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은 6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김영갑 추모 15주기 사진전 <내가 본 이어도> 시리즈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내가 본 이어도>는 고인의 생전 마지막 전시이기도 하다. 두모악관에서는 지난 2005년 1월,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내가 본 이어도1 - 용눈이 오름> 작품 중 일부를 전시한다. 하날오름관에서는 <내가 본 이어도2 - 눈, 비, 안개 그리고 바람환상곡>, <내가 본 이어도3 - 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 작품 중 일부를 선보인다.

김영갑은 '내가 본 이어도'라는 주제로 제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안타깝지만 유작으로 남았다. 

김영갑의 작품 '내가 본 이어도' 시리즈. 제공=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제주의소리
김영갑의 작품 '내가 본 이어도' 시리즈. 제공=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제주의소리
김영갑의 작품 '내가 본 이어도' 시리즈. 제공=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제주의소리
김영갑의 작품 '내가 본 이어도' 시리즈. 제공=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제주의소리
김영갑의 작품 '내가 본 이어도' 시리즈. 제공=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제주의소리
김영갑의 작품 '내가 본 이어도' 시리즈. 제공=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제주의소리

미술관은 “그의 성실한 작업 방식을 통해 바라 볼 수 있는 한 장소의 다양한 모습, 그리고 오랜 기다림 속 찰나의 살아있는 제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김영갑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곳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해 초석을 다질 무렵, 루게릭 병 진단을 받았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사진 전시관을 만들기에 열중했고 2002년 여름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투병 생활을 한 지 6년 만인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그가 손수 만든 두모악에서 고이 잠들었고 그의 뼈는 두모악 마당에 뿌려졌다. 

김영갑 작가. 제공=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제주의소리
김영갑 작가. 제공=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제주의소리

다음은 김영갑이 생전 남긴 '내가 본 이어도' 전시 소개 글 전문.

잃어버린 이어도

나에게는 옛날 옛적 탐라인들이 보고 느꼈던 고요와 적막, 그리고 평화를 다시금 고스란히 보고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비밀화원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웃고 울다가,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홀로 환호작약하다 잠들거나, 누워서 하늘을 보며 환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탐라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바람은 내게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재미에 빠져 틈만 나면 그곳을 뒹굴고 기어 다니며 오랜 세월을 머물렀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곳을 스쳐 지났지만, 발길을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지나쳐 갈 뿐이었습니다. 그곳에선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테우리(목동)들과도 마주치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그곳을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만은 탐라인들처럼 자유롭기를 원했습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나무에 기대어 구름과 놀고, 맑은 날에는 나비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정신이 몽롱해질 때까지 꽃향기에 흠뻑 취했습니다. 흐린 날이면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배를 깔고 풀밭에 납작 엎드려 키 작은 풀들의 흔들거림에 추임새를 넣어가며 어깨춤을 추었습니다. 또한 바람심한 날에는 족제비처럼 돌담 밑에 웅크리고 앉아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키 작은 생명들을 들여다보며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생명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흙이라고는 한줌 없는 돌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그들은 수분을 길어올리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지 놀랍고도 기막힐 따름입니다.

그곳에 있는 한 나는 정녕 자유로웠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 지켜야할 예의범절에서도 놓여날 수 있었습니다. 시기, 질투, 다툼, 불평, 불만,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도 비밀의 화원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키 작은 풀이나 곤충들의 목숨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거나, 들짐승이 놀라지 않게 하는 일 정도였습니다.

봄인지 겨울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꽃샘추위를 비웃으며 다투어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만 가지 꽃들이 줄달아 사철 내내 피어납니다. 농부들이 심어놓은 유채, 메밀, 무, 배추, 감자, 당근, 깨 등이 꽃을 틔우면, 그 향기가 너무 진해 어지럼증이 일 정도입니다. 새들과 곤충들이 찾아와 온종일 노래 부르는 그곳은 생명의 파동으로 넘쳐납니다. 삶에 지쳐 심드렁해졌다가도 그곳에 가면 각자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접하고는, 그들의 왕성한 기운에 감염되어 금세 생기를 되찾습니다. 

도시의 친구들이 그리워져 울적할 때면, 나는 나만의 비밀화원으로 내달립니다. 도시의 풍족함과 편리함이 간절해질 때면, 나는 또 나만의 비밀화원을 찾아 그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뒹굴며, 울고 웃노라면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 도시의 기억들은 말갛게 지워져 버립니다. 살아가면서 불현듯 내게 다가오는 권태로움과 우울, 울적함이 내 삶의 리듬을 흐트러뜨릴 때면 나는 그곳에서 풀과 나무와 구름과 싸우고 화해하는 가운데 나의 어리석음을 돌아봅니다. 참기 힘든 분노, 좌절, 절망이 나를 힘들게 할 때면, 나는 나만의 비밀화원에서 눈, 비, 안개, 바람에 젖고 시달리는 축복을 통해 하찮은 내 존재를 다시금 확인합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 슬픈 날이면 찾아가던 카페와 기쁜 날이면 기쁜 날대로 들르던 찻집, 날씨가 꾸물대는 날이면 친구들과 모여 맥주 한잔 마시던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자연 속에 지내는 동안, 나만의 비밀화원은 내 기분과 날씨에 따라 찾아가던 카페이자 찻집이고 레스토랑이었습니다.

도시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는 나 잘났다고 우쭐대며 목소리를 키우며 나만의 생각을 고집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만의 비밀화원에서 지내며 나는 비로소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배웠습니다. 그곳에서는 나라고 하는 존재는 아주 작아져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곤충이 되면서, 그들의 삶에 순하게 동화되곤 합니다. 내가 말하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일 뿐입니다. 눈비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이나 곤충들의 삶을 엿보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너무도 하찮아집니다. 눈비가 쏟아지면 나는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피할 궁리부터 합니다. 한 달씩 계속되는 궂은 날씨나 가뭄에도, 연약한 야생초들은 끄떡없이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나는 더워죽겠다, 굽굽해 죽겠다는 타령만 늘어놓습니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바람에도 억새는 몸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강한 바람과 당당히 맞서 언제나 승리합니다.

키 작은 야생초와 몸집 작은 곤충들은 나에게는 없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찮게만 여겼던 그들에게는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들만의 탁월한 삶의 능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사유의 능력과 문화를 지녔기에 만물의 우두머리라고 우쭐댑니다. 하지만 그 하찮은 미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혹독한 생존경쟁 속에서도 의연하게 생명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나의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큰 비가 오기 전 개미들의 피난행렬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장대비가 오기 전 어떻게 알았는지 달팽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태풍이 오기 전, 새들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위험이 없는 곳으로 몸을 숨깁니다. 올빼미가 어둠 속에서도 먹이를 사냥하고, 수달이 계곡의 두꺼운 얼음장 밑에서 물고기를 사냥하고, 높이 나는 독수리가 공중에서 수직 하강하여 쏜살같이 먹이를 낚아채는 능력을 보면 너무도 놀랍고 흥미롭습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속에서 저마다의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순환원리를 생각할 때, 그 위대한 대자연의 질서 앞에 그저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비밀화원을 방문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간섭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만의 비밀화원이 가지고 있던 특징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도시의 공원처럼 자연스러움을 잃자 생동감도 사라졌습니다.

비포장의 도로가 어느 날 아스팔트로 뒤덮이더니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전봇대가 세워지고 펜션이 들어서더니, 관광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중장비 소리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맨땅이던 농로가 시멘트로 포장되면서 관광버스들이 몰려와 왁자지껄 난장판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렇게 사람들 소리가 커져가면서 어느덧 고요와 적막은 사라지고, 마침내 그곳만이 간직하고 있던 평화로움도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풀, 나무, 풀벌레, 구름, 눈, 비, 안개, 바람 등의 조화가 무너지며 더 이상의 한가로움도 즐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루, 오소리, 족제비, 꿩, 비둘기, 몸집 작은 텃새들과 곤충들이 어디론가 떠나버렸습니다.

그 전까지 나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나만의 비밀화원에서 나만의 꿈을 키워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들이 행복이었음을 뒤늦게야 알아차린 나는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제야 깨닫고는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못내 안타까워합니다. 이제 나만의 비밀화원은 옛 탐라인들과 함께 호흡하며 울고 웃었던 예전의 그 화원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더 이상 태고적 신비와 고요를 느낄 수 없게 된 그곳을 나는 이제 나의 기억 속에서 지우려 합니다.

김영갑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두모악관, 하날오름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
064-784-9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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