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예총, 6월 4일부터 4.3문학 아카이브 기획전 ‘지문’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던 제주4.3을 용기 있게 끌어올린 4.3 문학의 역사를 한 자리에서 만나보자.

제주민예총(이사장 이종형)은 4.3항쟁 72주년 27회 4.3문화예술축전 <4·3문학 아카이브 기획전 - 지문>을 5일부터 30일까지 포지션 민 제주에서 연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는 1948년 발표된 이수형의 <산사람들>에서부터 2010년 이후 다양한 제주4.3문학의 성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시는 4.3문학을 크게 4개의 시기로 구분한다. ▲1978년 현기영의 <순이삼촌> 발표 ▲1987년 6월 항쟁 ▲1999년 제주4.3특별법 국회 통과 등 진상규명 역사 속에서 4.3문학의 다양성과 시대적 특징을 담았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4.3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청년 문학 운동의 모습들을 당시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87년 <한라산>을 발표한 후 공안 당국에 체포됐던 이산하 시인의 최후진술서, 항소이유서를 전시한다. <한라산>은 4.3을 항쟁적 시각에서 형상화한 장편 서사시다.

전시 제목 ‘지문’에 대해 제주민예총은 “제주4.3 문학은 제주 섬 땅에 새겨진 무늬이며 비명이었다”며 “그 무늬를 읽어내고, 기억하는 일이 문학의 길이었고, 삶이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지문은 글자 그대로 문학으로 새겨온 ‘지문(紙紋)’이며, 제주 섬 땅의 역사를 문학의 언어로 기억하고자 ‘지문(誌文)’이다. 또 제주 4.3문학의 정체성이 새겨진 ‘지문(指紋)’인 동시에 제주 땅이 살아온 땅의 무늬 ‘지문(地紋)’이기도 하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전시 개막날인 5일 오후 5시에는 이산하 시인과 김수열 시인의 대담 ‘천둥같은 그리움’을 진행한다. 전시 개막은 오후 7시.

# <지문> 시대별 주요 전시 개요

- 1948년~1978년
해방은 또 다른 점령이었다. 제주 4.3 항쟁은 통일독립국가를 위한 민중의 열망이었다. 항쟁에 대한 댓가는 가혹했다. 제주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려는 듯 미군정과 이승만의 탄압은 잔혹했다. 그 잔인한 학살의 끝에서 원치 않은 침묵이 어둠처럼 다가왔다. 항쟁을 말하는 것조차, 참혹한 죽음을 증언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 긴 시간, 1978년 현기영이 <순이삼촌>을 발표하기 이전까지 제주 4.3은 그려지지 않는 기억들이었다. 본질은 잡지 못하고, 사실에도 다가갈 수 없었던 시기. 그것은 비본질적이며 추상적인 형상화의 단계였다. 이 시기 주목할 만한 작품은 이수형의 시 ‘산사람들’(1948년)과 함세덕의 희곡 <산사람들>(1949년)이다. 이 작품은 당대적 입장에서 4.3을 이야기한 최초의 발화였다. 

-1978년~1987년
1978년 현기영의 <순이삼촌>이 드디어 오랜 침묵의 억압을 뚫고 나왔다. 4.3의 비극을 증언하는 ‘제주 4·3문학’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순이삼촌>를 통해서 제주 사람들은 잃어버렸던, 잊고 살았던 그날의 목소리들을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때를 같이해서 현길언, 오성찬 등 4.3 체험 세대들의 작품들도 발표되었다. 오성찬의 <단추와 허리띠> , 현길언의 <우리들의 조부님>은 제주 4.3 문학 1세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유신 독재가 끝나고 80년대로 넘어서면서 문학으로 4.3을 말하려는 작가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고시홍과 한림화는 각각 소설 <도마칼>과 <불턱> 등을 발표했다. 김수열은 일련의 4.3 시를 써갔다. 그것은 분출이었다. 폭발이었다. 침묵을 거부하는 몸짓이었다. 4.3의 비극을 드러내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낙인을 거부하는 단호한 의지였다. 그리고 1987년 문제작인 이산하의 <한라산>이 녹두서평에 발표된다. 이전 작품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항쟁의 의미를 써내려간 이 작품이 4.3 문학장에 준 충격은 대단했다. 

-1987년~1999년
1987년 6월 항쟁은 제주 4.3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항쟁의 의미와 당대적 시각에서 4.3의 전모를 바라봐야 한다는 과제도 제기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이전과는 다른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현기영, 오성찬, 현길언 등을 시작으로 고시홍, 김관후, 김석희, 김창집, 오경훈, 이석범 등 4.3의 서사화를 시도하는 작가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찍부터 일본에서 제주4.3을 형상화해왔던 김석범의 <화산도>가 일부이기는 하지만 번역 출간된 것도 성과였다. 북한 소설인 김일우의 <섬사람들>도 남한에서 출간되었고, 정순희, 한림화, 함승보 등의 후체험 세대들의 4.3 소설들도 발표되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4.3을 장편으로 다룬 한림화의 <한라산>은 이 시기의 문학적 성과 중 하나다. 
소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들도 쏟아져 나왔다. 김용해, 김명식, 문충성 등과 강덕환 김경훈, 문무병 등 대학에서 4.3 진상규명 운동의 불씨를 키워갔던 시인들의 창작도 이어졌다. 

-2000년~현재
제주 4.3 특별법 제정은 4.3 문학의 형상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출발이라는 입장에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문학적 접근이 시도되었다. 제주어의 사용과 소재의 다양화, 그리고 4.3 인식의 총체성 측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진전이 있었다.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희곡, 동화 등 다양한 내러티브도 시도되면서 4.3 문학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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