요. 지금도 기억하는 아버지의 편지 내용….

'그곳은 네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의 연속이겠지만 그래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라고 시작하다 맨 끝에 쓰신 한 줄의 문구 속에 순간 울컥했던 기억이지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다감하게 말씀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몇 번을 생각하고 생각하시다 어렵사리 글로 옮기셨을 당신이 늘 품으셨던

"아들 사랑한다."

저는 스물 한 살이 되어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아버지는 늘 마음속에 저에 대한 사랑을 품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진즉 입으로든, 글로든 표현만 하지 않았던 것뿐이지요.

저는 아들에게 아버지보다는 조금 빨리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알려 주고 싶습니다. 그래야 시간이 많이 지나도 그 사랑한다는 표현에 쑥스럽지 않을 테니까요.

아버지에게도 5월이 가기 전에 제 입으로 '사랑한다'고 말해 봐야 하겠습니다.

 
▲ 원재의 유치원때 사진입니다. 원재에게도 추억이 생겼습니다.
ⓒ 강충민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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